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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ul 05. 2018

내 안의 괴물을 인정하는 용기, <몬몬몬 몬스터>

어엿한 한 편의 성장영화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7년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으로 관객들과 미리 만난 구파도 감독의 신작 <몬몬몬 몬스터>가 곧 7월 12일 정식 개봉을 통해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로 많은 대중에게 첫사랑의 추억을 상기시키고 한국에서 대만 로맨스 영화의 붐을 일으킨 구파도 감독이 상상치 못 한 방향으로, 그러나 놀랍도록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해 돌아왔다. 같은 청춘을 다루면서도 그들의 사랑이 아닌 그들에게 존재하는 괴물과도 같은 일면을 드러내어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사회고발성 영화들과는 구별되는 차별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괴물을 활용한 점이나 특유의 유쾌하고도 잔인한 연출도 그러하지만, 나는 문제의 해소가 주인공의 성장으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았다. 폭력으로 가득 찬 괴물들의 세상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혁명도 법도 아닌 개인의 인격적 성장이다. 그리고 그 성장은 본인도 괴물임을, 자신의 내면에도 괴물이 살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쟤들이랑 달라.

이야기의 중심인 ‘린슈웨이’는 계속해서 자신은 가해자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런하오’ 일당에게 괴롭힘 받는 왕따 소년이었고, 때문에 일당의 새로운 장난감이 된 괴물에게 작중 유일하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붙잡은 괴물을 괴롭히면서도, 괴물과 둘만 있을 때는 ‘나는 널 도와주는 거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어쩔 수가 없었다.’라며 되뇌었다. 하지만 이는 끝없는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그 역시 괴물을 고문하며 즐거워했고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 괴물을 죽이는 선택을 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은 다르다고 부정하면서도 사실 그는 런하오 일당의 일원이 되고 싶어 했다.


영화 속에서 린슈웨이는 세상에는 나쁜 놈이랑 바보뿐이라 말했다. 이는 비단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진리로서 인식되어져 있다. ‘착하게 살면 손해를 보게 된다. 착한 사람은 바보 같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버림받고 무시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택한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 괴롭히며, 그 화살이 자신을 가리킬 수 있다는 불안에서 벗어나고 괴물들에게서 동료의식을 얻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만은 남들과 달리 ‘진짜’ 괴물이 아니라며 자신을 속이고, 어쩔 수 없었다며 눈을 돌린다.


그러나 여느 이야기와 달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절대악이 존재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장난이나 방관이 누군가에게 괴물의 위협으로 작용하고 새로운 괴물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작중 악의 근원으로 묘사되는 런하오가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담임선생님은 수감 중인 그의 아버지로 인한 가정교육의 결여를 원인으로 삼았지만 이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기에 실제로 그러한지는 단정할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가정환경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에 대한 사회의 낙인이 런하오의 폭력성을 크게 고취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폭력은 린슈웨이에게 이어지며 괴물을 재생산하고 있다.



너는 우리랑 달라.

영화의 엔딩에서 린슈웨이는 왕따 여학생에게 이 말을 하며 급식으로 나온 국을 마시지 못 하게 했다. 이러한 그의 행동에서 그도 완전한 괴물이 된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성장영화이고, 여기서 성장은 주인공이 괴물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을 돌아보고 괴물에서 인간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의미한다. 괴물이 죽은 뒤 일상으로 돌아간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엔딩 시퀀스는 마치 렌즈에 붉은색 셀로판을 붙인 것처럼 세상을 다홍빛으로 표현했다. 이는 자신도 괴물임을 인정한 린슈웨이의 죄의식을 나타낸다. 그는 자신에게도 존재하는 폭력과 이기심을 인지하고, 이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인간의 탈을 쓴 괴물들’에게 분노했다.


학생들이 모두 잠든 뒤 린슈웨이가 복도로 걸어 나오며 세상은 원래의 빛깔로 돌아온다. 자신을 포함한 괴물로 가득한 학교의 급식 국물에 괴물의 피를 섞어 괴물의 시대를 끝내는 것으로 그의 죄책감이 청산된 것이다. 자신 내면의 괴물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을 괴롭히고 방관하며 살아온 학생들은 이윽고 그 몸마저도 괴물로 변하여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 불에 타는 괴물들을 뒤로한 채 복도를 걸으며 포효하는 린슈웨이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인간다웠다. 영화 초반 린슈웨이는 자신을 걱정하는 왕따 여학생에게 그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하지만 엔딩에서 건넨,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말은 ‘되고 싶지 않은 그에의 혐오’가 아니라 ‘되지 못 한 그에의 경의’를 담고 있다고 느껴졌다.



사회 속에서 되풀이되는 괴물의 재생산을 막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도 괴물과 같은 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괴물로 남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린슈웨이의 성장을 통해 이를 보여줬고, 나 역시 영화관을 나오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왕따뿐만 아니라 노인과 장애인의 소외, 여성과 생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등 영화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있다.


물론 포스터와 예고편이 그러하듯 영화는 생각할 거리뿐 아니라 눈과 귀가 즐길 거리 또한 가득하다. 괴물에 의한 학살을 표현하는 연출에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떠올랐고, 잔인한 장면에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은 그 괴리를 통해 관객을 더욱 고조시켰다. 무엇보다 버스 장면은 여기에 교차편집이 더해져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의 극치를 느끼게 했다. 구파도 감독은 나의 머스트 워치(Must watch) 감독이 되었고, 그의 다음 작품과 함께 곧 있을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12~7/22)가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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