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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an 02. 2021

2020년, 그럼에도 좋았다

영화 연말 결산 - 국내 Best 10, 종합 Worst 10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던 한 해였기에,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 뉴스를 찾을 것까지도 없이 주변의 상가나 거리를 보는 것만으로 느껴질 정도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심각하겠지. 그렇기에 확실히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는 말이다.


참담했던 2020년이, 그럼에도 좋았다니.


어려웠다. 숙박에 항공까지 예약을 끝내 놨던 친구와의 여행도 취소되었고, 매년 다니던 영화제의 즐거움도 줄어들었다. 좋아하던 식당이, 좋아하는 서점이 폐업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소중한 추억이 흐려지는 것만 같았다. 남들만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도 분명 2020년은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2020년에도 즐거움은 있었다. 좁혀져 가는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느꼈고, 가끔씩 사람들과 만나는 그 시간은 더없이 소중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2020년에도 많은 훌륭한 영화들이 찾아와 주었다. 스크린 속의 평범한 일상들이 너무도 따스했기에. 영화로운 경험들이 너무도 황홀했기에. 나는 2020년에 느낀 그 감정들을 그저 '힘들었다'는 표현 뒤로 넘겨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여기에 그 기억들을 남겨보자.


그런데 이제 망작을 곁들인….



국내 Best Top 10



Top 10. <기기괴괴 성형수>

-3D 모델링은 어색하고 인물들의 캐릭터성도 지극히 전통적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일본도 넷플릭스도 아닌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 높은 평가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클라이맥스에 클래식 삽입하는 것. 정말 최고였다.


Top 9. <럭키 몬스터>

-호불호가 극심하며 내게도 아쉬움이 남았다. 주인공의 성격이나 각성에 임팩트가 없었다. 하지만 극의 색감이나 진행 방식은 매우 신선하고 수려했으며, 어찌 되었든 올해 극장에서 가장 황홀했던 순간 베스트 5에 들어갈 정도로 흥분됐던 장면들도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는 감독의 다음이 기대된다.


Top 8. <나를 구하지 마세요>

-제목에 끌렸다. 저 아이에 저 제목인데 어찌 안 볼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내 마음이 더 넓어지고 성장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었고 이해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이 영화를 다시 보며 공감하고 이해하고 싶다. 나를 바꾸는 힘을 가진 영화였다.

브런치 글 - 나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Top 7. <내언니전지현과 나>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에도 - 어쩌면 그런 세계이기에 - 진짜 인연이 있다. 게임을 한다는 건, 현실을 버리는 것도, 잊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도' 살아갈 뿐. 게임을 하지 않은 나조차도 그 유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Top 6.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비선형적인 영화의 구조와 곳곳에 숨겨진 복선들. 분명 재밌는 장치들이지만 이 작품의 최대 매력은 역시 배우들이지 않을까. 배성우, 전도연, 정우성, 정만식, 윤여정, 윤제문. 그야말로 보물상자다. 특히 배성우 배우님과 전도연 배우님은 가히 역대급의 연기였다.


Top 5.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위의 <지푸라기>와 마찬가지로 미친 듯이 내 취향 저격이었다. 취저 부문이 있다면 무조건 1위다. 신정원 감독님 특유의 B급 코드로 인해 아마 대중에게 사랑받거나 재평가를 받는 일은 어렵겠지만, 언제까지고 마니아들에게 사랑받지 않을까 싶다.



Top 4. <콜>

-아쉬운 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올해 최고의 배우와 올해 최고의 해피 엔딩을 만났다. 워낙에 트리키한 엔딩 때문에 다양한 해석과 평가로 갑론을박이 벌어졌었고, 그 속에서 나도 계속해서 곱씹고 곱씹으며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극장에서 봤다면 더 좋았을 텐데….


여담으로 원래 칸 영화제처럼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고 스트리밍 플랫폼으로만 공개된 영화들은 순위권에서 배제했었다. 작년의 <결혼 이야기>도 일부 극장에서 제한 상영으로 개봉했었기에 Best 순위에 넣을 수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극장주의자이다 보니,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고집을 부리면서라도 신념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똥고집이라 그런 거지만.


하지만 그런 나만의 룰을 굽히고 넷플릭스 공개작을 올릴 정도로, 영화 <콜>은 훌륭했다.

브런치 글 - 해피 엔딩을 쟁취하다


Top 3.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러니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그냥 너무 좋았다. 공감했고 위로받았고 울고 웃었다. 그냥… 참으로 영화로웠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깊게 느낄 수 있었다.



Top 2. <남매의 여름밤>

-진정으로 영화를 봤다고 느꼈다. <찬실이>와 같다. 이 영화가 좋은 너무 많은 이유들이 있어 말로 담아내지를 못하겠다. 큰 기교 없이 담담하게 가족의 일상을 담은 카메라는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지긋이 그들을 화면에 담으며,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기억을 돌아보고 공감할 수 있게끔 했다. 누구나 겪었을 평범한 일상이 영화가 되는 마법. 그 감동에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극장을 떠나지 못했었다.

브런치 글 - 영화와 내가 겹쳐질 때


Top 1. <소리도 없이>

-마치 <기생충>과 다시 한 번 만난 듯한 경험이었다. 이 영화는 미쳤다. 영화의 미장센이나 캐릭터 클리셰 비틀기, 자그마한 디테일 등.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과 마주한 듯했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열흘 밤낮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는 적을 수 없지만, 죄를 지은 주인공에 대한 마무리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훌륭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괴당한 아이 '초희(문승아)'는 <콜>의 '영숙(전종서)'과 함께 올해 최고의 캐릭터이자 배우 공동 1위다. 유아인 배우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은 채 극을 가득 채운 배우의 연기력과 캐릭터의 치밀함에 소름 돋았고 황홀했다.


나는 한국 영화에서 소비되는 아역 캐릭터들을 싫어한다. 아이는 그저 어리기만 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능글거리는 애어른 같기만 하지도 않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과 조금만 대화를 나눠본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한국 영화에서 아역은 어디까지나 극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마스코트 역할 수준에 그치고 있고, 나는 그 점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그러니 <소리도 없이>의 문승아 배우가 최고일 수밖에. 윤가은 감독님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억지로 아저씨 같은 개그나 치는 아이 캐릭터들과 달리, 정말 살아남기 위해 성숙해져 버린 현실의 아이가 있었다.


본래 이 영화에 대해서는 당연히 브런치에 글을 쓸 예정이었고, 나름 러프도 써놨었다. 하지만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끝내지 못한 채 넘겨버렸는데, 늦었지만 언젠가 다시 완성해서 생각을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2020년은 각 부문 1위 작품들이 다 개별 글이 없네. 2021년에는 분발해야겠다.




워스트 영화들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기에, 짧은 코멘트만으로 흘려보내자. SNS에 올린 당시의 짧은 리뷰들 보니 다시 스멀스멀 안 좋은 기억들이 올라온다.


베스트 후보는 부족했는데, 이상하게 워스트 후보는 넘쳐나서 누구를 올려야 하나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그래서 소개하는 아쉽게 탑텐에 탈락한 워스트 후보작들 몇 편.

<너는 달밤에 빛나고>, <해치지 않아>, <오케이 마담>, <#살아있다>, <정직한 후보>


종합 Worst Top 10



Top 10. <수퍼 소닉>

-개연성도 잃고 재미도 잃고 속도감까지 잃어버린 소닉.

소닉을 즐긴 세대는 적어도 내 나이 정도 될 텐데 웬 아동용 영화가 나왔다.


Top 9.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언럭키 <데드풀 2>에 해외판 <걸캅스>.

브런치 글 - DC도 아니고 PC도 아닌


Top 8. <반도>

-'K-좀비' 대신 'K-신파' 한가득.

브런치 글 - K-좀비는 어디에



Top 7. <강철비2: 정상회담>

-1편의 당돌함은 어디에? 이게 <PMC: 더 벙커>와 다를 게 뭔가.

"일본 나빠 미국 나빠 중국도 나빠. 근데 우리 동포 북한은 사실 착하고 우리는 운전대를 잘 잡고 있어!"

신정근 배우가 연기한 부함장이 엄청 멋있었으니 정치 프로파간다 영화로서는 성공했을지도 모르겠다.


Top 6. <담보>

-생각해보면 재밌는 게, 이 영화 소재가 은근 <소리도 없이>랑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 모양인 건 무한으로 퍼주는 K-신파 때문이다. 중반까지는 같이 슬퍼했고 나름 좋았는데, 똑같은 눈물 패턴이 한 5번은 반복되니까 그냥 지치더라.


Top 5. <뉴 뮤턴트>

-안야 테일러 조이는 여기서도 예뻤다. 그냥 유튜브에서 안야 나오는 클립만 보기를.



Top 4. <국제수사>

-재미도 감동도 없다. 출연진 때문에 기대했었지만 건진 거라고는 슈트에 반바지 입은 멋진 김희원 배우님 뿐이었다. 스토리는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했고, 필리핀에 대한 묘사는 거의 모욕인 수준이었으며, 어색한 CG에 쌍팔년도 개그, 불필요한 장면들까지. 명절이라고 잔뜩도 챙겨놨더라. 아니 패트릭은 주인공 일행을 왜 안 죽이는 건데? 대여섯 명이 총 들고 그냥 가만히 서있으니 그림이 참 어이가 없다. 보여주기 식의 다문화 가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주인공 병수의 딸은 위에서 말한 '한국 영화의 전형적인 아이 캐릭터'였다.


그리고 일단 영화에서 아무도 지적을 안 하던데 난파선 등에서 나온 보물을 개인 소유로 하는 건 국내법 상으로 엄연한 불법 행위다. 그걸 가지고 은행 직원한테 갑질 하는 것도 범죄고.


Top 3. <이웃사촌>

-영화에 출연한 배우나 영화의 모티프가 되는 인물은 관계없이, 그냥 영화가 별로다. 감독이 무슨 공권력과 원한이 있는 건가. <7번방의 선물>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자꾸 정치적인 문제와 신파를 섞어서 감정적인 비난을 하게끔 만들고 있다. 그들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과거를 향한 비판은 드라이하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감정싸움이 현재에 되풀이될 뿐이니까.


이 영화는 다분히 선동적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정치적 색깔에 따라 선과 악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다. 심지어 작중 대사를 통해 이들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서민을 생각하는지, 또 얼마나 악랄하고 부패했는지를 반복적으로 설명하기까지 한다. 무슨 주입식 교육인가.


그리고 이 영화는 아마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잘못되었을 것이다. 인물들의 감정 변화나 스토리텔링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특정 상황의 연출만을 생각하면서 대사와 행동을 구상하니, 캐릭터는 손바닥 뒤집듯 훅훅 바뀌고 그걸 보는 관객은 어이가 없어질 수밖에.


나쁜 개는 없다는데, 공교롭게도 올해의 나쁜 영화 포스터에는 모두 개가 있다.


Top 2. <오! 문희>

-참 나쁜 영화다.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를 떠나서 감독의 의도부터가 정말 나쁘다. 치매 노인의 언행을 희화화하고 그에 대한 주변인들의 언어폭력을 정당화했다. 작중 아들의 태도는 어떻게 봐도 정상이 아닌데, 그걸 모자의 정으로 포장하는 건 너무 잔인하고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예전에 전공교류로 언론학과 쪽 강의들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했던 과제 중 하나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 및 배포한 '언론인을 위한 장애인권 길라잡이'를 읽고 관련 사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쪽 분야에 꽤나 예민한 것은 그때 들었던 강의 때문일까. 아니, 그 덕분에 이렇게 잘못된 것을 가려낼 수 있게 된 거겠지.


열연을 펼치시는 나문희 선생님의 모습이 그저 안타까웠다. 왜 이런 영화에 나오신 걸까.


Top 1. <미스터 주: 사라진 VIP>

-총체적 난국이다. 2020년 초에 이 영화를 보고, 그 순간 바로 워스트 넘버 원이 결정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엄복동>을 비롯한 지금까지 봐왔던 망작들의 평가가 조금씩 높아졌을 정도로, 이건 엄청난 망작이다. 웃기기라도 했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웃기지도 않는 촌극의 연속이었다.


이 영화의 주 타깃은 미취학 아동들이었을까. 과도하게 유치하고 과장된 대사와 행동들은 그런 의문이 들게 했다. CG는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달력을 확인해볼 정도로 형편없었는데 제작비는 어디에 투자한 걸까. 아, 그건 알겠다. 연예인 캐스팅에 다 쏟아부었구나. 각종 동물들의 목소리 연기로 유행어 하나씩은 갖고 있는 연예인들을 데려왔는데, 제발, 제발, 제발. 더빙은 전문 성우분들에게 좀 부탁드리자.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어색하지. 영화 속 출연진들이 지금 동물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평소처럼 유행어를 던질 뿐이니 계속 방해만 될 뿐이다.


영화를 보며 상당히 불쾌했던 것 중 하나는, '미스터 주의 딸(갈소원)'이었다. 굳이 이름을 검색하고 싶지도 않다. 적당히 이해하면서 보려고 했는데, 하는 말들이 딱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의 그 아이랑 똑같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무기로 이용하며 이득을 취하는 부류. 그런데 이게 <소리도 없이>의 초희랑은 달리 막무가내로 상대방을 밀어붙이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보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쾌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상의 한 부모 가정 자녀들이 다 저렇다는 건가? 아닌데. 난 겁나 행복한데. 과민반응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대사에 담긴 감독의 태도에는 화가 났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는 총체적으로 문제 투성이다. 이 영화에는 설명이 되는 게 없어서 "왜? 어떻게?"라고 물어보고 싶은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대체 왜 테러범들이 대낮에 잔디 위에서 총을 쏘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대체 왜 그 테러범들이 여유롭게 판다를 납치하는 동안 태주와 만식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은 걸까.

대체 왜 닥터 백이랑 드미트리는 서로 자기네 나라 말로 대화가 되는 걸까.

대체 왜 뒤에서 셰퍼드가 달리는데도 보초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대체 왜 입을 막지도 않았는데 보초들은 쓰러지면서 비명 한 마디 지르지 않는 걸까.

대체 어떻게 미스터 주는 아무 소리도 없이 알리가 잡혀 있던 곳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대체 어떻게 앵무새가 거리의 비둘기들을 통솔할 수 있었을까.

… 여기까지만 하자.



2020년. 이렇게 생각해보니 정말로 좋았나?

어째 이번 연말 결산은 얘기도 길어지고 감정도 많이 담겨버렸다. 코로나19 때문에 발산을 못 해서 그런가. 부디 여러분의 새해에는 행복만 가득하기를, 저의 새해에는 화를 조금 줄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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