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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un 26. 2018

일본에서 느낀 영화의 정체성

앞으로도 영화를 대중의 문화라 부를 수 있을까

1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자마자 일본으로 날아와, 지금은 도쿄의 비즈니스호텔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일본은 벌써 일곱 번째지만 지난 여행까지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영화 자체를 넘어 영화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한국 개봉 예정 제목 <어느 가족>)이 제71회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기에, 이를 국내 개봉 전 미리 보고 싶어 영화관 탐방을 결심하게 되었다. 출발 전부터 도시 내 영화관의 위치와 상영작들을 살펴보며 될 수 있는 한 많은 곳에서 많은 작품을 관람하겠다는 꿈을 안고 극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으나, 이 꿈은 두 번째 영화를 예매하면서 지갑 속 돈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한 편당 1800엔이라는 금액은 결코 가볍지 아니했고 영화관으로 향하는 데 부담을 느끼게 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미 높은 일본과 점점 높아지는 한국의 영화 티켓 가격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화는 대중문화다. 그렇기에 영화시장 역시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대중 앞에 상영되기 위해 제작되고 대중에 의해 소비되어 시장이 유지된다. 이 ‘대중성’이라는 것이 영화가 지니는 가장 큰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일명 ‘5센트 극장’이라 불렸던 미국의 ‘니켈로디온(Nickelodeon)’은 저렴한 관람료를 내세워 계급, 성별, 인종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관객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연결했고, 영화를 대중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게끔 했다. 니켈로디온의 예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중성이란 단순히 창작물의 내용에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움직이는 그림 – 영화 – 은 새로운 신비였으며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의식주가 아닌 문화생활을 위한 소비에는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어야만 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중이 영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영화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간다는 행위 즉, 접근성도 함께 충족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접근성이란 영화 자체의 마케팅 외에 영화관의 위치, 인지도 그리고 티켓의 가격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영화관에 오고, ②일정 금액을 지불한 뒤 상영관에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와 대중이 만나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영화에 보다 실질적인 대중성을 부여한다.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와 뛰어난 제작진이 만나 굴지의 영화가 탄생했다 하더라도, 영화관에 사람이 없으면 그 영화는 세기의 걸작이 아니라 대중의 사랑을 얻지 못 한 흥행 실패작으로 남게 될 뿐이다.


1905년 세워진 최초의 영화 전용 극장 '니켈로디온'


얼마 전 대형 멀티플렉스들의 관람료 인상이 큰 이슈가 됐었다. 3대 멀티플렉스의 독점적인 상영 시스템 아래에서 영화값이 오르는 일은 관객의 입장에서 씁쓸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의 제작과 홍보에는 막대한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영화시장은 기업화되고 이윤 창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제작사의 입장에서도, 상영관의 입장에서도 영화 관람료의 인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해서 그 행위가 옳은 것은 아니다. 관람료 인상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영화를 문화가 아니라 단순한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나아가 대중성이라는 영화의 정체성을 앗아가고 다.


물론 그렇다고 관람료를 무조건 낮추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관람료 인상은 단순히 기업의 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화 제작비와도 연관되어 있다. 물가와 인건비의 상승, 화폐가치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영화값이 오를 때마다 늘어나는 대중의 부담은 영화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 접근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영화값을 낮추자’는 이야기 이전에 ‘왜 하필 영화값을 올렸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17년 한국 영화산업 매출 총액의 약 75%는 극장 매출로(영화진흥위원회 '2017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이는 현재 한국 영화시장의 수익 구조가 티켓 판매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극장 매출을 제외한 VOD 서비스나 해외 수출 등을 통한 이윤 창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극장 매출에 더욱 집중하고 관람료를 인상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티켓 판매 외에 새로운 수익 창구가 열린다면, 지금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수익을 거두어들이면서 관람료는 조금 더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나는 영화 제작에 크라우드펀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제작비의 일부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충당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제작사의 경제적인 부담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고, 이는 관람료의 인하까지 이어질 수 있다. 어떻게 제작사의 부담 감소가 영화관의 요금 인하로 이어지는 걸까. 현재 극장 매출의 45%는 영화관이, 그리고 55%를 제작사가 가져간다. 여기서 크라우드펀딩은 제작사에게 새로운 수익 창구가 되어, 박스오피스 의존도를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현재의 영화관과 제작사의 수익 배분율 조정이 가능해지고, 더 낮은 관람료에서도 양쪽 모두 지금과 같은 수준의 소득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크라우드펀딩은 관객들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이전에 마블에 관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대중의 참여다. 영화는 대중문화이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과 참여는 필수 불가결하고, 그렇기에 대중성과 접근성이 중요하게 고려된다. 크라우드펀딩이란 문자 그대로 대중으로부터 받는 투자 혹은 후원을 의미한다. 대중은 이를 통해 영화 제작에 경제적인 지원을 보낼 수 있고, 자신이 영화의 완성에 기여했다는 만족감, 제작진에의 소속감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자체에 대한 높은 흥미와 애정을 가지게 된다. 자신이 후원한 영화가 개봉한다면 그에 대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이며 물론 본인도 상영관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렇듯 크라우드펀딩은 배급사가 아닌 개인에 의한 마케팅을 활성화시키고 일정 수의 관객을 개봉 이전부터 확보하여, 영화의 흥행에 기여하게 된다. 이에 더해 비싸다고 인식되어 있는 영화 티켓 가격이 내려간다면, 영화관에 대한 접근성이 증가하여 신규 관객의 유입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얼핏 보면 이는 조삼모사 식의 궤변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금액을 지불하더라도, 이미 높아진 티켓 가격으로 내는 것과 일부를 영화 제작에 후원하는 것은 대중의 심리는 물론이고 그 의미와 효과 역시 다르다. 크라우드펀딩은 대중을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케 함으로써 ‘대중문화’라는 영화의 본질을 더욱 확고히 하며, 나아가 더 이상 대중이 문화의 소비자에 국한되지 않고 감독과 소통하는 교류의 장을 형성하는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관람료 때문에 영화를 보지 못하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티켓 가격은 계속해서 높아질 것이고, 언젠가 일본을 따라잡을지도 모른다. 이 예측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우리는 영화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까? 그때도 영화를 대중의 문화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영화 시장의 종사자도 전문가도 아니기에 무엇이 정답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저 영화를 사랑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영화가 소수만이 아닌 대중이 즐기는 문화로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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