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시팅을 하며 처음으로 느낀 막막함
조금 무거운 이야기이다. 이 글의 주인공을 만난건 2주도 더 된 일인데 어떻게 글로 풀어야 할지 몰라(아니, 사실 쓰고 싶은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참을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다. 같은 아이에 대해 하루에 두번 예약이 들어왔는데 오전에 한번, 저녁에 한번 돌보는 일이었다. 2살된 치와와이고 겁이 많아 아직 산책을 못한다며, 가방에 넣고 건물을 한바퀴 돌아만 주어도 감사하겠다는 보호자의 메모가 함께 전달되었다.
2살인데 아직도 산책을 못한다는 것을 듣자마자 두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2-6개월령의 사회화 시기에 충분히 혹은 거의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 못했거나,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다가 성견이 된 후 입양이 된 것이거나. 물론 다른 가능성들도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경우의 수가 가장 확률이 높지 않을까.
집에 방문을 해보니 작은 갈색 치와와가 소파에 웅크리고 있었다. 조심히 다가가 2-3미터 정도의 간격을 띄우고 낮은 목소리로 안녕? 말을 건넸다. 별 반응이 없길래 1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나도 소파에 앉았다. 자세히 보니 아이는 엄청나게 떨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앉았다. 최대한 강아지를 쳐다보지 않으면서 관심없는 척 곁눈질로 슬쩍슬쩍 아이를 쳐다보았다.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손을 뻗어 내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해주었다.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냄새를 맡으려는 일말의 제스쳐도 없었다. 손등으로 아이의 등을 살짝 쓸어주었는데 온몸이 위축되면서 다시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길을 이렇게 무서워하는 강아지는 실제로는 처음이었다. 보통 무서워하면 짖거나 입질이라도 할텐데 그런 방어조차도 하지 않고 그저 떠는게 전부다. 보호자님께 아이가 어떤걸 하면서 노는걸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평소에도 소파 위에 웅크리고 가만히만 있는다고 했다. 이 아이는 낯을 가리는 수준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그저 너무나 두려운 것 같았다.
나는 펫시팅을 하면서 처음으로 막막했고, 슬펐고, 무력감을 느꼈다. 강아지가 이 정도로 겁이 많으면 사실 돌보는 시간동안 해 줄수 있는게 거의 없다. 장난감으로 놀아주기, 뭔가를 시키면서 간식으로 보상해주기, 혹은 마사지 해주기, 모두 불가능했다. 아이한테 어떤게 도움이 될까 생각하다가,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아무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걸 믿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후 약 40-50분간 나는 근 10년 중 가장 정적인 상태로 -앉아서,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돌보러 온 펫시터이기에 기다려주는 그 시간을 유튜브나 핸드폰을 보면서 보낼 수도 없고,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아가야 괜찮지? 괜찮아요~"라고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그렇게 한시간의 돌봄이 끝났다.
저녁에 다시 돌아가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보호자님이 산책 가방에 아이를 넣어서 바깥 바람을 조금만 쐬어달라고 하셔서 아이를 양손으로 살짝 잡아봤는데, 너무 심하게 떨면서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숨어들어갈 것만 같은 자세를 취해서 그만두었다. 보호자님도 실시간 영상을 보셨는지 역시 안되겠다며 포기하셨다. 이후 펫시팅이 끝날때까지 숨막힐듯 까맣고 무거운 정적만이 계속되었다.
그 집을 나와서야 비로소 숨이 잘 쉬어졌다. 크게 숨을 쉬면 아이가 무서워할까봐 한시간 내내 아주 짧게 호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지금까지 경험한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런 아이를 키우는 데에 필요한 인내심, 보호자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내가 슬프고 답답함을 느낀 건 지금 현재 이 아이의 성향보다, 아직 2살밖에 안되었는데도 이렇다면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갈지 너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10년도 훨씬 넘는 앞으로의 세월을, 평생을 이렇게 두려워하며 웅크리고 지낼 것인가?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이 보호자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본인과 둘이 집에 있어도 가만히 소파 위에 있기만 하는 강아지. 타인이 만지기만 해도 움츠러들고 너무나 두려움에 떠는 이 아이를, 심지어 산책도 하지 못하고 배변도 실내에서 모두 해결하는 강아지인데 펫시터를 불러서 돌보게 한다는 것이.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분명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막을 몰라서 그렇지, 이 집에 데려온지 2-3주 밖에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 모든 강아지는 사랑을 받으면 밝아지고 예뻐지니까, 지금이 시작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나의 강아지에 대해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기본적인 성향 자체도 삶이 너무 즐거운 골든 리트리버. 만나는 사람들이 다 궁금하고 재밌어서 본인을 조금만이라도 예뻐해주면 길이든 어디든 드러누워서 지렁이 댄스를 추고, 친구에게 장난치는걸 좋아해 얌전한척 하다가 우와앙 하고 달려가 놀자고 하는. 나의 강아지는 지난 4년간 나와 모든 것을 함께하며 세상을 누비고 삶을 배웠고, 내가 눈빛으로만 장난을 걸어도 바로 알아듣고 금새 신난 숨소리로 변한다.
나에게 만약 지금의 내 강아지가 아닌, 이 날 만난 치와와 같은 친구가 왔다면 어땠을까. 가족과 자주 그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사람도 그렇지만 강아지도 타고난 것보다 자라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우린 말한다. 그러니 사실 어떤 아이가 왔더라도 지금의 우리집 강아지 같은 성격과 비슷해졌겠지? 라고 결론을 내린다. 개는 주인을 닮는다. 사람들은 나와 나의 개가 똑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들이 모르는건 나와 내 개의 성격이 얼마나 놀라울만큼 비슷한지이다.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하는 호기심과 삶에 대한 순수한 사랑 없이는 사는게 너무 힘들다. 인간과 반려동물은.
이 치와와 친구도 분명 좋아질 것이다.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보호자의 이런 따뜻한 관심과 보호를 받아 먹으며 자라는 아이는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점점 좋아질 수밖에 없다. 몇달 후 다시 한번 이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때는 까만 정적이 아니라, 밝은 에너지를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