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읽는 ‘회복력 시대’
현재 나는 뉴질랜드로 신혼여행을 와있다. 여행 3-4일째 됐을 때쯤 어느 식당을 가도 육류가 정말 맛있다는걸 깨달았다. 소고기, 양고기, 사슴고기를 불문하고 질긴 부분이나 냄새가 나는 경험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역시 넓은 땅을 가졌으니 방목의 효과인가보다, 감탄하며 이 나라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며칠의 시간이 더 지나면서 무슨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었냐면 고기를 맛있게 먹는 내가 한편으로는 싫어지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차를 타고 달리다보니 엄청나게 넓은 초원에 소나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 풍광이 너무 평화로워 그 속을 자세히 뜯어볼수록 동물들의 생김새가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소는 사람을 좋아해서 내가 길가를 지나가면 멀리서부터 나를 쳐다보며 걸어온다. 진심으로 호기심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양들은 그 반대로 겁이 좀 있는 편. 낯선 사람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펜스에서 멀리 달아난다. 메에에- 소리를 내며 친구들한테도 도망가라고 알려준다. 최대한 이들이 놀라지 않게 서둘러 지나가면서 동물들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감탄한다.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그런데 이 목장들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다. 이 동물들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서 길러지고 관리되고 있다. 나 또한 남들보다 동물을 조금 더 많이 좋아하는 것일뿐, 그들을 풀밭 위에서 볼때는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식탁 위에서는 맛있는 고기로 인식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너무 미안하고 스스로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우리가 묵게 된 한 숙소에서 이전에 투숙했던 한국인 손님이 본인의 책을 두고갔다. 누군가가 읽기를 바라며 남겨주신 이 책은 제러미 리프킨의 ‘회복력 시대’이다. 이번 여행중에 이 책을 만난게 우연이 아니라는 기분이 든다. 왜냐면 내가 마침 빙하와 자연과 땅과 동물들에 대해서 깊게 곱씹는 여행을 하고 있고, 마침 지난 열흘 남짓의 시간 동안 남편에게 지구의 생명에 대해서도 여러번 말을 꺼내온 까닭이다.
새가 벌레를 먹는 모습이 슬프지 않은건 그것이 자연의 당연한 섭리이기 때문이다. 사자가 기린을 사냥하는 것도. 인간이 동물의 고기를 취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에겐 아직 채식으로 돌아설 용기는 없다. 그런데 왜 나는 고기를 먹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가.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가 조금 더 명확해졌다. 대규모 축산업이 유독 슬픈건 소나 양에게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이 든다는 감성의 영역만은 아니다. 그것은 단일 재배가 지구의 장기적인 회복력을 현저히 떨어트리기에 더욱 그렇다.
'회복력 시대'에서 저자는 전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80%가 집중되어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아몬드 꽃의 수분을 위해 매년 꿀벌을 이 지역으로 옮기며, 지난 몇년간 꿀벌이 떼죽음을 당함으로써 세계 아몬드 수급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단일 재배의 부작용은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공장식 축산은 생물다양성을 무시한 채 오랫동안 숲으로 존재해왔던 곳을 목초지로 바꾸고, 이는 땅의 산화를 가속화하며 멀리는 기후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래킹 코스 중 하나인 밀포드 사운드를 걸으며 만난 현지 가이드 Anna와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동물과 자연에 진심인 나에게 그녀는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작은 목장에 놀러오라고 초대해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호의에 우리는 다음날 일찍 머핀 몇개를 사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양 열댓마리, 소 세마리, 닭 대여섯마리와 양몰이 개 세마리가 있는 정말 작은 농장이었다. 닭들에게선 달걀을 얻어서 먹고, 소에게선 우유를 짜서 가족들이 직접 먹는다고 했다. 우유는 살균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주긴 조심스럽다고 한다. 양들에게는 다 각자 이름이 있었는데, 이들의 털을 깎아 양모를 판매한다고 한다. Anna는 양들의 성격에 따라 양모의 질이 조금씩 다르다는, 신기하고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Anna의 닭들이 낳은 달걀 6개를 선물로 받아들고 다음 여행지로 출발하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식생활을 추구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목장을 운영하는 곳이 있다면 최대한 그런 곳에서 최소한의 고기를 소비할 것. 물론 내가 한번에 바뀔것이라 기대하진 않지만 이렇게라도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음에 감사하고 안도하게 된다. 책을 반 이상 읽었지만 여전히 가장 기억에 남는 서론에서의 한 구절을 공유한다.
"인류학자들은 우리가 지구상에서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종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인간 종과 우리의 생물학적 대가족을 다시 번성시킬 겸손과 배려와 비판적 사고로 우리를 이끌어 줄 자연의 품으로 다시 동화되어 들어가는 데 이런 본성을 이용할지 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