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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Apr 20. 2024

잊지 말아요

기억의 무덤에서 보낸 편지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달마다 지정된 기간에 독서통신교육 신청을 받는다. 신청 가능 인원으로 선착순 백 명을 커트라인으로 잡고 있는데, 이번 달까지 하면 올해 들어 벌써 네 번째다. 그나저나 작년까지만 해도 직원들이 이 정도로 열렬한 관심을 보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새해가 시작되고 몇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을 받기 시작한 며칠 전 아침 9시 정도엔 관련 사이트가 버벅거렸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9시 조금 넘어 누군가가 메신저로 더 이상 접수가 안 된다고 알려온 걸 보면, 몇 분 지나지 않아 금세 백 명의 직원들이 등록을 했던 모양. 신청 기간을 4일씩이나 잡아놓은 게 그저 무색할 따름이다. 


제공되는 2만여 권 정도의 도서 목록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신청하면 되는데, 독서 문화 확산 및 직원 역량 강화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신청자들은 책을 읽고 난 후 독후감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물론 제출하지 않는다고 하여 큰 문제가 될 건 없지만, 그다음 달에 교육 신청을 하지 못한다든가 경우에 따라 올해 나머지 기간 동안 아예 신청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는 불이익은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개인당 일 년에 최대 다섯 번까지 기회가 있는데, 이번에 내가 세 번째로 신청한 책은 허수경 시인의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이었다. "허수경 유고집". 2019년 10월에 발간된 이 책의 제목 하단에 작은 글씨로 붙어있는 글귀였다.


2만여 권의 책들 중에서 허수경 시인의 책은 딱 두 권이었다. <가기 전에 쓰는 글들>, 그리고 2001년에 출간된 후 절판 되었다가 2022년에 다시 신간으로 나온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과거 언젠가 한창 시에 빠져 살았을 때조차도 시인의 시를 속속들이 다 찾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손에 닿아 눈에 읽혔던, 그리고 마음속에 들어앉아 시인의 시상을 부러워하게 만들었던 그녀의 시들을 참 좋아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오랜만에 들춰본 시들 중 유독 눈에 들어왔던 시 한 편을 옮겨 본다.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에 수록된 시다.



나에게 편지를 썼으나 나는 편지를 받아보지 못하고 내 영혼은 우는 아이 같은 나를 달랜다 그때 나는 갑자기 나이가 들어 지나간 시간이 어린 무우잎처럼 아리다 그때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든 별들은 기억을 빠져나가 제 별자리로 올라가고 하늘은 천천히 별자리를 돌린다 어느 날 애인들은 나에게 편지를 썼으나 나는 편지를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쓰러지고 바람이 불어오는 사이에 귀를 들이민다 그리고


[어느 날 애인들은: 허수경]



내가 만약 아직도 파릇파릇한 청춘의 계절을 살고 있다면 시 속의 "애인"은 말 그대로 애인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애인도 아니고 애인들이라니. 단지 두어 명에 불과할 수도 있는 복수 접미사 "들"에, 셀 수 없는 상상의 애인들을 그러모아 놓고는, 받지 못한 편지들을 그려내고 답장을 하는 자아도취적 감상에 줄곧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돌아본 시 속의 애인은 오롯이 젊음의 시선으로만 바라봄직한 그런 애인이 아니었다. 서로의 삶을 공유하다 끝내 사라져 간 애인들을 떠올리는 게 아닌, 손 놓아 버린 혹은 알게 모르게 어느 순간 내게서 이탈한 무수한 기억들을 환기하는 이야기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이 시가 내 마음속에서 온전한 제 자리를 차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억을 빠져나간 내 모든 별들. 그렇게 기억나지 않는 기억들. 잊고 지냈거나 혹은 있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기억을 현재로 소환하느라 과거의 애인들이, 다시 말하면 겹겹이 쌓인 내 삶의 시간대 속에 웅크려 있는 수많은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세무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한 후 2개월여 동안 제주도에 있는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때문에 그 나이에 이르는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몇 가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다. 내 인생 최초로 제주도에 가봤다. 그리고 카톡을 깔았다. 교육 연수 단체생활에서 모든 공지 및 각종 알림 사항들이 카톡을 통해 전달되었던 터라, 내게는 그 앱을 깔고 말고 할 선택의 여지란 게 아예 없었다. 연수를 받으러 가기 몇 개월 전,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꾼 게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생각해 보면 카톡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때 내가 세무직 시험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난 지금도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제주도 한 번 가보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 말미에 희망 근무지를 써서 내는 시간이 있었는데, 여기저기에서 주워들은 바로는 최종 결정엔 연수 성적이 크게 작용한다고 했다. 그런데 좀 특별했던 건 그때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시기라, 올림픽 자원봉사에 지원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이 근무하고자 하는 곳으로 발령받을 수 있도록 가산점을 준다는 공지가 내려왔다는 것. 사실 처음엔 좀 시큰둥했었는데, 신청 기한이 다가올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급기야 1지망 근무지 대전으로 가고자 하면 반드시 자원봉사에 지원을 해야 한다는 환청이 들려오는 듯도 했다. 어설픈 완벽주의자의 괴로움이란 선택의 기로에서 겪게 되는 이런 고민도 한몫하는 것일 테다. 어쨌든 결국 나는 평창으로 갔고, 원하던 곳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씩 돌이켜본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에 대한 기억은 위 6장의 사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만큼 내게는 평창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굵직굵직한 몇 개의 단조로운 사건들로만 구성되어 기억되는 탓이기도 하겠다. 당시 내가 맡았던 일은 해외 각국 선수 대표단의 이동 편의를 위해 적재적소에 차량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온 사람, 어느 기관에서 온 사람, 그리고 일반인 등등 올림픽이라는 규모에 걸맞게 이 일에 투입된 봉사자들이 참 많았다. 여러 팀들이 구성되었는데, 각각의 팀 안에 외국 선수단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는 파트, 그에 따라 적절한 차량을 선택해 스케줄을 짜는 파트, 사용 후 차고로 들어온 차량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파트 등등 여러 부문들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사진을 보니 엄청난 규모의 간이 천막 안에 옹기종기 모여 업무를 봤던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강원도의 눈은 차원이 달랐다. 결코 가볍지 않은 바람과 함께 맹렬하게 쏟아져 내리던 눈. 온 세상이 정말 하얗게 변하기도 한다는 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기억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것들엔 크고 작은 각기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 언제든 우리는, 각국 선수 대표단의 이동 스케줄에 따라 그들이 제때 차량을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차원이 달랐던 평창의 눈은 우리에게 설국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차원이 다른 삽질을 요구하기도 했던 것이다. 중장비가 쓸어 내야 할 몫도 있었지만 어차피 인생 대부분의 승부는 디테일에서 갈리는 법. 차량이 들고 나는 상황 및 상태를 검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던 사람들의 세심한 점검 노력이 참으로 중요했던 날들이었다.


가건물로 지어 놓은 숙소의 외양은 어느 한적한 시골에 자리한 펜션처럼 운치가 있었노라 자위할 수 있었지만, 숙소에 마련된 각 방의 사이즈 및 4인용으로 배치된 2층 간이 철제 침대를 봤을 땐 그저 암담함만이 가슴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바로 여기에서 몇 주를 보내야 한다는 거구나. 때때로 우리는 놀러 온 것이 아니라 봉사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번일 때 가까운 스키장을 찾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도시로 나가 술을 마시거나 했지만, 나는 주로 방 안에 틀어박혀 침대에 누운 채 음악을 듣거나, 가볍게 숙소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가끔씩 세상에서 격리되어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시도 때도 없이 펑펑 내리던 눈과의 싸움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차량 배치 업무의 고단함이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세상과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한 숙소에 도착한 선물 하나는 실로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게다가 그 내용물이 종류별로 두 개씩 담겨온 과자였다는 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사건이라 볼 만도 했다. 같은 강의실에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 올림픽 자원봉사를 지원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 중 당시에 친하게 지냈던 두어 살 많은 언니 한 명과 나를 위해 보냈던 선물. 행여 싸우거나 하지 말고 종류별로 똑같이 하나씩 나눠서 먹으라는 누군가의 마음씀씀이에 눈물이... 는 아니고 그냥 웃음이 났다. 


제주도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나는 주로 강의실 맨 뒤에, 선물을 보내준 그녀는 맨 앞자리에 앉곤 했었다. 지금 사무실 출근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나는 대부분 제일 먼저 강의실에 도착했는데, 언젠가 다른 교육생들이 거의 없는 아침 이른 시각에 강의실에 온 그녀가, 사진 속 과자 상자 안에도 들어있던 아이스 브레이커스 캔디 몇 개를 들고 내 자리로 온 적이 있었다. 대단할 것 없는 그저 일상의 얘기를 잠시 나눴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그녀는 본인을 포함한 다른 교육생들보다 다소 많은 나이에 연수를 받고 있는 나를 살짝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교육 초기였던 터라 얼굴만 알고 있었을 뿐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그녀가 어느 날 불쑥 그렇게 다가왔던 걸 나는 고마움으로 여기고 있었다.



모든 과자가 쌍으로 담겨 왔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인삼황로얄. 이름만 보고도, 아 이건 나이 좀 있는 사람이 먹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드링크제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이것만큼은 언니에게 말하지 말고 나 혼자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덧붙여 왔다. 당시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당장에 뭔가를 챙겨 보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나중에 봉사 일정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올림픽 관련 기념품을 보내주리라 생각하면서, 일단 먼저 카톡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내게 보내준 인삼황로얄에 짤막한 사연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차원이 다르게 쌓인 눈더미 위에 당시 전하고픈 마음을 새긴 후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나저나 최선을 다해 먹는다는 표현은 도대체 뭔가?! 과거의 내가 6년 후 현재의 나로 하여금 닭살 돋게 만드는 참으로 기기묘묘한 순간이다.


열흘 전쯤 급작스럽게 닥친 황사와 미세먼지로 찌뿌둥해진 날씨를 핑계 삼아 집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면, 게다가 이참에 PC에 저장된 여러 파일들도 같이 정리해보자 싶어 사진첩 폴더를 들춰보지 않았다면, 과자 선물에 얽힌 기억은 한동안 망각 속에 묻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기억의 무덤 속에 자리하고 있었을 수도. 과자를 받았던 기억이 특별했던 만큼, 평창 동계올림픽을 생각하면 당연히 우선순위로 떠올랐어야 할 에피소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부턴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내왔다. 눈치채지 못한 순간에 내 기억을 빠져나간 별 하나. 그렇게 기억나지 않았던 기억 하나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 나를 찾아왔다. 시간의 단층 속에서 잔뜩 웅크린 채 끝없이 내게 편지를 보내는 과거의 나를 만났던 시간. 마침내 내가 보낸 수많은 편지들 중 운 좋게 하나를 펼쳐 읽었던 순간. 나도 모르게 나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려 했던 그때의 기억은 대체 어느 계절의 별자리가 되려고 했던 걸까. 그래서 나는 과자 선물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 흐뭇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언젠가 나도 모르게 잃어버렸으나 그런 사실조차 모른 채 떠나보낸 기억들이 지금껏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못내 숙연해졌다.


벚꽃이 한창이었던 4월 초 어느 날, 늘 그랬듯 출근 후 아침 산책으로 근처 카이스트 교정을 거닐다가 벚나무들이 즐비한 길목을 지날 때 신기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는데, 이 나무에서 벚꽃 한 잎이 또 저 나무에서 벚꽃 한 잎이 시간 간격을 두고 조용히 낙하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많은 벚꽃잎들이 일시에 떨어져 내리는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풍경으로 각인되었던 순간. 그렇게 떨어지는 벚꽃 한 잎의 무게가 나도 몰래 소리 없이 사라져 가는 내 기억의 무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기억들이 내게서 이탈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인생의 순리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결론에 이르기 전까지 나는, 과거에 나를 떠나버린, 혹 지금도 나를 떠나고 있을지 모르는 내 기억들을 어림하며 아쉬워하고 또 아쉬워했다.


거실 탁자 위 모퉁이엔 아직 개봉하지 않은, 60정이 담긴 영양제 한 병이 있다. 작년 5월, 급작스럽게 난 인사발령으로 근무처를 옮겨야 했을 때 맞은편 자리의 동료 직원이 건네준 선물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 그리고 드물게 있었던 직원 회식에서 소주 두어 잔에 기진맥진하던 내가 그녀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사용기한을 보니 2025. 10. 23. 굳이 날짜를 확인해 보는 이유는, 아직은 복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겠다는 심산. 선물에 담긴 그녀의 마음을 오래오래 곁에 두고 기억하고 싶기 때문. 세월이 흐른 먼 훗날, 이런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갈까 봐, 아쉬워할 수조차 없는 망각 속으로 이 기억이 사라질까 봐, 그렇게 나 모르는 어느 별자리에서 슬프게 반짝거릴까 봐, 오늘 아침 유난한 비가 내린다. 소리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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