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 부허의 스키닝 작업에서부터 키키 스미스와 주영신 개인전까지
지난주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중인 '하이디 부허'전을 관람하고, 지하 1층에서 열리는 아트 토크에 다녀왔다. 하이디 부허(1926-1993)는 70-80년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한 스위스 작가로, 공간의 내벽에 풀을 바르고 거즈천을 얹은 뒤 액상 라텍스를 발라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다 마르고나면 이를 벗겨내는데 이를 '스키닝'이라고 한다. 우리가 얼굴에 필오프 마스크를 펴바르고 그게 마르면 떼어내듯이, 건물의 내부에 필오프 마스크를 발랐다가 마르면 뜯어내는 것. 다만 하이디 부허의 작업은 공간 전체를 뒤덮고 그것을 벗겨내는 것이기 때문에 껍질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그 작업에 수반되는 노동의 강도가 대단히 높다. 작품의 형태와 작업 방식이 굉장히 특이하고 어찌보면 그로테스크한 느낌도 든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피부 껍질을 떼다 전시해놓은것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이디 부허는 살아있을 때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70-80년대 미국에서는 여성 작가들이 예술계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요한 시기였으나, 하이디는 1970년대 초반에만 잠시 캘리포니아에 머물다 스위스로 돌아가 작업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스위스는 아트바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등을 필두로 한 유럽 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여성 참정권은 71년에 처음 시도되고 91년에 법제화 되었을 정도로 여성들의 인권이 굉장히 낮았던 나라라고 한다. 2010년경부터 전세계적으로 여성 작가들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발해지면서 엄청나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1973년 하이디는 공간의 피부를 뜯어내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작업을 하기로 선택한 건물들은 대부분 여성을 편견의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자유를 억압한 이력이 있는 곳들이다.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은 수많은 방문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히스테리(그리스어로 자궁을 뜻함) 환자들로 분류되어 정신 치료를 받았던 역사를 가진 곳이다. 그 공간 안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은 당시 스위스에서는 사회적으로 거부되는 것들이었을 테고, 그곳에서 내려진 결정들은 적절한 치료보다는 감금과 입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이디는 이런 공간 내부에 풀을 바르고 스키닝하는 방식을 통해 공간에 묻어있는 편견어린 때와 노폐물, 상처를 뜯어내려고 했던 것 같다.
전시장에 설치된 라텍스 천은 뻣뻣하면서도 생명을 잃은 듯 생기 없어 보인다. 마치 작가를 포함한 많은 여자를 억압해온 사회적 굴레와 시선이 이제는 세월의 힘에 설 곳을 잃은 것처럼. 작품은 천장에 매달려 고정되어 있는데, 양들의 침묵의 충격적인 한 장면이 떠오를만큼 강렬하고 압도적인 디스플레이다.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 작품은 안쪽을 걸어다닐 수 있게 되어있다. 창문틀, 문고리까지 그대로 재현된 이 공간을 걷고 있으면 소름이 돋고 으스스한 감정을 숨기기 어렵다. 이외에도 가부장, 권위의 상징이었던 아버지의 서재 내부를 스키닝한 작품도 있는데 집 전체를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하지만 더이상 튼튼하고 견고한 집이 아니라 흐물흐물하고 힘 없어진 소재가 주는 느낌이 절묘하다.
키키 스미스(1954-)는 여성의 피부, 장기, 다양한 체액에 관심을 가지고 abject art를 이끈 작가이다. 현재 페이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러한 시리즈와는 거리가 있는 작업들이지만, 1980년대 그녀는 몸 속 장기를 개별적으로 연구하고 조각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장기와 외부의 경계인 연약한 피부도 재현하며 신체에 강하게 매료된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의 작품은 여성의 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바뀌는데, 성, 출산, 죽음, 변형(변태), 환생 등의 주제가 자주 반복되며 이러한 시각으로 성경 및 동화에 나오는 여성 인물들을 새롭게 묘사하기도 했다. 2000년대부터는 창조론과 진화론에 몰두하여 여성의 몸이 동물이나 자연과 공존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최근의 작업들은 이 시리즈의 연장선이다.
페이스 갤러리 길 건너편 한남동 카페거리에 위치한 라라 한남에서는 주영신(1972-)의 개인전이 진행중이다. 사람은 몸이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장기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은 채 살아가지만, 사실 외적인 부분 못지않게 우리 몸 속 장기들은 매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다. 작가는 초기에 신체 캐스팅을 하며 인간의 몸에 대해 관심을 키웠다고 한다. 삶의 방식으로 인해 신체가 변하는 운동선수들의 몸을 캐스팅하고, 반대로 신체가 변하면서 삶이 변해가는 임산부의 시간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닥나무로 죽을 만들기 전 단계에서의 재료가 근섬유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근육과 그 속에 있는 장기들로 관심이 옮겨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의학책을 보며 장기를 연구하고 관찰하고, 의대 해부학 수업에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고 한다.
장기는 얼핏 생각하면 징그러운 신체 기관이라 어떤 이들은 아예 알고싶지도 않아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러한 시선에 의문을 던지고, 인간의 시선과 판단이 아닌 장기와 세포의 입장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안한다. 그렇게 따뜻한 눈길로 장기를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되고, 더 아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리라. 그녀의 작품 속 장기들은 전혀 무섭게 생기지 않았다. 생기 넘치는 핑크빛과, 이국적인 과일들, 먼 바다 속 산호초를 닮았다. 그 자체만으로 조용하고 아름답다.
작가는 본인이 살아가는 시대와 장소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또한 그런 사회적 컨텍스트를 작품에 잘 녹여내는 것이 좋은 예술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70년대 사회적인 여성 차별에 대항해 온 몸의 체중을 실어 공간의 피막을 벗겨낸 하이디 부허의 작업과,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역사 속 여성의 이야기들을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키키 스미스와,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 모두가 가진 장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주목하게 하는 주영신 작가. 약 20년간의 시차를 두고 각각 태어난 이들이 점차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게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이 신기하고, 또 이렇게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매력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