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저항하는가?
예술가들이 원하는 자유는 어떤 모습일까?
여기 평생에 걸쳐 저항과 자유의 메시지를 주창한 작가가 두 명 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6월 25일까지 열린 '하이디 부허'전은 스위스 예술가 하이디 부허의 첫 아시아 개인전이다. 그녀의 작업은 벌레가 성충이 되어 날아간 후 남은 거대한 고치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스키닝'이라는 작업의 산물인데, 먼저 건물 내벽에 거즈와 액상 라텍스를 발라 말린다. 며칠이 지나 라텍스가 완전히 건조가 되면 작가는 온몸의 체중을 실어 있는 힘껏 천을 잡아당긴다. 뻣뻣하고 투명한 아이보리색 직물이 벽에서 분리되며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낸다. 계속 그곳에 붙어있으려는 관성이 작용하는 모습이 마치 피부를 벗겨내는 것 같은 모습과 비슷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묘하게 쾌감이 느껴진다. 그 결과 우리 눈 앞에는 한 공간의 부피를 그대로 복제한 라텍스 천이 나타난다.
1970-80년대 스위스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한 하이디 부허는 여성 인권이 남성만큼 존중되지 않았던 당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항하는 작가였다. 이를 위해 그녀가 선택한 작업 방식은 여성을 차별하거나 여성의 자유를 억압한 역사를 지닌 건물을 스키닝하는 것이었다. 대표작이자 2층 전시장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은 수많은 여성을 히스테리(그리스어로 자궁을 뜻한다) 환자로 분류하고 정신 치료를 받게 했던 장소를 본뜬 작업이다. 하이디에 의해 박제된 진찰실은 원래의 권위적이고 딱딱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실제 진찰실은 어두운 목재로 꾸며져 있어 매우 어두웠다) 흐물흐물하고 늘어진 피부를 한 채 전시장에 걸려있다. 작가는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진찰실 내벽의 껍질을 벗겨냄으로써 상처를 뜯어내고, 여성을 대하는 인식에 새살이 돋기를 염원했을 것이다.
그녀가 저항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매우 신선하다. 여성 작가가 자신의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여성성을 과시한다거나, 반대로 남성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방법에 우리는 이미 익숙하다. 이에 반해 남성의 권위가 고착화된 건물과 장소의 살을 뜯어내 전시하는 것은 얼마나 직관적인가. 이 피막은 시간과 함께 노화되면서 점점 수분을 잃고 주름이 생기며 갈변한다. 인간의 피부와 비슷하다.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고, 경제적 주체성을 쉽게 부여하지 않았던 당시 스위스 사회의 불평등이 시간이 흐른 후에 얼마나 부당하고 형편 없는 것으로 기억될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한편, 크리스토 자바체프는 그의 아내 잔-클로드와 함께 평생 덮고, 포장하고, 가리는 작업을 해왔다. 이아 서울에서 7월 15일까지 전시되는 크리스토는 1935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소련의 점령을 피해 1956년 유럽으로 망명한다. 이때의 아슬아슬했던 경험은 자유와 저항을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만들었다. 그의 초기작들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무명천으로 감싸는 작업이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스케일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그는 대자연의 일부나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을 거대한 천으로 덮는 작업으로 유명한데, 이는 시각적인 인식을 차단시킬지는 몰라도 역설적으로 그것의 부재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그리고 가려진 것의 본래 의미나 기능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공공 건축이나 자연 경관이 포장의 대상이 될 때는 긴 시간 동안 복잡한 행정적, 법적 절차를 거쳐야했고 인근 주민, 지역 단체들과의 협상도 필수적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그의 장소 특정적인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
그가 이렇듯 누구나 볼 수 있는 커다란 건물이나 대지의 일부를 작업 대상으로 삼은 것은 미술관이라는 제도권 안에 예술이 갇혀있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는 평생에 걸친 활동 기간 동안 투자나 후원은 일절 받지 않았고, 본인들의 작업물(드로잉, 포스터, 판화, 책 등)을 판매한 수익으로 프로젝트에 대한 비용을 조달했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기에 더욱 주도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끌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타협할 수 없는 규모로까지 프로젝트가 커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유작인 '포장된 개선문'은 아이디어가 현실이 될 때까지 6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작가의 강렬한 의지와 신념이 이 세월을 견딘 것이다. 그 결과 2021년 가을, 그 누구도 입장료를 내지 않고 크리스토의 마지막 작품을 만지고, 감상할 수 있었다.
하이디 부허와 크리스토의 작업은 정 반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 명은 작품의 겉을 포장하고 덮는 반면, 다른 한 명은 안쪽의 껍질을 벗겨낸다. 두 작가 모두 어떤 힘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으로 움직인 작가들이었다. 이들의 작품이 숭고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저항한 이유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더 큰 가치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껍질을 벗어야만 날아갈 수 있는 잠자리처럼(하이디 부허는 실제로 잠자리를 자신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여겼다) 하이디 부허는 스위스의 여성들을 대표해 사회적 억압을 벗겨내려고 고군분투했다. 크리스토는 제도적 틀에서 탈피하기 위해 모두가 볼 수 있는 장소를 포장하는 공공 미술, 대지 미술을 추구했다. 덮어씌우기와 벗겨내기는 서로 상반된 개념처럼 보이지만, 자유라는 가치 아래 포장과 해체의 대상은 결국 많은 이들을 가로막았던 사회적 굴레라는 점에서 이 둘의 지향점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