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이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국밥집을 찾았다. 요즘은 5시만 돼도 날이 훤하다. 나는 어둑어둑할 때 출근하는 걸 좋아하는데 언젠가부터 그러지 못해 아쉬워, 어서 빨리 겨울이 왔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내 쓸쓸은 때로 아쉬움에서 비롯되는 그 무엇. 계절을 앞당길 수 없는 막막함을 추스르려, 오늘 그렇게 일찍 어둠을 가르며 집을 나섰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국밥집에서 만들어 내는 마이 프레셔스 골룸.. 아, 이게 아니고 국밥.
A: 여기.. 쓸쓸함 한 그릇 주시오.
B: 쓸쓸함이라.. 궁중소갈비찜 大자 정도가 어떠신지요?
A: 그 쓸쓸함.. 가격은 얼마나 하지?
B: 그릇당 삼만구천오백 원입니다.
A: 난 조금.. 저렴하게 쓸쓸하고 싶은뎁!
B: 아..아.. 그러시면.. 소갈비탕에 육사시미 세트로 하시면 이만삼천오..
A: 내 쓸.쓸.함.은! 만 원을 넘지 않아!
B: (주방을 바라보며) 저기요~ 여기 국밥 한 그릇 말아와 봐요.
https://youtu.be/UrEHWclh7Co?si=MYL__PkXnhyXA7vm
사실은 지난 부처님 오신 날에도 국밥집에 갔었다. 전날 밤샘을 한 사람들에게는 늦은, 휴일 새로운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른 시각. 여느 때처럼 맛있게 국밥을 먹고 계산을 하는데 영수증에 9,000원이 찍혀 나오는 것이었다. 헉! 500원이 올랐어. 앞자리가 8에서 9로 바뀌었다는 것, 그 이유가 500원 때문이라는 것, 나는 고작 500원에 헉! 했던 사람이라는 것,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했던 순간이라는 것, 그 순간이 바로 내 쓸쓸을 가늠하게 해줬다는 사실에 나는 살짝 놀랐다.
아, 나는 나에게 너무 무심한 사람이 아닌가. 내 쓸쓸을 너무 도외시해왔던 게 아닌가. 혼자인 나를 혼자인 내가 더 잘 챙겨줘야 하는 것을. 500원이 아까워 내 쓸쓸을 달래지 못하는 거라면. 순간, 9,000원이라는 가격이 한 끼 식사로는 좀 비싼 게 아니냐며 앞으론 안 먹을 것 같다 생각했던 내가 나에게 미안해졌다. 숙연해졌다. 아무렴, 맛있는 국밥을 500원 차이로 포기할 수는 없지. 내 쓸쓸을 500원에 저당 잡히게 할 수는 없지. 혹시나 만 원이 넘어간다면 모를까. 흠흠.
집에 돌아와 가계부 앱을 켰다. 검색을 해보니 내가 처음 그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은 날짜는 2022년 11월 7일. 2022년에 국밥을 먹은 횟수는 8번, 국밥 가격은 8,000원 육사시미는 11,000원, 그래서 총 75,000원. 2023년에 국밥을 먹은 횟수는 15번, 1월엔 8,000원이었던 국밥 가격이 9월에 먹었을 땐 500원 올라 8,500원, 그래서 총 127,000원. 2024년에 국밥을 먹은 횟수는 5번, 5월 4일까지는 국밥 가격이 8,500원이었는데 부처님 오신 날 먹었을 땐 500원 올라 9,000원, 그래서 총 43,500원. 정리하면, 내가 그곳의 국밥을 먹으며 치렀던 금액은 지금까지 도합 245,500원. 그런데 난 왜 이런 밥값 안 되는 쓸데없는 계산을 하고 있나. 혹시 내 쓸쓸의 근원은 이렇게 쓸데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직장 동료로부터 소개받았던 그곳을 처음 방문했던 날, 나는 국밥 한 그릇과 육사시미 한 접시를 주문했었다. 싱거운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 아침 이른 시각, 출근길에 들러 먹었던 그때 그 국밥과 육사시미의 맛을 머릿속에 담고는, 그날 아침 사무실에서 그 사람을 만나자마자 맛집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맛있게 잘 먹고 왔다는 말에, 그렇게 일찍요? 라며 놀라는 표정과 함께 자신의 입맛 퀄리티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뿌듯함으로 환한 웃음을 지었던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난 부처님 오신 날, 국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쓸쓸의 가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가격이 아닌 맛으로 내 쓸쓸을 달래고 왔다. 살다 보면 무시해도 좋을 만큼 가벼운 쓸쓸이 있고, 때론 어깨를 짓누르는 무형의 바윗덩어리처럼 끝없이 무릎을 꿇리는 쓸쓸이 있고. 그러므로 바람 불면 휙 날아갈 듯한 쓸쓸일랑은 애써 붙잡고 고민 따위 할 필요가 없을 터. 그리하여 부처님 오신 날, 나는 다짐했다. 어둠을 뚫고 출근을 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아쉬움, 그 쓸쓸은 일단 만 원의 국밥 선에서 꾸준히 달래보는 것으로. 오늘도 국밥 한 그릇에 극복한 쓸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