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서생, 2006>
귓가에 와닿은 윤서의 따뜻한 입김에 순간 야릇하게 움찔거리던 정빈.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음란한 단어를 들은 후, 입술에 맺혀있던 홍화 향 은은한 기운이 온 얼굴에 퍼져 계속해서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 정빈. 허름한 평상 끝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그녀의 자태는 윤서의 가슴속에 은근한 충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눈앞에 날리는 꽃향기가 그의 코를 간질이고 가슴을 매만지더니 어느새 감당할 수 없는 벅찬 기운으로 아랫도리를 세워놓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윤서는 떨리는 손을 가져가 정빈의 뺨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맞닿은 사내의 체온에 긴장으로 몸을 떨면서도 이내 그를 바라보며 뭔가를 갈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그녀. 단정하게 말아 올린 머리에 꽂혀있는 정빈의 붉은 옥비녀처럼 윤서의 그것 또한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따라 한없이 불그스름하게 단단해져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영화 <음란서생, 2006>을 보다가 문득 나도 김윤서(한석규)의 입장이 되어 야설이란 걸 한번 써보고 싶었다. 영화 속에 나오던 것처럼 노골적인 단어는 차마 적지 못해 이리저리 돌려 썼는데 뭔가 제맛이 안 나는 기분. 하기야 몸과 마음이 아직 달궈지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그런 단어를 내뱉으면 그것도 김이 새기는 마찬가지니 오히려 이런 전개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 제맛이라는 걸 유기전 주인 황가(오달수)는 진맛이라고 표현했는데, 부연하기를 '꿈꾸는 거 같은 것, 꿈에서 본 거 같은 것, 꿈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 진맛이라는 건 단어 하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기 있는 야설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일컫는 말인데, 평소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공유하기는 힘든 개개인의 은밀하고 농밀한 주제를 이루는 바탕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영화와 관련하여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대사가 하나 있다. "내가 약자니까...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 아니더냐..." 후궁인 정빈(김민정)의 마음을 끝끝내 얻지 못한 왕(안내상)이 탄식을 하며 내뱉은 말. 사랑에 관련하여 이만큼 자조적이고 비극적인 읊조림이 또 있을까. 물론 그렇다 하여 이 말이 꼭 어긋나고 찢긴 사랑의 감정선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이와 더불어 <음란서생>에서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 몇 가지 있는데, 무엇보다도 나는 김윤서의 사랑이 참 흥미로웠다. 영화 제목을 빌리자면 그는 음란한 서생인데 이 서생이 사랑을 한다 치면 그것은 음란한 사랑이 되는 건지, 아니면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논할 때처럼 일단 음란은 음란이고 사랑은 사랑이라는 경계를 세워놓아야 하는 건지.
일견 선입관처럼 다가오는 음란과 사랑의 경계는 영화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두 시간여의 러닝타임을 거치면서 눈 녹듯 사라져 간다. 동생이 무고하게 문초를 당해도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비겁하게 몸을 사리던 사대부 가문의 김윤서. 그런 그가 우연한 계기로 야설을 접하게 되고, 급기야 자기가 직접 야설을 써가며 내면에 잠재해 있던 음란함을 밖으로 표출하게 되면서 비겁하고 소심했던 자신의 허울을 하나둘 벗어버리기 시작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몇몇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고문으로 탈진하면서까지 삽화가가 누군지 밝히지 않으며 광헌(이범수)에게 의리를 지켰던 장면이고, 이 영화의 백미이기도 한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목숨을 내놓은 채 자신의 사랑을 정빈에게 고백했던 장면이다. 겁쟁이로 묘사되었던 영화 초반과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김윤서.
황공하옵게도 그날 이후로 한시도 마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마음속에 음란한 상상이 자리 잡아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음란한 욕심인지 분간이 아니 되었습니다. 분간이 아니 되는데 어찌 사랑이라 쉽게 말하겠나이까. 게다가 사랑이라 말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데 어찌 사랑이라 말하겠나이까. 다만 이 가슴속에 담아 저승에서 만나 뵈올 뿐입니다.
김윤서의 말에서 나는 음란과 사랑이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저 처음부터 하나였던 그 무엇처럼 느껴졌다. 때로 음란함은 사랑에 상처를 주고, 또 상처받은 사랑은 음란함을 배척하고 금기시하기도 한다. 한잔의 차와 함께 담소를 나누던 그 순간부터 정빈을 마음속에 품었던 김윤서. 음란한 욕심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 헤매고, 이 둘을 분간할 수 없어 쉬이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던 그의 모습은 애초부터 이 두 가지를 차마 같은 맥락으로 인정할 수 없을 만큼 겉치레를 중시한 사대부의 허식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런 망설임과 허식도 결국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는 자연스레 무너져 내리고 만다. 사랑이라 말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지만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정빈에 대한 사랑을 팔아버릴 수는 없는 일.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철없는 중고등학생 시절, 혹은 대학교 OT에서나 접할 만한 이 같은 물음에 대해 과거에 나는 뭐라고 답을 했을까. 그때 그 대답이 무엇이었건 간에 그리고 그로부터 먼 길을 걸어온 지금의 내가 이 단순하면서도 난해한 물음에 대해 뭐라고 답을 하든 간에,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에는 음란함이 있어야 제맛이라는 것이다. 영화 속 표현을 가져오자면 사랑은 음란함이 있어야 진맛이라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의 음란한 변태들의 황당한 작태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세상을 흉흉하게 만든다지만, 이와는 달리 연인끼리의 음란함은 또 다른 나의 분신을 향한 가없는 사랑으로 둘 사이 관계를 보다 더 돈독하게 하는 윤활유 같은 것 아니겠는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저것 다 좋은데 남의 사람을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사랑은 음란함이 있어야 진맛임을 몸소 보여준 김윤서도 어쨌거나 남의 여자를 탐하다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에 공개적으로 망신까지 당하지 않았던가. 그 넓은 이마에 대문짝만 하게 새겨진 음란이라니. 이처럼 음란은 자신의 사랑을 뜨겁게 달구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에게 차디찬 낙인을 찍어내기도 하니 부디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