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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ul 23. 2020

K-좀비는 어디에, <#살아있다>와 <반도>

외국 영화 같은 한국 영화

조일형 감독의 <#살아있다>와 연상호 감독의 <반도>가 연이어 개봉하며, 한국 극장가에 좀비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좀비가, 그것도 좀비 영화가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소설이나 만화, 특히 게임에서는 좀비가 단골로 등장해왔지만, 영화의 경우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좀비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다. 실사 영화라는 특성상, 움직이는 시체와 그것들의 식인 행위가 데포르메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대중에게는 커다란 진입장벽이 되었다.


<28일 후>와 <새벽의 저주>가 그랬듯이, <월드워Z>와 <부산행>도 좀비 영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B급 호러 특유의 긴장감은 유지하되, 묘사의 수위를 조절했고 더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 한 마디로 좀비 영화에 블록버스터 법칙을 적용한 것이다. 유명 배우의 캐스팅, 화려한 CG와 액션,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 더 많이 투자할수록 더 많은 주목을 받고 결국 더 크게 성공한다는 블록버스터 법칙에 따라, 좀비 영화에도 흥행의 은총이 내려졌다. 과거 저예산의 상징이었던 좀비 영화에 거대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했고, 이제 좀비 영화는 DVD를 빌려 방에서 불 끄고 보던 시절을 지나, 여름방학에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액션 블록버스터로 거듭났다.



대중의 니즈를 수용하며 좀비물은 점차 호러나 크리처 무비를 벗어나 재난 영화로서의 모습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좀비 사태가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탐구보다는 갑자기 들이닥친 재난 상황에서의 생존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지난 <#살아있다>의 세일즈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영화는 중반부까지 거의 주인공 '준우(유아인)' 한 명만을 화면에 담았다. 그것도 여느 좀비물의 주인공처럼 밖으로 나가 영웅이 되는 모습이 아닌, 집 안에서 서서히 고독에 지쳐가는 모습을 말이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 아닐까? 실제로 좀비에 맞서며 리스크를 짊어지기보다는 구조를 기다리며 '살아있음'을 알리는 게 훨씬 더 상식적인 판단이다. 비상식량을 모으고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SNS를 업데이트하며 하루하루 변하는 준우의 심리 묘사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이 영화 제일이자 유일의 묘미였다.


<#살아있다>가 생존에 집중하였다면, <반도>는 좀비 사태 후 4년이 지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였다. 불 꺼진 서울과 그곳을 지배하는 무법자들. 드라마 <워킹 데드>나 영화 <나는 전설이다>처럼 종말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작되어왔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도 딱 영화의 배경인 오목교 주민이었던 나에게 있어, 익숙할 터인 장소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지 않을 수 없다. 뭐, 아쉽게도 영화 속 목동은 그저 이름만 빌려왔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부산행> 이후의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뤘다는 점에서 배경과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영화의 빌런인 '631 부대'다. 이런 장르에 꼭 빠지지 않는 전형적인 세기말 약탈자 분위기의 그들이었지만, 그 속에 딱 하나 신선함이 있었다. 바로 이들의 지휘관, '서 대위(구교환)'였다. 미치광이로 불리는 부대원들과 달리 그는 오히려 고독과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부대의 일은 모두 '황 중사(김민재)'와 '김 이병(김규백)'에게 맡긴 채, 벽에 붙여놓은 포스터 속 모델과 대화하며 술잔을 비우기 바빴고, 결국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직접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다. 마치 '유빈(박신혜)'을 만나기 전 <#살아있다>의 준우처럼.


그 역시 준우와 마찬가지로 고립된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희망의 끈에 마치 어린아이처럼 매달렸을 정도로 말이다. 유빈과의 첫 만남 이후 준우가 함께 살아남자는 의지를 다졌듯이, 위성전화를 발견한 서 대위 또한 반도 밖에서 새로이 시작할 인생을 꿈꿨다. 영화 속에서의 모습만으로는 그가 절대적 악인인지 알 수 없다. 분명히 선인은 아니지만, 대신 그의 행적이나 대사들을 통해 우리는 어느 정도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인정하고 용서하는 게 아니다. 그저 지금의 코로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그가 왜 그리 무기력해졌으며, 반대로 왜 그리도 탈출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생존과 연결은 이제 우리의 열망이기도 하니까. 영화가 조금만 더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어쩌면 그는 작년의 '조커'처럼 대중의 공감을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 영화 모두 각각의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완성도는 처참했다. 개연성은 고려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고, 스스로 만든 설정조차 수차례 흔들렸으며, 그렇게 무너지려는 영화를 오로지 신파와 볼거리만으로 붙잡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 자체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종래의 상업영화에서 액션과 신파에 의존하지 않는 작품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이거니와, 그만큼 그것이 흥행공식으로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솔직히 말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상업영화가 재미만 있다면 그만이지 않은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두 영화는 조금 더 고민했어야만 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 영화들이 앞으로 'K-좀비'의 기준이 될 테니까.


K-좀비는 하나의 브랜드다. 브랜드는 그 자체로 경쟁력을 지니며, 파급력이 큰 문화 상품의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글의 시작에서 언급했듯이 좀비 영화는 점점 더 메이저해지고 있다. 좀비물은 몇십 년을 이어져왔음에도 근래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상업화되었기에, 아직 주류 시장 내에 다양한 아이템들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영미권의 정통 호러 및 액션 블록버스터와 일본의 만화 원작 실사판 정도이고, <부산행>과 <킹덤>의 성공으로 한국의 좀비가 주목받기 시작하여 K-좀비가 화두에 올랐다. 그러니 마침 개봉을 앞두고 있던 <#살아있다>와 <반도>가 K-좀비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키워갈지에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두 영화에 K-좀비는 온데간데없었고, 마치 배경만 한국일 뿐인 일본이나 미국 영화를 보는 듯했다. K-좀비란 무엇인가? 한국에서 만들면 다 K-좀비 영화가 되는 건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 물론 무조건 독창적이고 새롭다고 해서 좋은 브랜드인 것은 아니다. 클리셰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것을 참고하면서 추가적으로 자신만의 스파이스를 더했을 때 안정적이면서도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살아있다>와 <반도>는 그 스파이스가 너무나 미미했으며, 다른 작품을 참고하는 것조차 서툴렀기에 문제였다.


배역을 맡은 유아인 배우가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살아있다>의 준우는 일본 만화의 히키코모리 주인공과 다를 게 없었으며, 심지어 <반도>의 '정석(강동원)'은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지닌 본래의 매력조차 덮어버릴 정도로 평범하고 식상했다. 문제는 주인공만이 아니다. 다른 주조연 캐릭터들은 물론이거니와, 좀비 영화의 핵심인 좀비 연출까지도 문제가 있었다. 그나마 <#살아있다>는 좀비로부터의 생존을 목표로 하여 좀비의 위협이 지속적으로 등장했지만, <반도>의 메인 빌런은 어디까지나 631 부대였기에 좀비 영화에서 좀비가 도구나 장애물로 취급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작 그 631 부대는 수위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전혀 공포스럽지 않았지만 말이다.



<#살아있다>의 좀비들은 강하고 영리했으며, 무엇보다 주인공이 처해 있던 '고립'이라는 상황이 그들을 더욱 위협적으로 만들었다. 비록 유빈의 손에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쓰러졌지만, 줄을 타고 벽을 오르던 소방관 좀비의 표정은 지금까지도 쉽사리 잊히지가 않는다. 반면 <반도>는 좀비를 밀어내고 631 부대를 중심에 세웠다. 그런데 그들에게 메인 빌런을 꿰찰 위용이 있었는가? 겨우 '숨바꼭질' 정도로는 그들의 광기를 표현하기에 한참 모자랐다. 수위 때문에 자극적인 장면들을 넣지 못한다면 오히려 서 대위를 중심으로 강력한 전체주의 집단을 그렸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실제로 631 부대보다는 현실의 나치나 일본군이 훨씬 더 미쳐있었으니까. 영화 속 그들은 지나치게 가볍고 여유로웠다.


기대가 컸던 만큼 영화에 대한 아쉬움도 커지고 말았다. 신파도 신파였지만 정체성이 사라진 K-좀비에 더 크게 실망했다. 오히려 그 신파마저 하나의 무기로 만들 수는 없었을까. 단순히 할리우드식의 가족주의가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 자그마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현실적인 신파가 K-좀비의 강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꼭 이것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볼거리에 치중되지 않고 캐릭터와 이야기의 완성에도 시간을 투자한다면, 분명 그 과정 속에서 K-좀비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 언제 또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 작품은 부디 더 고민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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