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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벤선생 Jul 18. 2023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측은지심

책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리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주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 나다.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이라는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최근 내가 한국 근현대사 공부를 시작하면서인데,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최근에서야 깨달은 것이다. 제주 4.3 사건, 부림 사건, 광주 민주화운동 등의 희생자들은 특정 정치색으로 구분되기 전 그저 평범한 학생들, 직장인들, 일반 시민이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움과 감사함과 울컥함을 혼란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에서는 세계사에서 학살이라 여겨지는 큰 사건들과 그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들을 목적지로 삼고 여행을 다녀온 양재화 작가의 이야기이다. 역사와 어두운 사건에 관한 내용이니 잘 읽히지 않을 거라는 내 예상은 대단한 오산이었다.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는데 어느새 100페이지를 넘기고 있었고, 또 어느새 200페이지.. 친구의 여행 일기를 읽듯이 금세 빠져들었고,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책 아주 초반에는 오스만 정부가 아르메니아인들을 어떻게 몰살했는지에 대한 묘사가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하는데, 이 부분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가 힘들어 이런 고통스러운 내용을 계속 읽어야 하는 건지 살짝 고민했다. 


완독 후 생각해 보니 그들의 과거의 고통은 나와는 무관한, 다른 세상의 일이라는 생각에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책이 반인륜적인 학살과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사건의 앞뒤 배경과 구체적인 수치들,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룬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인간의 광기와 극악무도함보다는 한 인종, 종교인들, 혹은 특정 계층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려 했을 때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오히려 인종청소 같은 끔찍한 행위에 대한 설명 보다 이런 이야기들에서 난 더 마음이 먹먹해졌고, 눈물을 흘렸다. 절대 권력 앞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측은지심이 발동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가령 80-81페이지에 걸쳐 작가는 불가리아나 덴마크, 네덜란드 등의 시민들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유대인 강제 이송 요구를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따라서 이 국가들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159페이지에서는 스레브레니차 안전 구역 내에 거주하고 있는 보스니아인들을 세르비아군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UN 평화 유지군을 파병한 네덜란드의 정부 내각이 전원 사퇴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책을 읽으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줄곧 해보았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나의 행동이 의미 있는 영향력을 가진다고 믿는 것.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해 이 책에 나오는 많은 학살 현장들을 보존해두는 것은 과거의 이 끔찍한 사건을 낱낱이 보고 곱씹게 하는 것도 있겠으나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위해서일 것이다. 같은 국가에 살면서, 한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 왜 서로를 죽이게 되었는가? 남의 고통이나 아픔 따위는 엄밀히 말하면 내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는 무서운 선 긋기 때문이 아닌가. 


작가는 또 그러한 심리적 거리 두기가 제노사이드로 하여금 언제든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오도록 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준다. 아우슈비츠 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가 말했듯,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제3제국의 거대한 학살기계의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고 말아"버리는 것은 비단 학살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학살이란 "어느 날 우주에서 떨어진 미치광이 몇 명이 저지른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때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과 조건에 불을 붙이는 것은 방관자들의 존재인 것이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콜롬비아 작가 도리스 살세도는 자국의 내전으로 인해 실종되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애도하는 작업을 하는 예술 작가이다. 애도의 태도를 더 많은 이들에게 퍼트림으로써 죽은 이들을 위로하고, 남은 이들을 치유하며, 부조리한 폭력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많은 용기와 때로는 위험을 수반한다. 하지만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기억할 때, 아르메니아인들의 절멸을 이야기할 때, 제주도 4.3 사건을 떠올리며 그곳을 걸을 때, 희생자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기억되고, 우리는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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