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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Sep 19. 2023

디토와 디토 사이

“새로 나온 청바지 브랜드인가?” 


행여 농담으로라도 이런 아재개그를 날리고 싶어 하는 이가 주위에 있다면 잠시 그를 외면해야 하겠다. 뉴진스는 소중하니까!

     

며칠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심히 유튜브를 둘러보던 중 미국 시카고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뉴진스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언뜻 봐도 국적이 다양한 수많은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뉴진스의 노래를 한목소리로 따라 부르며 흥겨워하는데, 그처럼 순도 높은 열렬한 팬심을 썰렁한 유머로 희석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 년 열두 달 리바이스, 캘빈 클라인, 게스 등등을 입고 다니는 열혈 청바지 애호가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엔 친절하고 성의 있게 답변을 해야 하겠지만.

     

그런데 사실 난 뉴진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브랜드 파워 대단한 걸그룹이라는 거 외에 멤버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며 어떤 노래로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했는지조차도 잘 모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진스를 낯설게 대할 수 없는 건 그들이 불렀던 어떤 노래 때문이었다. 디토(Ditto). “상동, 동감, 같은 마음”으로 풀이되는 이 단어를 뉴진스는 후렴구에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었다. “So say it ditto!” 함께 지냈던 세월 속에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내 감정, 어서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말해줘!

       

어느 노래 가사처럼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의 몸짓이 아니더라도, 그런 격정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회귀할 때가 있다. 뉴진스의 디토를 들으며 불현듯 영화 Ghost(사랑과 영혼)의 디토를 떠올린 것도 그런 맥락. 단어 하나로 까맣게 잊고 지냈던 수십여 년 전의 기억을 생생하게 소환할 수 있다는 게 자못 놀라울 따름이다. 파릇파릇 설렘 가득한 뉴진스의 디토가 20세기 사랑과 영혼의 디토를 호출하는 시간여행으로 잠시 회상해 보는 그때 그 시절. 국내 영화관 관람객 수 100만을 돌파했던 최초의 영화, 한 남자가 도자기를 빚는 여인을 뒤에서 껴안은 채 함께 점토를 만지작거리는 장면으로 유명했던 영화, Righteous Brothers가 불렀던 OST “Unchained Melody”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바로 그 영화 속 디토는 다음과 같은 모습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몰리(여주인공)에게 매번 디토라고만 화답을 하던 샘(남주인공). 그런 샘에게 왜 자신처럼 사랑한다 말하지 않고 항상 동감이라고만 하느냐며 투정 섞인 핀잔을 주곤 했던 몰리. 어느 날 괴한의 총에 맞아 죽은 후 영혼으로 나타난 샘은 점성술가 오다 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하지만 몰리는 좀처럼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어느 특정 장소에서 함께 찍었던 사진, 그녀의 이름을 새겨 넣었던 한 쌍의 속옷, 너무 큰 사이즈로 짰던 스웨터 등등 둘만이 아는 여러 가지 일들을 오다 매의 입을 통해 전해줘도 좀처럼 의심을 거두지 않았던 몰리가 마침내 샘의 영혼을 인정하고 믿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디토라는 단어였다.     


Sam: Tell her I love her

Oda Mae: He says he loves you

Molly: Sam would never say that

Sam: Say ditto

Oda Mae: What the hell is ditto?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자신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몰리가 답답했던 샘은 급기야 오다 매를 통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만, 샘이 살아있을 때 그 말을 듣지 못했던 몰리는 그저 의심만 더 깊어갈 뿐. 그 와중에 문득 깨달음을 얻은 샘이 오다 매에게 이렇게 얘기를 한다. “Say ditto!” 오다 매는 대체 이게 뭐냐며 어리둥절해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몰리는 드디어 영혼으로 나타난 샘의 존재를 믿고 확신을 하게 된다. 디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오로지 둘만이 느끼고 보증할 수 있는 사랑의 확인. 그런 면에서 영화의 마지막 부분도 참 인상 깊었다. 이제는 정말로 영혼마저 거둬들이며 몰리의 곁을 떠나야 하는 샘이 사랑한다 말을 건넬 때, 울음 섞인 미소를 띤 몰리가 디토라고 화답했던 바로 그 장면.


뉴진스만의 디토였다면 아마도 난 지금과 같은 관심으로 그들의 노래를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지난날 보았던 영화에서 인상 깊게 디토가 각인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가끔씩 뉴진스의 디토를 찾아 듣는 즐거움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고작 하나의 단어일 뿐인데, 바로 그 단어 하나가 오랜 세월의 간극을 메우는 기적으로 마음을 흔들어댄다. 2시간 가까운 영화와 3분이 조금 넘는 노래 속에서 각기 다른 이미지로 구현되어 있는 디토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엮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단순히 같은 단어라는 사실에서 빚어진 연상작용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이 둘의 연결고리가 너무 단단해져 버린 느낌이 든다.


뉴진스의 디토는 참으로 싱그럽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너도 내가 좋다고 해!” 채근하는 젊은 날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다. 사랑과 영혼의 디토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애절하다. 이건 변수가 존재하는 상상이 아닌 내 기억 속에 오롯이 박제되어 있는 변화 불가능한 정서일지도 모른다. 지금 젊은이들이 만나는 디토와 내가 젊었을 때 만났던 디토는 모두 다 하나같이 젊은 날의 초상이건만, 유유히 흐르는 수십 년 세월의 강물에 씻긴 탓인지 발음이 같을 뿐 그 뜻은 사뭇 다른 동음이의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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