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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an 01. 2020

2019년, 한국 영화계는 어땠는가

영화 연말 결산 - 국내 Best 10, 종합 Worst 10

디즈니가 시장을 장악하며 실사화와 슈퍼 히어로 영화 위주로 굴러갔던 글로벌 영화 시장과 달리, 한국 영화계의 2019년은 대중 영화와 예술 영화의 경계가 얇아지고 다양한 작품들이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 국내외에서 모두 극찬을 받으며 시상식을 휩쓸었던 <기생충>과 <벌새>는 뛰어난 예술성에 대중성까지 겸비했으며, 대표적인 흥행작 <극한직업>과 <엑시트>는 코미디에 집중하여 대중과 평론가들 모두를 웃게 했다.


상반기에 개봉한 <극한직업>과 <기생충>이 천만을 달성하며 영화 시장을 이끌었다면, 하반기에는 다양한 독립 영화들이 개봉하며 극장가를 풍성케 했다. 또한 <우리집>, <벌새>, <메기> 등 여성 감독들의 활동이 두드러졌고, 서로의 작품 GV에 참여하거나 이벤트를 함께하는 등 시너지를 더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의외의 작품들이 천만을 달성하고 큰 흥행을 기록했던 것과 달리, 명절이나 연말 시즌에 개봉된 텐트폴 영화들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같은 날 개봉한 추석 빅 3(<나쁜 녀석들: 더 무비>, <타짜: 원 아이드 잭>,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영화들 모두 혹평을 피하지 못했고, 연말 대작인 <백두산> 또한 날이 갈수록 평가가 떨어져 갔다. 뿐만 아니라 충격적이었던 <자전차왕 엄복동>과 곡해된 PC(정치적 올바름)로 점철된 영화들까지. Best 못지않게 Worst 후보들 또한 상당했다. 그럼 주관적인 2019년 국내 영화 Best 10과 종합 Worst 10을 확인해보자.


국내 Best Top 10



Top 10. <미성년>

-'배우 김윤석'의 캐릭터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감독 김윤석'의 색다른 작품. 성숙하지 못한 성년들의 이야기를 미성년의 관점에서 풀어갔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엔딩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엔딩 때문에 이 영화를 Top 10에 올렸다.


Top 9. <증인>

-"좋은 사람 되려고 노력할게."

너무나도 상투적이고 때로는 작위적이었다. 그래도 대사가 가슴에 박혀 빠지지 않는다. '김수인' 캐릭터와의 불필요한 로맨스 라인만 없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약간의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Top 8. <82년생 김지영>

-영화 밖 전쟁에 정작 주목받아야 할 '영화'가 묻혀 버렸다. 이 영화를 찬양하고 비난했던 사람들은 모두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이었을까? 물론 전혀 과잉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코 논란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국내외로 '페미니즘'을 내세우기만 한 숱한 영상물들이 개봉되었지만, <82년생 김지영>은 그러하지 않았다. 더욱 자극적이고 편파적인 길을 선택할 수 있었겠지만, '지영'과 '대현'을 통해 서로 이해하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한 따뜻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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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7. <오늘도 평화로운>

-영화에 대한 사랑을 실감하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그랬고, 이 영화도 그랬다. 자본이 없더라도 재치와 상상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스크린 속에 무궁무진한 세상을 그려 넣을 수 있다. '언어의 마술사' 백승기 감독님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Top 6. <우상>

-솔직히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배우들의 대사는 알아들을 수가 없고, 화면은 온통 어두워서 알아보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엔딩을 보며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실제를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믿고 싶은 우상을 따를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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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5. <메기>

-아름다웠고, 놀라웠고, 두려웠다. 원색적인 색감과 재치 있는 내레이션의 활용 등 영화는 동화적인 분위기를 이어갔으나, 중반부터 현실의 어두움을 등장시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의심의 구덩이가, 사라지지 않는 가해자로부터의 트라우마가, 그리고 그것들이 반복되는 이 사회가 너무 두려웠다.



Top 4. <엑시트>

-'웃음과 감동 모두 잡았다.'

신파를 코미디로 승화하여, 과잉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자아냈다. '한국 재난 영화'라는 고정관념을 깬 올해 최고의 엔터테인. 물론 단순히 재미와 감동만이 아니라 '높은 곳'을 향한 레이스, 주변인의 시선, 재난을 콘텐츠화하는 미디어 등 사회를 향한 메시지 또한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Top 3. <우리집>

-'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활용한 아이들의 성장기. 나의 경험과 공유되는 부분이 많아 더욱 와닿았고, 더욱 아팠다. 영화를 보며 그냥 계속 눈물이 나왔다. 과연 이게 연기가 맞을까, 대체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짓고 떨림을 보일 수 있을까. 그 상황에 처한 그 나이대 아이의 모습 그 자체였다. 우리가 지나왔고, 누군가는 지금 겪고 있을 아이들의 세상을, 윤가은 감독님과 배우들은 스크린에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4회차를 하며,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내 마음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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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2. <벌새>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점점 더 감탄하게 된다. 이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기생충>의 1위를 오랜 기간 고민하게 만들었다. 1994년의 학생 '은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됐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그 이야기에는 모두가 공감할만한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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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 <기생충>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영화를 보자마자 '그러한 위상 없이도 올해 1위에 오를 작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영화 속 지독하게도 처절한 인물들의 모습에 씁쓸함이 몰려왔고, 그들이 기생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 환멸이 느껴졌다. 누구 하나 악인도 선인도 등장하지 않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그린 이 시대 최고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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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Worst Top 10



Top 10. <나쁜 녀석들: 더 무비>

-정문이 데려와, 이 족팡매야.

'오구탁'과 '박웅철'이 주역으로 복귀하고, '유미영'과 '정태수'가 잠시 등장하며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실질적 후속작 느낌을 강하게 내고 있다. 그러나 분위기는 원판과 전혀 다른 평범한 명절 범죄 액션으로 변해버렸고, 혐의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시즌 1의 중심인물이었던 '이정문'은 아예 지워져 버렸다. 오히려 이정문과 정태수야말로 <나쁜 녀석들>을 돋보이게 하는 인물들이었는데, 이들을 제외하며 흔한 마동석 주연의 영화로 변질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건에 야쿠자를 개입시키고 적의 보스를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비유하며 극 중 상황을 일본의 침략과 연결 지었는데, 추석 시즌을 노렸는지 당시의 한일 외교 갈등을 노렸는지, 여하튼 한일감정을 적극 활용했다. 사실 태극기나 'KOREA 태권도'라고 적힌 자동차 등은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들임에도, 이것들을 클로즈업하여 구태여 일본과 연관된 이상한 의미를 만들어냈다.


Top 9. <백두산>

-Best에 오른 <엑시트>와 달리, 안전을 추구해 신파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CG는 <신과 함께>보다 어색했고, '지영'은 대체 왜 나온 건지 모르겠다. 사건을 설명하지 않고 새로운 사건을 터뜨리거나 다른 곳의 상황을 보여주는 식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이야기의 개연성이 사라지고 몰입도 끊기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저 하정우와 이병헌의 열연과 케미만이 남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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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8. <마이펫의 이중생활 2>

-일루미네이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 일루미네이션은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에 비해 캐릭터의 귀여움은 압도적이나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었는데, 드디어 '서사'라는 것이 없는 영화가 나와버렸다. 주인공 '맥스'와 아기의 이야기는 나름의 흐름이 있다고 하지만, '기젯'과 '스노우볼'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인기 있는 캐릭터 하나만을 내세운 아무런 의미 없는 내용이었다. 나름 마무리를 지으려고 결말에 가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나로 합치지만, 차라리 옴니버스 구성으로 했다면 낫지 않았을까. 그냥 <슈퍼배드>나 만들어라.



Top 7. <라이온 킹>

-의외로 극사실적인 동물 CG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어딘가 색이 바랜 느낌이었지만, 그냥 동물의 왕국 보는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스카' 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즈니 캐릭터였던 스카를 망쳐놨다. 외형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노래 분량을 반으로 자른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캐릭터들의 감정이 조울증이라도 걸린 것 마냥 급변하는데, 애니메이션처럼 동화적인 느낌이 없다 보니 그 간극이 더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제발,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자.


Top 6. <기방도령>

-조선시대 사람이, 2019년의 관객을, 2000년대의 코드로 웃기려고 애를 쓴다. 간혹 사극에서 현대식 말투가 사용되어 논란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 대다수가 현대식으로 말하니 가끔 등장하는 사극 캐릭터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정말 민속촌에서 연예인들이 조선시대 코스프레하고 예능 프로를 찍는 느낌뿐이었다.


Top 5.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엑스맨>, <맨 인 블랙>, <터미네이터>. 모두 2019년에 신작들이 개봉했고 과도하고 어긋난 PC로 비판을 받았다. 가능하다면 세 작품 모두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예고편은 좋았던' 이 영화만 봤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두는 게 맞나 보다.



Top 4. <자전차왕 엄복동>

-굳이 말이 필요 없는 UBD.

그래도 일단 이야기를 해보자면, 영화는 지극히 단순하고 우연적이다. 무언가 인과관계가 있거니 했더니 그런 건 없었고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거라더라. '엄복동'과 '김형신'의 만남도 딱 2000년대 일본 만화 수준의 전형적인 '보이 미츠 걸'이다. 주인공이 '실수로' 히로인의 가슴을 만지며 첫 만남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다가 히로인이 아픈 주인공을 간병해주더니 갑자기 상냥해진다. 요즘에는 일본에서도 이런 건 올드하다고 안 쓴다. 그리고 독립에 전혀 뜻이 없던 엄복동을 굳이 독립군 이야기로 편입시켜 그를 미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이 도구적으로 소모되고 극의 연결이 엉켜버렸다. 이 영화에 150만이 아니라 150억이 투자되었다는 게 참으로 아깝다.


Top 3. <걸캅스>

-얘도 굳이 말이 필요 없는 걸복동.

<자전차왕 엄복동>도 그랬지만, 그 이상으로 보면서 화가 나는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의 개봉에 긍정적이었고, 앞으로 한국 영화계에 다양성을 가져와줄 것을 기대했으나, <걸캅스>가 몰고 온 것은 혐오와 대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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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2.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답이 없다, 진짜. 그 옛날 코미디 맛집 차승원은 어디 갔는가.

지나친 정도를 넘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사건의 진행이 편의적이다. '철수'가 소매를 걷어올려 근육을 보이고, '샛별'이 모자를 벗어 백혈병 치료 중이라는 걸 어필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애초에 이들에게 음악과 배경 설정을 통해 연민을 느끼게 하려 했다는 점에서 감독은 그들(정신지체장애인과 백혈병 환자)을 전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불쌍함을 이용하는 모습은 자칫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에서의 오해와 편견을 유발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캐릭터들도 많았으며,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캐릭터들도 많았다. 이 영화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무슨 생각으로 끌어온 걸까. 감독에게 그 날의 일은 신파를 위한 소재에 불과했던 걸까.


Top 1. <퍼펙트맨>

-조폭 미화의 끝판왕. 심지어 범죄자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영화.

'영기'는 대체 왜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영화 보는 내내 답답하고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어이도 없는 삼바자 다 갖춘 최고의 망작.


사실 Worst Top 4~1까지는 원래 전부 개별적인 글들을 적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내가 이 기분 나쁜 영화를 왜 몇 번이고 되뇌며 글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 납득하지 못해, 페미니즘 관련해서 한 번쯤은 이야기해야겠다 싶었던 <걸캅스>만 글을 이어가고 나머지는 전부 폐기했다. 정말 인생 역대급 최악의 망작들이었다. 누군가의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에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조심스레 '쓰레기'라고 말해본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부디 2020년에는 Worst 후보가 없어서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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