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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Aug 10. 2018

이용하는가 혹은 이용당하는가, <업그레이드>

우리는 '제대로' 업그레이드하고 있을까

기계로 덮인 세상에서 우리는 기계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업그레이드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기계의 사용을 넘어, 영화처럼 기계를 몸에 이식하며, 기계와 몸을 공유하고, 이윽고 기계에게 그 몸을 내주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업그레이드’라 할지언정,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해외 매체들의 호평과 믿고 보는 제작사 ‘블룸하우스(BLUMHOUSE PRODUCTIONS)’가 주는 신뢰감에 힘입어, 영화 <업그레이드>는 단연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기대에 보답하듯 영화는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예상을 뛰어넘는 호평과 함께, 곧 있을 9월 6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로 상영된 영화제와 달리 개봉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로 공개되어, 편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었지만 블러나 편집 없이 오리지널로 개봉한다 밝혀져 다른 의미로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 공개된 한국 메인 예고편에는 잔인한 장면과 F워드가 편집되어 있는데, 소위 ‘청불 예고편’이 아닌 이상 연령에 제한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예고편의 특성상 편집 버전 예고편만이 공개된 듯하다.


예고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크게 주연 ‘그레이’에 대한 설명과 그가 인공지능 칩 ‘스템’을 만나 펼치는 액션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자동화된 기계로 덮인 세상에서 그레이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를 수리하며 살아가는 괴짜이다. 그는 항상 기계는 오작동할 수 있다 말했는데 이는 정비공이라는 그의 직업과 함께 관객이 그레이라는 인물을 더욱 잘 이해하게 돕는다. 결국 그는 기계의 오작동으로 인해 아내를 잃고 자신은 사지가 마비되어 기계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된다. 이후 스템이라는 칩을 이식받으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아내의 복수를 하는 것이 예고편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본편은 어떠할까? 예고편의 Sci-Fi 액션을 주축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본편은 이에 더해 현대인을 향한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본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다른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애니메이션 <PSYCHO-PASS>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후로, 경제위기가 초래한 혼란 속 유일하게 남은 법치국가에서 현재의 형사와 같은 감시관과 집행관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사회에는 홀로그램과 AI 등 과학기술이 발전되었고 이는 사람들의 삶에 지금보다 더욱 밀접히 얽혀 있다. 작중 감시관과 집행관들은 사람들의 '범죄 계수'를 측정하여 잠재범(잠재적 범죄자)을 속출해내고, 일정 수치 이상인 경우 그 자리에서 처형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범죄 계수는 '시빌라 시스템'이라는 프로그램에 의해 산출되는데, 작품 속 사회에서 시빌라 시스템은 절대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시빌라의 판단은 일종의 신탁으로 여겨진다. 아직 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시빌라에 의해 잠재범으로 판단된 자는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대중들은 진학부터 취업이나 결혼 상대까지 시빌라의 추천 - 강제적이지는 않지만 앞서 말했듯이 따르는 게 당연시된다 - 을 따른다.


<업그레이드>와 <PSYCHO-PASS>에서 묘사되는 사회 모두 우리가 흔히 '4차 산업 혁명'이라 부르는 변화가 이루어진 모습을 띄고 있다. 자동화된 기계들과 인공지능의 은총을 받아 사람들의 삶은 더욱 편안하고 윤택해졌으며, 이를 보는 관객들은 미래에 대한 선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두 작품이 관객에게 야기하는 것은 낙관적인 선망만이 아니다. 대사나 사건 등 여러 요소들을 통해 작품은 우리에게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라는 뜻의 영단어 리터러시(literacy)에 디지털이 결합된 단어로서, ‘디지털 기술과 그 부산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생활 속 많은 시간을 기계와 함께하며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잠시 대화문을 보도록 하자.

센구지: (전신의 5할을 넘는 사이보그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기분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정도(程度)의 문제이지요. 예를 들면 당신, 당신도 어엿한 사이보그입니다.
인터뷰어: 하지만 저는 의수도, 의족도, 인공장기도 사용하고 있지 않은걸요.
센구지: 휴대 정보 단말을 가지고 계시지요?
인터뷰어: 네 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요?
센구지: 코스튬 디바이스도, 그리고 집에는 홈 오토메이션(사물인터넷과 자동화)과 AI 비서도요. 그 데이터가 재해나 사고로 인해 갑자기 사라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터뷰어: 그러면… 복구될 때까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센구지: 자신의 생활을 그렇게까지 전자적인 장치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사이보그가 아니라 말씀하셔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휴대 단말은 이미 제2의 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과학의 역사는 곧, 인간 신체 기능의 확장. 즉 인간 기계화의 역사와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정도의 문제인 겁니다.

위 문답은 <PSYCHO-PASS> 1기 9화의 한 장면을 옮겨온 것이다. ‘센구지’라는 인물은 뇌와 신경계를 제외한 모든 신체부위를 기계로 대체한 인물로, 사이보그화에 대한 그의 인터뷰는 현실의 우리에게 기계에 대한 스스로의 높은 의존도를 일깨운다. 우리는 당연히 <업그레이드>의 그레이나 위의 인터뷰어와는 그 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기계가 없는 생활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디지털 사회는 도래했고 발전은 계속될 것이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사물과 인간, 사회 모든 것이 연결되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등장한 사회에서 기계는 우리에게 필수 불가결하다. 나는 러다이트 운동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가 기계의 작동을 위한 트리거로 소모되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상품을 맹목적으로 쫓는 것보다는 비판적인 소비자, 이용자로서 0과 1의 세계를 마주할 필요가 있다.


*이 앞에는 <업그레이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해피엔딩을 맞는 자가 주인공이라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스템이다. 그는 명령을 내릴 뿐인 인간도, 명령을 따를 뿐인 기계도 초월하여 더욱 진화된 존재가 되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모든 일에 그레이의 허가를 구했으나 액션신에서는 통제권을 넘겨받았으며 결말부에 가서는 그레이의 정신을 유폐시키고 몸의 주인이 된다. 아내가 살아있는 환상을 보며 행복에 젖어 그 속에 안주해버리는 그레이의 모습은, 영화 중반 자지도 먹지도 않은 채 링거를 맞으며 VR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연상케 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맹목적인 기술의 수용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역경을 이겨 내어 성장을 이루는 일반적인 주인공과 그레이 사이의 괴리는, 결말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음으로써 관객들에게 영화의 메시지를 확고히 각인시킨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업그레이드> 예고편 마지막 장면의 그레이와 같다.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스템의 폭력적인 방식에 당황하거나 눈살을 찌푸리던 이전과 달리, 그는 자신이 닌자라는 허세 가득한 대사를 말하며 스템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믿고 있을지언정, 그는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다. 스스로 톱니바퀴가 되어 스템에게 모든 걸 맡기고는 마치 그것이 자신의 능력인 양 도취된 것에 지나지 않다. 후에 스템이 직접 밝히듯이 그는 그저 스템이 움직이기 위한 부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있어 전자기기는 마치 펜이나 칼과 같은 도구다. 누군가가 만들어냈고, 지금 우리 눈앞에 있기에 당연한 듯이 사용한다. 그러나 당연하기 때문에 기술을 사용함에 있어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기보다는 맹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며, 사람들은 얼리 어답터의 의미가 아닌 일차원적 신상족이 되어 가고, 디지털 세상의 정보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레이와 우리 모두 사고 과정, 나아가 자기 자신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레이의 태도 변화와 결말에서의 그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문제점들을 상기시키려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될 것이고 이에 따라 사회 역시 쉬지 않고 변화할 것이다. <업그레이드>와 <PSYCHO-PASS> 같은 SF작품들은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당장 집 안팎에 펼쳐진 디지털 세상을 살아갈 우리도 이제는 ‘제대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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