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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벤선생 May 28. 2023

이우환 Ufan Lee

무한으로 이끄는 여백의 미

국제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이우환 전시가 오늘로 막을 내린다. 지난주에 전시를 보고 왔다. 예약제라 좋은 점은 조용히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고, 아쉬운 점은 전시를 못 보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들어가는 순간에도 대전에서 올라오셨다는 손님 두 분이 예약제인줄 모르고 입장을 저지당하고 계셨는데, 조금은 죄송하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갔다.


드로잉 신작들과 새로운 설치 작업들이 멋지게 전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몰입감을 위해서인지 설치 작품들이 있는 공간들은 조명이 매우 어두웠다. 이는 공기를 더욱 두껍게 만들어 이 공간 안에 나와 작품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게 만들었다. 돌은 바로 옆의 돌과 함께 호흡하고, 캔버스와 함께 호흡하고, 또 내가 등장하면 나와도 호흡했다. 이들의 숨이 내뿜는 온기로 인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국제갤러리 K1 전시장의 작품들. Relatum - a Corner(왼), Relatum - The Kiss(오)
K2 전시작. Relatum - Dialogue(왼), Relatum - Seem(오)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아니야 이건 느껴야 해 하며 작품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이건 그래도 찍어야 해 하며 다시 핸드폰을 들기를 반복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그와의 옛 추억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듯이, 전시장을 걸어 다니다 보니 과거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들을 만났던 때들이 방울방울 떠올랐다. 


이우환의 작품을 처음 제대로 본건 2011년 구겐하임에서의 대규모 회고전 때였다. 나는 당시 약 두 달을 뉴욕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구겐하임으로 가는 길 양쪽 가로등에 Ufan Lee 전시 홍보물이 흩날리고 있어 버스 안에서 묘하게 뿌듯하고 설렜던 기억이 난다. 그 어마어마한 건물이 통째로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감동과 벅찬 마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술관을 마구 뛰어다니며 빨리 작품을 다 보고 싶은 마음과, 최대한 꼭꼭 씹어 천천히 눈과 가슴속에 눌러 담으려는 의지가 서로 겨루는 듯했다. 양쪽을 달래며, 내 마음을 잠재우며 적당한 속도로 작품을 관람했다. 


2011년 구겐하임 뉴욕에서 이우환 개인전 전시 전경. 이미지 출처는 구겐하임 웹사이트


이때 구겐하임에서 잊지 못할 해프닝이 하나 있다. 커다란 돌덩이가 깨진 유리판 위에 얹어진 설치 작품을 보고 있는데 그 방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더니 거의 눈물이 날 정도로 계속 킬킬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곁눈질로 그에게 눈치를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따라 웃기도 했다. 나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워서 슬쩍 가서 물어봤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나도 말해달라고. 그는 겨우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전시장에 있는 것들이 그냥 모두 돌덩이일 뿐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보는 게 웃겨 미치겠다고. 난 바로 그에게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사람은 한국의 진짜 유명한 예술가이고, 이런 오브제를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생각하게 한다고, 그리고 나도 그의 고향인 한국에서 왔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생의 치기 어린 분투일 뿐이었다. 큐레이터는 아니더라도 구겐하임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이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들은 알 터였다. 그래도 그땐 한국인을 대표해 이우환 선생님을 변호해줘야 할 것만 같은 정의감에 휩싸였었나 보다. 그런 나에게 그는 전시장 안에 있는 한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을 잘 관찰해 보라며, 어떻게 이런 이상한 작품에 저렇게 빠져들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결국 그를 설득하기를 멈추고 사람들을 구경했고, 그의 말에도 일부 동의하게 되어 함께 웃으며 그 전시장을 나왔다. 그를 잘 설득해 이 작품들에 대한 깨달음을 주지 못한 나 자신에게 약간 실망했던 것 같기도 하다. 


2015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Chateau La Coste에 놀러 갔을 때는 생각지도 못하게 그의 작품들을 보게 되어 선생님의 국제적 명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 바 있다. 이곳은 지난 몇 년간 너무나 유명해져 이제 남프랑스를 여행하는 와인과 예술 애호가 분들에게는 필수 여행 코스가 된 듯하다. 한편 부산 시립미술관에 있는 이우환 공간은 작지만 밀도 있는 구성으로 부산에 갈 때마다 꼭 한 번씩 들르게 된다. 내 기억으로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했던 것 같은데, 그런 덕분에 더더욱 작품에 집중하며 산책을 할 수 있어 좋다. 


샤토 라 코스트에 전시된 The House of Air(왼, 사진 출처 Ocula). 부산 이우환 공간 내 전시 전경(우, 사진 출처 Archdaily)


그의 작품은 무한을 품고 있다고 한다. 돌의 물성 그 자체, 철판의 속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두 물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고, 그 관계가 아닌 것(여백)을 바라보게 한다. 그의 작품이 점과 선으로 끝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관객으로 하여금 점과 선, 그러니까 캔버스에 그려진 것을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닌, 그 사이와 주변에 있는 여백에 시선을 돌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구겐하임의 경비원이 실소를 터뜨리게 만들었던 그 돌은 사실 무생물인 돌 자체보다는 그것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되는 공간, 외부 세계, 무한에 대한 언급이기 때문에 작품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12년 전 구겐하임에서의 나는 그걸 설명할 줄 몰랐다. 


여백에 대해 이우환 선생님은 "터치하지 않은 공간에 하나의 터치를 함으로 인해서 그 공간이 울림이 생기는데, 그 울림을 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돼요. 예를 들면, 종을 치면 어떤 쪽으로 바람이 불고 어떤 쪽으로 울림이 많이 나가는가.. 캔버스도 어디에 stroke을 찍는가에 따라서 다 다르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보는 사람은 또 그 작품에서 무언가 자기를 넘어설 수 있는 그런 계기를 거기서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우리를 여백과 무한에 대한 사고로 이끄는 점의 위치, 선의 위치, 돌의 모양 등은 모두 작가가 심사숙고한 끝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채우고, 없어지면 또 다른 것으로 대체되며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시대이다. 형형색색의, 온갖 냄새와 소리로 가득 찬 세상의 물질들은 끈적하게 우리를 붙들어맨다. 아주 잠시였지만 이우환 선생님의 전시는 현실에서 조우하기 힘든 공백과 따뜻한 어둠을 제공해 주었다. 그런 기회 자체가 점점 귀해지는 시기이기에 선생님의 예술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사랑받는 게 아닌가 싶다. 전시 리플렛에 나와있던 [이우환 공간]의 한 구절을 공유한다. 


"이제 우리는 망령된 '인간'을 넘어서 '개체로서의 나'와 외부와의 관계적인 존재로 재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남(encounter)이 중요한 것이지요. 나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독특한 신체성을 띠고 있으며, 대상 그 자체도 아니고 정보 그 자체도 아닌, 이쪽과 저쪽이 보이게끔 열린 문, 즉 매개항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타작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고 이것은 새로운 리얼리티의 제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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