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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Sep 20. 2023

가재가 노래하는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 2019>

최근 몇 년 간의 통계를 살펴본 바 요즘엔 하루 평균 170여 권 정도의 서적이 신규로 출간되고 있다고 한다. 일 년에 쏟아져 나오는 6만여 권의 책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게다가 그 책에서 꽤나 큰 만족을 얻었다고 하면 게으른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것도 일종의 행운이지 않을까.


언젠가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만났던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시선을 잡아 끄는 인상적인 장면들을 놓치기 싫어 계속 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가입한 케이블 TV 요금제로는 중간중간 끊김 없이 시청할 수가 없어서 일단 먼저 책으로라도 한번 읽어보자 하여 고르게 된 작품인데, 발간된 지가 이미 몇 년은 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에 놀랐고 그동안 왜 이 책을 몰랐을까 하는 무관심의 크기만큼이나 책 속에 펼쳐져 있을 이야기에 대해 크나큰 기대감을 갖게 되기도 했다.


인공이 가미되어 있지 않은 날것의 자연에 대한 묘사, 그리고 1950년대나 1960년대를 살지 못했던 나로 하여금 그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어느 남부에 자리한 천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습지의 풍광을 꼭 한번 눈으로 확인해 보고픈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수려한 작가의 문체가 이 작품의 백미라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둘 뿔뿔이 흩어져 초래된 어느 가정의 해체, 그로 인해 남겨진 한 여자아이로부터 시작하는 소설 초반의 설정이 다소 극단적이고 거친 면이 없지 않지만, 자연과 인간을 상징하는 각각의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한 편의 감동적인 서사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역량 앞에서 이 정도의 투박함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로 참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어느 마을 외진 습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소설의 흐름. 그러고 보면 살인이라는 사건 자체는 이 작품의 주된 소재는 될 수 있겠으나 작품 전체의 맥락을 놓고 보면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 듯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건 누가 살인을 했는가를 밝히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살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사람들에게서 버려지고 소외된 한 여자아이가 원시의 자연과 어떤 교감을 이루며 성장했는지, 어떤 아픔과 고통을 겪으며 사회화를 거쳤는지, 그리고 결국엔 그에게 감정이입한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제발 그가 살인자로 낙인찍히는 불행을 겪지는 않았으면 하는 설득력 있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詩)적인 소설.


이 책에 대한 인상을 한마디로 요약하고자 할 때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작품 전반을 수놓고 있는 작가 델리아 오언스의 아름다운 문체도 그렇거니와, 가끔씩 등장하는 어맨다 해밀튼(A.H.)이라는 시인의 시 또한 이 책의 장르를 소설이 아닌 시로 착각하게 할 만큼 아주 탁월하고 특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공감을 하는 독자라면, 인간으로부터 소외된 한 자아가 극한의 외로움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을 하기 위해 어떤 방식을 동원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 책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그 같은 흥미로운 사실을 맞닥뜨리는 순간, 십중팔구 가슴 뭉클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원시 자연의 품속에서 성장한 사람, 그리고 그가 쓴 여러 편의 시가 마치 화룡점정처럼, 일흔이 다 된 나이의 작가가 집필한 한 편의 소설을 아주 매력적이고 맛깔스럽게 빚어 완성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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