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2002>
다소 심한 일교차 탓인지 나의 기분 또한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는 것만 같았던 그때, 가을. 어느 날 관악산을 오르다 문득 매미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오로지 내 발자국 소리만이 선명하던 적요한 산길, 바로 그 길을 앞서 밟으며 한 해의 여름은 가고 없는 것이었다. 산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푸르렀지만 무엇인가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 자취를 감춘 여름날의 열기 때문인지 반쯤 뚝 떨어진 체온으로 나를 맞이한 관악산은 마치 주인을 잃고 홀로 남겨진 한 채의 빈집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사라져 버린 계절과 이제 막 당도한 계절 앞에서 나지막이 기형도를 읊어 본 것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 기형도]
사랑이 갇혀버린 그의 빈집을 떠올리며 오래된 내 빈집의 안부를 자문하는 것은 자못 쓸쓸한 일이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사랑을 잃은 적 있으나, 그래서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내 마음의 문을 잠근 적 있으나, 가여운 것은 언제나 그런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였을 뿐. 나의 빈집은 항상 그렇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채 허름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을 뿐. 스스로 외면하는 이내 허허로운 공간 속에 언젠가 가슴 뭉클하게 발효될 내 삶의 이력이란 게 과연 있을 것인지.
베토벤과 쇼팽이 울려 퍼지던 빈집.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의 한 피아니스트가 겪게 되는 생존에 얽힌 이야기가 마침내 코끝 시린 감동으로 공명하는 곳이다. 흐린 하늘 아래 상처가 겹겹인 이 빈집의 내력 한 토막이 영화 <피아니스트, 2002>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바르샤바에 있는 국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연주를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블라디슬로프 스필만)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갖은 고초와 핍박을 당한다. 가족과 이별하고 사랑하고 싶었던 여인과도 헤어지고 결국 자신에게 남은 것이 숨이 끊어질 때까지는 살아내야만 한다는 생존본능뿐이었을 때 비로소 그는 이 빈집을 만나게 된다. 굶주림을 해소하려 여기저기 헤매던 중 이곳에서 통조림 하나를 발견하지만 급작스레 들이닥친 독일군 때문에 위층 다락으로 몸을 숨기게 되는 스필만. 빈집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잠시 떠들썩하던 아래층이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누군가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빈집을 울린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1악장. 독일군 장교 호센펠트의 연주다. 클래식의 여러 매력들 중 하나는 가사가 없음으로 인해 듣는 이로 하여금 리듬과 가락에 얽혀 제 나름의 상상을 펼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베토벤이 어떤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나는 그것과는 별도로 오로지 영화의 분위기에 취한 채 이 곡을 대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손에서 빚어진 월광 소나타가 아래층을 휘돌다 계단을 타고 올라 마침내 자신이 숨어있는 다락에까지 이르렀을 때 스필만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날이 어두워지자 통조림을 따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간 스필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그곳에서 호센펠트를 맞닥뜨린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호센펠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다소 어정쩡한 모습으로 피아노 앞에 앉게 된 스필만.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기 전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그의 머릿속엔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났던 믿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닥쳤던 불행, 속절없이 죽어간 수많은 유태인들, 폐허로 변해버린 조국 폴란드, 그리고 어쩌면 방송국에 포탄이 떨어지는 급박한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자 했던 몇 년 전 고집스러운 자신의 모습까지도.
쇼팽의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스필만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이 장면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는 독일군 장교의 모자와 외투, 그 옆에 통조림, 그리고 열린 커튼 새로 숨 막힐 듯 들이치는 달빛. 멀리 떨어져 앉아 스필만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는 호센펠트의 표정은 또 어떠한가. 말하자면 지금이 바로 이 빈집의 존재가 영화 속에서 극적인 감동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순간인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스필만이기에 영화 속 연주는 물론이거니와 전쟁이 일어났던 실제 당시 그의 연주 또한 어땠을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래서 호센펠트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까지도 대략 어림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장면에서 관객으로서 내가 받았던 감동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음악으로 빚어진 인간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 전쟁 중 수도 없이 일어났던 잔인한 도륙과 학살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꺼지지 않고 버텨온 인간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목도할 수 있었다는 점. 이것이 아니고서야 내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짓눌리는 이유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먼 곳의 달을 쳐다보다가 또 고개를 돌려 어둠을 응시하기도 하면서 호센펠트를 기다리고 있는 독일군 운전병. 그 옆에 자리한 상처투성이 빈집은 이제 하나의 커다란 공명통이 되어 세상 밖으로 쇼팽을 울리고 있다. 그는 알지 못한다, 그 곡이 자신의 상관이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멸시하고 잔인하게 학살했던 어느 유태인의 손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스필만의 연주로부터 내가 받았던 만큼의 감동을 그 또한 받았을 것이라 믿고 싶은 순간이었다. 기형도의 빈집에는 가여운 사랑이 갇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폴란드 어느 하늘 아래 이 빈집에는 머지않아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도래하는 것을 암시하는 미약한 사랑 하나가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https://youtu.be/6zuvYqr7w94?si=uN7O3yqHkcMof_N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