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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Sep 17. 2023

브로콜리, 브로콜리

처음으로 브로콜리의 존재감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엉뚱하게도 어느 혼성 인디밴드를 통해서였다. 


<브로콜리 너마저>


먹는 브로콜리가 아니라 듣는 브로콜리라니. 하나의 대상,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데 필요한 감각. 이 두 가지가 꼭 직관적으로만 짝을 이루는 건 아니며 또한 각 감각을 통한 인지 과정이 시간의 순서대로만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나는 파릇파릇 채소로서의 브로콜리가 아닌 잔잔한 선율로서의 브로콜리를 먼저 알았기 때문. 먹고 나서 들은 게 아니라 듣고 나서 먹었기 때문.


아무튼 그 언젠가 아침식사로 샐러드를 생각해내지 못했다면 아마 내게 있어 브로콜리는 불완전한 정체성으로 한평생 귀 언저리에서만 맴돌며 반쪽짜리 생을 살다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들을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먹을 수도 있어야 온전함을 다하는 브로콜리. 나는 그렇게 브로콜리를 감각한다. 


어제 마트에 들러 장을 보면서 브로콜리 여섯 송이를 샀다. 주식으로서 브로콜리는 하루에 한 번 아침에 먹는 게 제격인데 이 정도 양이면 닷새는 거뜬하다. 먹는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브로콜리는 줄기에 붙어있는 자잘한 잎을 따는 것부터 시작해서 몇 가지 귀찮은 손질 작업을 거쳐야 한다.


가위를 들고 큰 줄기에서 작은 송이 하나하나를 잘라낸 다음 베이킹 소다를 풀어 넣은 물에 30분 정도 담가놓는다. 흐르는 물로 브로콜리를 깨끗이 씻어서 비닐 팩에 넣고는 냉장실과 냉동실에 보관한다. 필요에 따라 적당량을 덜어내 30초 정도 데쳐 먹는다.


브로콜리의 영양성분은 놀랍다. 몸속의 유해한 산소를 없애주는 비타민C와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노화나 암, 그리고 심장병과 같은 성인병 예방에 좋고 또한 다량의 칼슘을 함유해 골다공증을 예방해 준다. 모르긴 몰라도 건강한 삶에 보탬이 되리란 것은 분명하다.


일상에서 주기적으로 흐뭇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브로콜리를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이제 곧 맛볼 수 있겠다는 기대도 기대지만 아무래도 브로콜리를 다듬는 귀찮은 일을 끝마쳤다는 시원함이 더 큰 이유인 듯하다. 어쨌든 먹는 브로콜리엔 이런 기쁨이 있다.


어젠 오랜만에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찾아 들었다. 


"보편적인 노래."


가끔씩 들어야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듯한 노래. 한때 소중했던 마음이 지금도 여전하리란 법은 없지만 그저 그때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아련한 슬픔이 밀려온다. 꼭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만이 존재했던 기억 또한 마찬가지. 돌이켜 보면 지난 것들은 대부분 평범해서 그렇게 뻔해서 기억하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이 많았다. 듣는 브로콜리엔 이런 슬픔이 있다.


기쁨과 슬픔이 버무려져야 온전할 수 있는 브로콜리. 어제 들었던 브로콜리와 지금 듣고 있는 브로콜리는 왠지 서로 다른 느낌이지만 어제 먹었던 브로콜리와 오늘 먹은 브로콜리는 그 맛의 차이를 느낄 수가 없다. 같은 듯 다른 듯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https://youtu.be/7s3w-OBAvPM?si=s7chHqUeeu7U3uQ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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