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적인 시그널을 찰떡같이 캐치하는 아이
어제까지 총 3일간 같은 아이를 하루에 한 시간씩 산책해줬다. 그러니까 일, 월, 화요일 오후에 항상 이 친구를 만나러 갔다. 주인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3일간 집을 비워야해서, 밤에는 친구가 와서 봐주지만 낮에 산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얼핏 보면 검정색 시바견 같지만 날카로운 눈빛과 귀는 이 아이가 허스키의 핏줄 또한 가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무엇보다도 시바견 특유의 엄살이나 비명이 없었다. 처음 집에 들어갔을 때 반갑다며 두 손을 들고 일어서는 건 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조용한 성향의 아이 같았다.
예전에 펫시팅으로 만났던 강아지들 중, 집 안에서는 흥분도가 너무 높았지만 산책을 나가자마자 매너가 참 좋았던 아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내 맘대로 판단하지 않기 https://brunch.co.kr/@venteacher/4). 이 아이는 그것과 완벽한 반대였다. 한두걸음 얌전히 걷다가 갑자기 미친듯이 줄을 끌며 눈앞에 있는 기둥이란 기둥엔 모두 마킹을 했다. 길을 걷다 보면 가로수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는데, 모든 가로수 사이에서 이 행위를 반복했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한번 튀어나가는 것부터 다음 튀어나감까지의 간격이 10초도 안되었다. 인도에는 다른 보행자들도 있고, 한걸음만 밖으로 나가면 차도여서 계속 이 아이가 튀어나가지 못하게 수시로 줄 컨트롤을 해야했다. 이 아이는 고작 15kg인데, 가속이 붙으니 끄는 힘이 내 40kg짜리 반려견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쎘다.
심지어 줄은 충격방지 스프링 리드줄이어서(개가 튀어나갈 때 줄이 띠용 하고 늘어나면서 아이한테 가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줄이다) 내가 아이를 멈추려고 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제지가 되는것이 아니라 3초씩, 그리고 약 50cm 정도씩 래깅이 되며 전달이 되었다. 그럴때 내 몸도 휘청하는건 물론이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지만, 그리고 나도 한때 스프링 리드줄을 사용해본 사람으로써, 스프링 리드줄은 반려견의 줄 끄는 습관을 더욱 강화시킨다. 아이 입장에서는 끌어도 안아프니까. 그리고 주인이 제지 못하니까(제지하는 힘이 아이한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 피로는 고스란히 산책자에게 쌓이게 된다.
그래서 아이의 하네스 등 고리에서 줄을 최대한 짧게 잡고, 아이가 5-6초 간격으로 질주하려고 하기 직전에 줄을 탁탁 당겼다. 이렇게 하면 액션을 취하기 전 제지를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는 하려던 걸 하지 않게 된다. 그 대신 산책자가 한 시간 내내 신경을 써야하니 정말 피곤했다. 계속해서 팔과 목에 힘을 썼더니 허리도 너무 아팠다. 가고싶은 곳으로 가려는 아이의 발톱들이 아스팔트 바닥을 긁으며 내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전형적인 '말 안듣는 개,' '고집 부리는 개'의 발소리다. 3살인데 이 정도로 산책 교육이 안되어 있다니...
게다가 집에 와서 아이에게 물을 주고 잠깐 바닥에 앉아서 쉬고 있으면, 아이가 와서 나에게 만져달라고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는데, 내 옆엣서 혼자 앞구르기를 하다가 갑자기 흥분해서 이를 딱딱 부딪히며 내 몸 여기저기를 무는게 아닌가. 세상에 난 이런 아이는 솔직히 처음이었다. 작정하고 물어뜯는게 아니라는걸 알지만, 중형견 사이즈의 아이가 장난으로 무는건 정말 아프고 무섭다. 이렇게까지 될때까지 왜 주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아니 뭐든 했겠지만 이걸 고칠 만큼의 충분한 노력을 왜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사건은 두번째 날 일어났는데, 산책 후 물을 마신 아이가 갑자기 신나서 점프하며 내 겨드랑이를 물고, 팔도 물고, 다리도 물고... 빈도와 강도가 순식간에 높아졌다. 이대로는 큰일나겠다 싶어 빠르게 화장실로 피신하고, 문은 열어둔 채 아이를 조용히 쳐다봤다. 강한 눈빛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물지마. 너 여기서 더 장난치면나도 너 어떻게 할지 몰라.' 내 마음을 읽은걸까? 정말 신기하게도 (믿을 수 없을만큼 신기했다) 아이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가만히 앉아있다가 약간 슬픈 표정을 지으며 엎드렸다. 뭐지. 이렇게 내 시그널을 잘 알아듣는다고?
마침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보호자님한테 급히 연락이 왔다. 흥분하면 주체를 못해서 격해진다고, 정말 죄송하다며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물어보셨다. 살이 좀 쓸리고 멍들긴 했어도 피가 나거나 그 이상의 상처는 없었다. 화장실쪽으로 피한 후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금방 잠잠해졌다, 괜찮다 라고 말씀드리고, 아이한테도 내 말을 알아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아이의 시선은 내 손을 따라 머리 위로 올라갔다가, 등쪽에 손이 닿았을 쯤 털썩 하고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펫시팅이 끝날 때까지 나도 아이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3일째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뻔 했는데, 아이 입에서 딱딱 소리가 나기 시작할 무렵 바로 일어서서 아이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아이는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를 금방 캐치했다. 그리고 또 정말 다행히도 펫시팅 내내 라이브로 우릴 지켜보던 보호자님이 계셔서 서로 마음 상할 일 없이 상황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 말을 바로바로 이해해주는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다. 아무리 보호자님이 상황을 바로 알아채신다고 해도, 그 자리에는 없으니 개를 바로 제지시킬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펫시팅이 끝난 후 나에 대한 리뷰에서 보호자님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펫시터님이 차분하게 대처했고 끝까지 아이한테 따뜻하게 대해주어서 너무 감사했다고 써주셨다.
사실이다. 정말 희한하게도 나를 물고 상처를 낸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찰떡같이 잘 알아들어준 그 아이가 난 너무 고맙고 예뻤다. 하루가 지난 오늘 생각해보면 이 아이는 어쩌면 본능에 엄청나게 충실한 아이가 아니였을까? 마킹에 대한 본능 때문에 줄을 심하게 끄는 것이고, 개들끼리 물면서 장난치는 습성을 사람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고(그러니 나쁜 의도가 아니였음을 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 내가 사람의 언어를 쓰지 않고 눈빛과 분위기로 그만하라고 말했을 때 바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 동물적인 감각이 둔화된 아이라면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4년전, 내 반려견을 데려온 이후 동물들과 의사소통 하는 방식이라든지 개처럼 생각하는 법이라든지 효과적으로 시그널을 보내는 법 등에 대해 꽤나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는데, 그 시간이 헛되지 않은것 같아 참 다행이다. 흔히 사람들은 동물이 말을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들을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그렇겠지만 동물은 우리에게 항상 아주 많은 말들을 하고 있고, 또 사람도 동물의 언어로 이렇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