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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Nov 21. 2023

배꼽 피어싱을 한 필자

"철갑상어 알과 라이터돌의 공통점 세 가지를 말해보세요."


오래전, 어느 회사의 서류 심사 및 1차 면접을 통과하고 2차 관리자 면접을 보던 때였다. 사정상 당시에 하고 있었던 일을 멈추고 급작스럽게 직장을 구해야 했던 시기였다. 취업을 위해 미리 면접 연습을 해보는 과정을 한 번도 거친 적은 없었지만, 일단 호기로운 마음으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저 질문을 받는 순간, 각 잡고 앉아있었던 자세가 살짝 흐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머리가 돌이 되고 말았다. 라이터돌을 생각하다가 내가 돌이 돼버렸다. 현기증이 나는 것도 같았다.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순발력을 테스트하고자 함인지, 재치 있는 답변을 기대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판 깔아 줬으니 니 맘대로 한번 썰을 풀어 보라고 한 것인지. 도대체 나는 그때 뭐라고 대답을 해야 했을까.


"배꼽 피어싱과 필자의 공통점에 대해 말해보세요."


오래간만에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나는 입장을 바꿔 당시 면접관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약간의 아량을 베푸는 마음으로 선심 쓰듯이, 세 가지까지는 말고 그냥 한 가지만이라도 좋으니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 보라고 하고 싶다. 당시 면접관들이 철갑상어 알과 라이터돌을 섞어 던져놓고 어떤 심정으로 내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가늠해보고 싶어서, 말하자면 나는 지금 꼬장을 한번 부려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답변을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런 수사의문문식 서술은 그들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이렇게 다시 바꿔 써본다. 그들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의외로 상상을 뛰어넘는 재치 어린 답변에 놀랄 수도 있고, 멍석 깔린 판에서 신명 나게 노는 모습에 감탄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문득 떠오르는 단어, 데자뷔. 비록 그들에게 빙의해 느껴봄직한 잠깐의 치기에 그칠지라도, 언젠가 내가 돌이 되었던 물아일체의 느낌을 그들 또한 맛보지 않을까 하는 현기증 나는 통쾌함이 전두엽을 강타한다.


정치, 경제, 경영, 사회, 생물, 심리, 법, 회계 등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고 있는 행정학. 휘발성은 왜 그리 강한지 어제 공부했던 내용인데도 오늘 다시 보면 또 새로운 그런 과목이었는데, 그나마 수험용으로 공부를 했기에 망정이지 전공으로 접했다고 하면 정말 학을 떼고도 남을 만한 그런 학문이었다.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서 얘기해보고 싶은 건, 중·고등학교 과정에서도 배웠던 매슬로의 5단계 욕구위계이론이다. 물론 이 5단계를 조금 더 포괄적으로 묶어 낸 앨더퍼의 ERG이론도 있다.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단계의 욕구가 발현된다는 걸 토대로 하고 있는 이론으로, 매슬로는 1차적 욕구를 식욕, 성욕, 배설 등 생존에 필요한 욕구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위 단계로 갈수록 고차원적인 욕구가 등장하는데 맨 마지막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소개한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욕구 얘기를 하고 있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배꼽 피어싱이 바로 생리적 욕구 중의 하나인 성욕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건전 모드에서 변태 모드에 이르기까지 성욕을 발동시키는 기제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게 원인이 되어 성욕이 생기는지 얘기하는 건 입 아픈 일이라, 여기에선 이미 발동된 성욕을 놓고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일단 성욕이 생기면 해소를 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쓰려고 보니, 사무실인데? 운전 중인데? 식당인데? 회의 중인데? 등등 여러 가지 악조건인 상황들이 떠올라 감히 마침표를 찍지 못하겠다. 그래서 때와 장소를 가려서 잘 참았다가 혼자 있을 때나 연인과 함께 있을 때처럼 적절한 때, 라고 단서를 달아본다. 곰국 끓이듯 지그시 달궈놓으면 나중에 오히려 더 좋아! 물론 끝까지 참고 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니, 이래저래 성욕은 참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어쨌든 모든 중간 과정을 다 마무리하고 마지막 결전의 순간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본다. 그래서 정말로 이제 해소만 하면 되는데 난데없이 복병이 등장한다. 배꼽 피어싱을 한 여인. 느닷없이 나타난 이 여인 때문에 공들여 쌓아 놓았던 성욕의 탑이 일순간에 허물어진다. 번개 빠르기로 몸과 마음이 차갑게 식는다. 생존에 필요한 1차적 욕구, 생리적 욕구의 좌절이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면 이런 게 아닐까. 시청각 교재를 잘 골라야 한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필자, 말 그대로 글쓴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전문적인 학술 논문에서? 아니면 지금껏 내가 접하지 못했던 또 다른 어떤 영역에서? 하지만 이런 의문과는 달리, 의외로 주변에서 흔하게, 아니 흔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빈도로 이 단어를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단어를 보자마자 뒤로 가기를 누르거나 창을 닫거나 아님 책을 덮는다. 기본적으로 쭉 관심을 가져왔었던 분야의 글이건, 아니면 호기심을 유발하는 참신한 글이건 간에, 이 단어를 보는 순간 해당 글에 대한 모든 관심과 호기심이 단절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자신을 가리켜 '나'가 아닌 '필자'라고 지칭하며 나열하는 글. 나는 어제 그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필자는 어제 그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글쓴이는 어제 그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필자를 글쓴이라는 단어로 대체해서 읽어 보면 어색해도 이렇게 어색할 수는 없는 문장으로 읽힌다. 왜 굳이 자신을 객관화해서 글을 쓰는 걸까. 물론 이런 용례라면 가능하다. A라는 작품을 썼던 적이 있는 B라는 사람이 C라는 글을 쓰며 다음처럼 사용하는 경우다. A 작품의 필자였던 나는. A 작품의 글쓴이였던 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 없다. 살아온 세월만큼 쌓이고 쌓여 형성된 개인적 언어 습관일 뿐이라고 해도, 어색함을 야기하는 필자가 들어간 글을 보는 건 앞으로도 힘든 일일 것 같다.


글을 쓰고 읽고자 하는 건 언뜻 봐도 성욕보다는 고차원적인 욕구에 해당하는데, 각각의 욕구가 좌절되는 양상과 이후의 대처 상황은 상당히 유사하다. 배꼽 피어싱이나 필자를 만나 빛의 속도로 꺾이는 욕구, 그리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좌절된 욕구를 다시 곧추세우려 하지 않는 마음. 한마디로 미련 없이 돌아선다는 건데, 이건 의지를 발현하여 극복할 만한 그런 성격의 좌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맛본 좌절에 저항 없이 순응한다. 그냥 그렇게 된다. 배꼽 피어싱과 필자에 얽힌 공통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개인적인 소회일 뿐이지만, 가끔씩 떠오르는 지난날 물아일체의 경험을 뒤늦게나마 이런 식으로 한 번쯤 그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을 때가 있다. 장난스럽게. 그렇지만 웃긴 건 내가 자문자답을 한다 한들 나 또한 그들과 똑같이 시험에 통과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설명하느라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써댈 만큼 면접 시간이 충분치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철갑상어 알도, 라이터돌도, 배꼽 피어싱도, 필자도 모두 탈락. 그들에 대한 복수는커녕 탈락의 고배만 연거푸 들이켜는 이 오후가 참으로 화창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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