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farm to table
뉴질랜드의 목초지들을 보며 느꼈던 시원함과 답답함을 어떻게 하면 달랠 수 있을까, 다소 무거운 고민거리를 달고 여행을 계속했다.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과 환경에 대한 걱정으로 당장 채식주의자가 될 정도의 자신은 없었다. 나 혼자 채식을 한다고 공장식 축산업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였다. 또 만약 내가 채식을 한다해도,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말하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 않을것 같다는 문제도 사실은 있었다.
인간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무언가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대의적인 명분이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이득 측면에서 설득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가령 사람들에게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에어컨을 너무 낮게 틀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에어컨을 특정 온도 이하로 내리면 관리비가 00%나 더 청구되니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했을 때 훨씬 에어컨을 약하게 튼다는 것이다. 본인의 이익이나 손해가 피부로 느껴짐을 인지할 때 사람들은 행동한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환경과 지구를 위해 육식을 줄이자는 말은 허공에서 분해될 확률이 높다. 나도 생물다양성이나 자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지만, 뉴질랜드에 오기 전까지는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다. 뭔가 달라져야 했고 그걸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신혼여행 마지막 날, 마지막 식사를 위해 들른 해산물 레스토랑의 메뉴판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식당은 각 메뉴마다 해당 식재료가 어디서, 누구에 의해 생산되었는지를 표기해두었다. 몇 개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Long liners(연승 어업):
Bona Dea II(배 이름) - Jacob Drake(선장 이름) - Tutukaka(지역명)
Coral V - Alex Dryland - Leigh
Pot fisher(망태기 낚시):
Equinnox - Derlwyn & Gigi Tuanui - Chatham Islands
Hand caught(맨손 낚시):
Claire Edwards & Troy Bramley - Tora Bay, Wairarapa
이 식당은 traceability, 즉 생산지를 추적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또한 대규모 어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낚시를 하는 어부들과 비즈니스를 함으로써 로컬 생산자들의 성장을 도모하기도 한다. 나아가 어부들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예측 가능한 거래처가 있기에 딱 필요한 만큼, 생태계가 균형을 잃지 않을 만큼만 자연에서 얻어온다.
만약 우리가 우유를 꼭 마셔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위생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학대받는 소들에게서 짠 우유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되도록이면 방목 생활을 하고, 동물 사료가 아니라 목초를 먹고 자란 소들의 우유를 마시고 싶을 것이다. 내가 마시는 우유가, 내가 먹는 고기가, 생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식재료의 영양과 안전은 그 생산지에서 가장 먼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나와 내 가족이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을 먹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현대인들에게 더욱 큰 난제가 될 것이다.
올해 마지막 날의 글을 매듭지으며 내 마음속으로 정한 새해의 다짐은 이것이다. 이전의 식습관을 (일단은) 그대로 두되, 내가 먹는 식재료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정확하게 알고 먹을 것. 그리고 그곳이 우리집에서 가능한 한 멀지 않을 것. 이것만 기억해도 정체모를 가공 식품 대부분은 자연히 멀리하게 될 것이며, 나와 지구를 위해 훨씬 건강한 식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건강하고 의식적인 내년을 바라며 그 식당 메뉴 뒷면에 쓰여져있던 글귀를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