2019년은 먼 훗날까지 영화사에 있어 중요했던 한 해로 길이 회자될 것이다. 100주년을 맞은 한국 영화계에 대해서는 '국내 Best' 글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해외 시장에 대해 되돌아보자면, 그야말로 디즈니로 시작해서 디즈니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캡틴 마블>부터 <겨울왕국 2>까지 한 해에 총 6편의 전 세계 10억 달러 이상 흥행작들을 내놓았다. 올해 10억 달러 돌파 영화들 중 컬럼비아(소니) 픽처스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과 워너 브라더스의 <조커>를 빼면 나머지는 모두 월트 디즈니 픽쳐스의 배급작들뿐이다. 심지어 <스파이더맨>은 MCU 소속 작품이기에 마블의 성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디즈니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오직 디즈니만이 강세였던 1년은 아니었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미디어, IT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을 일컫는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의 일각인 넷플릭스는 하반기에 공개한 오리지널 콘텐츠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조커>는 R 등급 영화 중 최초로 10억 달러를 넘기는 쾌거를 달성했고, 인기 있는 시리즈의 후속작들이나 유명 감독들의 신작들도 공개되어 디즈니의 독주를 견제했다. 리메이크와 후속작으로 가득한 극장가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 속에서 착실히 두각을 나타낸 작품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올해도 어김없이 (주관적인) 해외 영화 Best 20을 정리해보았다.
-일차원적인 스토리와 편의주의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흥분시키는 시그니처 액션. BGM도 CG도 없이 담백하게 이어지는 액션은 예술이라는 말로 부족하다.
Top 17. <미드소마>
-밝고 아름답고 웃음이 넘치기에, 더욱 공포스러운 영화. 흔해빠진 설정으로 만들어낸 <샤이닝> 급의 공포.
Top 16. <위!>
-영화를 봐도 감독의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악마 같은 십대들의 내면을 그려 그들을 변호하지도, 그렇다고 그들을 심판하여 강하게 비판하지도 않았다. 마치 관객의 분노를 유발하는 것만이 목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 이보다 필요한 영화가 있을까. 때로는 현실을 직시하게 해 줄 예술이 필요하다.
Top 15. <더 길티>
-스크린의 화려함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만, 역시 영화는 시'청'각 매체였다. 영화 속 인물들도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언제나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을 뿐이다.
Top 14. <아사코>
-'틀린 사랑은 없다. 사랑을 거스를 수 없다.'
납득하기 어려운, 납득하고 싶지 않은 인물의 행동이 오히려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아사코와 료헤이 모두를 이해하기에 힘들고 혼란스럽다.
Top 13. <러브리스>
-세상에서 사랑이 사라지고 피상적인 형태에 점점 더 집중하게 된다. 무채색의 고요한 거리를 비추며, 영화는 우리에게 세상이 사랑 대신 상처로 가득하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끔 한다.
-왜 당신이 미안해해요. 당신도 꿈과 행복을 잃었으면서... 시스템을 위해 구성원인 사람이 희생되고 있다면, 과연 그것은 정말 올바른 사회일까? 언제나 약자들의 삶을 비추는 켄 로치 감독님의 영화이기에, 전형적인 구성임에도 마음속에 큰 울림을 남긴다.
Top 8. <겨울왕국 2>
-새로운 인물과 배경을 추가하면서도 매끄럽게 엘사와 안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스스로의 힘을 두려워하던 엘사와 그런 언니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던 안나의 성장이자, 디즈니 자체의 성장을 보여주는 작품.
Top 7. <토이 스토리 4>
-마블과 만나기 전, 내 곁에는 그들이 있어주었다. 1편부터 3편까지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오프닝은 그 짧은 시간만으로 잊고 있던 감정들을 되살아나게 한, 올해 최고의 오프닝 중 하나였다. 계속해서 이어져 온 '우디'와 '버즈'의 관계가, 서로를 위하고 각자의 길을 응원해주는 친구라는 관계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Top 6.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영웅으로의 성장'을 마친 소년의 '영웅으로서의 성장'. 개인적으로 최고의 MCU 영화였다.
-영웅이자 빌런이었고, 빌런이자 영웅이었다. 우리는 과연 그를 단순한 범죄자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서'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그에게 공감하고 어째서 그가 '조커'가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그를 둘러싼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보았고, 또 우리의 마음 한편에서 조커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조커>라는 제목에 걸맞은 작품이었다.
2019년을 논하면서 이 영화를 빼놓을 수 있을까. 압도적인 차이로 전 세계 흥행 수익 1위를 기록한 영화. '슈퍼히어로'라는 장르를 대중화하고, 마블 스튜디오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가장 성공한 제작사로 만든 <어벤져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영화.
번외.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 영화를 보자마자 올해 그 어떤 영화도 1위에 오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한 편의 영화로서 완성도가 뛰어난지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그동안 함께 해온 캐릭터와 배우들, 제작진들, 그리고 누구보다 팬들을 위한 헌정작이었다. MCU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히어로들이 집결하는 전례 없는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될 수는 있겠지만, 2008년 <아이언맨>부터 긴 시간을 공유한 사람이 느끼게 될 감정과는 그 크기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개별 작품으로서의 이 영화를 1위에 올릴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이 영화 이상의 벅차오름을 느낀 작품 또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