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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an 25. 2021

따스함이 필요한 이 순간에, <귀멸의 칼날>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것

마음을 불태워라 (心を燃やせ)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화 <귀멸의 칼날>이 세운 기록들은 일본의 만화와 영화 업계를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최단기간 만화책 판매량 1억 부 돌파, 권당 판매량 역대 2위 달성, 최단기간 영화 흥행 수입 100억 엔 돌파, 최단기간 천만 관객 돌파. 이 기록들을 더욱 놀랍게 만드는 것은 그 모든 일들이 최근 1년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들이 양산되어 레드오션이 된 일본 만화 시장에서 초창기의 <귀멸의 칼날>은 그저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볼만한 작품이었다. 어디서 본 듯한 설정들과 소년 만화 특유의 원 패턴(one pattern) 전개, 여기에 작품의 빠른 호흡이 더해져, 말 그대로 킬링 타임에 지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2019년에 이를 원작으로 한 TV 애니메이션(TVA)이 방영되며,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원작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부분들 ­­― 빠른 진행으로 인한 만화책 컷과 컷 사이의 괴리나 연재 초반 불안정했던 작화 등 ― 이 추가적인 연출을 통해 보완되며, TVA가 극찬을 받은 것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원작 만화의 인기도 치솟기 시작했고, 결국 극장판의 개봉까지 이어지며, <귀멸의 칼날>은 2020년 한 해 동안 가장 성공한 미디어 프랜차이즈 중 하나가 되었다.


일본 현지의 학자들은 이 작품을 하나의 거대한 사회현상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수직 상승한 인기와 그에 따른 각종 사회적 효과. 이는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나타났다. 이전까지는 그저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기는 서브컬처로서 특정 집단 내에서만 소비되어 왔던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SNS 등지에서 공유되고 재생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드래곤볼>과 <원피스>, <나루토> 이후로 이토록 많은 대중에게 소비된 작품은 <귀멸의 칼날>이 유일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 페이스북과 유튜브 댓글이 '벽력일섬'으로 도배되었을 정도로, <귀멸의 칼날>은 하나의 밈(meme) 즉 문화현상이 되어 있었다.




딱딱한 서론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이번에 개봉한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직관적인 제목이 나타내듯, 이 영화는 만화 <귀멸의 칼날>의 스토리 중 '무한열차' 에피소드를 뽑아 영상화한 것이다. 이번 극장판이 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던 이유로는 물론 TVA의 성공이 가장 컸겠지만, 해당 에피소드가 지닌 작품 내외적 중요성 또한 한몫을 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TVA 2기의 제작이 거의 확실시된 상황에서, 작품 서사의 중간에 위치한 '무한열차' 편은 지난 1기와 앞으로의 내용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앞서 이야기했던 <원피스>나 <나루토>, 혹은 <도라에몽>이나 <짱구는 못말려> 등이 본편과 별개인 외전 격의 이야기들로 극장판을 제작해왔던 것과 달리, <극장판 귀멸의 칼날>은 TVA의 마지막과 이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이 영화가 엄연히 본편의 이야기임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이후 벌어질 최종국면에서 인물들이 느낄 감정의 초석을 마련하는 역할, 그리고 감정을 고조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명대사와 명장면까지. 무한열차 편은 작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파트임에 틀림없다.


카마도 탄지로


<귀멸의 칼날>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귀멸(鬼滅)' 즉, 귀신을 멸하는 이야기다. '오니'라 불리는 식인귀에 맞서 사람들을 지키는 '귀살대'의 분투가 에피소드를 이루고, 작품의 주인공인 '카마도 탄지로' 또한 이 귀살대의 일원이다. 이전부터 계속 이야기해왔듯이 하나의 작품에 있어 적대자의 중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주인공의 대척점으로서 때로는 그 주인공보다도 더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그렇기에 이 만화의 오니들을 바라보면 우리는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에 다가갈 수 있다.


오니들은 무리를 지을 수가 없다. 본능적으로 협동심보다는 경쟁심이 강하며, 무엇보다 그들의 수장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니들의 수장은 불멸을 원했기에, 마치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서복을 파견했듯 그는 자신의 영생을 이루기 위한 정보책으로서 오니들을 전국 곳곳에 배치시켰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을 조사해야 했으니 집결보다는 분산을 선택한 것이겠지. 그러나 그렇기에 그들은 절대적인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살대원들의 연계에 차례차례 쓰러져갈 수밖에 없었다.


밀려오는 공복감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단련을 위해, 혹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사람을 습격하는 이유는 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혼자였고, 때문에 그들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싸웠다. 그러나 그들과 맞서는 귀살대는 달랐다. 인간의 몸은 오니에 비해 너무나도 약한데도, 벌어진 상처가 재생되지 않는데도, 그들은 계속해서 싸웠고 끝내 승리했다. 승리의 이유, 지나치게 상투적이고 간지러울 수도 있지만, <귀멸이 칼날>이 말하는 인간의 강함은 바로 인연을 믿는 마음에 있었다.


엔무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번 극장판에는 일종의 다리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 등장한 오니들 ― '엔무'와 '아카자' ― 역시 다른 오니들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데, 둘 모두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존재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엔무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꿈을 꾸게 하여 그 환상에 빠져들게 하였고, 아카자는 오니의 우월함을 설파하며 함께 오니가 되자고 종용했다.


실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현실이 모두 꿈이었다면,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엔무는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아카자도 마찬가지였다. 늙지도 쉽게 죽지도 않는 오니의 몸이라면 얼마든지 단련하고 얼마든지 탐구하여 자신을 더욱 갈고닦을 수 있다.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누구에게나 채워져 있는 수명이라는 족쇄를 풀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달콤한 제안인가. 하지만 탄지로도 '렌고쿠'도 그들의 속삭임에 따르지 않았다.


렌고쿠 쿄쥬로


꿈이라는 걸 깨닫고도 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사람의 마음은 약하다. 욕망에 솔직하고 유혹에 쉽게 끌리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허나 그 약한 마음이 누군가와 만나 인연을 맺는다면,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본능마저 이겨낼 정도로 사람의 마음은 강해질 수 있다. <귀멸의 칼날>이 표방하는 강함이 바로 그것이고, 그 강함을 증명하는 인물이 바로 이번 극장판의 주역인 렌고쿠다.


아직은 미숙한 탄지로를 보며 약자라고 조롱했던 아카자와 달리, 그는 탄지로가 약하지 않다며 일갈했다. "너와 나는 가치 기준이 다르다."는 그의 말. 아카자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중심으로 가치를 매겼지만, 렌고쿠가 생각하는 강함은 단순히 힘의 유무가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정말 그의 말처럼, 모두를 지키고 떠난 렌고쿠의 의지는 탄지로에게 전해져, 어려운 순간마다 그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그를 더욱 강하게 성장시켰다.


렌고쿠의 말을 되뇌는 탄지로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은 결국 돌고 돌아서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되기도 하니까.


결국 <귀멸의 칼날>이 말하는 강함의 원천,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인연의 중요함이었다. 주인공 탄지로가 말한 위의 대사처럼, 지금 당장의 내 즐거움이나 만족감만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의 의미, 연을 맺는 것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타인을 위한다고 해서 희생 같은 거창한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은 배려와 양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인연으로도 충분하다. 몸도 마음도 약한 인간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렇게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봐 주고 함께 걸어가 준 덕분이니까.


우리는 지금 깜깜한 동굴 속에 갇혀 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위기 속에서 여전히 추위에 떨고 있다. 이 시간이 지나가기는 할까?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동굴의 끝은 아직 멀리에만 있는 것 같다. 한 치 앞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동굴 속을 우리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조금이라도 더 먼저 나가기 위해 마구잡이로 뛰어다니는 것이 정답일까. 마치 오니와도 같이. 아니, 그렇지 않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따스함이 필요하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조금씩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분명 서로의 온기가 춥고 어두운 동굴 속을 버텨낼 따스함이 되겠지.




솔직히 <귀멸의 칼날>에 이런 메시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겉으로 보면 어디까지나 평범한 소년 만화에 판타지 액션물일 뿐이니 말이다. 어쩌면 점점 삭막해져 가는 사회와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이 작품 속에서 따스함을 찾아낸 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추천하기는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만일 당신이 지금 지쳐있다면, 쉬어가는 마음으로 한 번 도전해보는 것 또한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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