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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Feb 27. 2024

꽃피는 봄이 오면

2024. 2. 26. 월요일 05:52


안개 자욱한 출근길이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몸담기 시작한 후로 이렇게나 짙은 안개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새벽 아침의 안개. 문득, 나도 모르게 "수와 진"의 노래 <새벽 아침>을 흥얼거렸다. 나는 풀꽃이 되고, 너는 이슬이 되고, 안개 낀 이른 새벽 아침에 우리는 만나고. 아직은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을 이 어둠 속에서, 대지 위에 자라난 풀꽃을 적시는 이슬을 상상하며 잠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보고 싶었다. 신호등에 걸려 차를 멈추고는 이내 통과해야 하는 눈앞의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 공간을 응시했다. 보이지 않는 그 아래의 거리를 상상했다. 불분명한 시야 때문에 속도를 살짝 늦추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저 빛을 따라가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엔 별 무리 없이 도달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왠지 도착한 그곳에서 화사하게 핀 2024년의 봄꽃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뜬금없는 생각만큼이나 아직은 멀리 있는 봄.


어제 무심코 방 안을 둘러보다가 새로운 달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도록 여전히 1월에 머물러 있는 달력을 발견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빨리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런 시간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오히려 조금씩 무뎌져 간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달력을 넘기면서 보았던 2월엔 입춘(立春)과 우수(雨水)가 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봄이 시작되고 얼음이 녹아내리는 달이라는데, 지난 주말엔 눈발이 날렸고 오늘 아침엔 영하에 가까운 기온을 보였다. 봄날의 기운을 제대로 만끽하기엔 아직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건만, 출근길 짙은 안개 속에서 느닷없이 봄꽃을 기대하다니, 철이 없었다. 이렇듯 피부로 느끼는 봄과 마음으로 감지하는 봄에 괴리가 있듯이, 이 세상엔 기다림 끝에 당도했으나 그 기다림을 제대로 다독여주지 못한 채 황급히 사라져 버린 봄도 있을 테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결코 오지 않는 봄도 있을 것이다.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꿈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봄. 그리고 그 봄 안에서 환하게 피지 못한 꽃.


오래전 TV에서 뇌종양에 걸린 한 여자아이의 투병기를 담은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이른 나이에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내 마음을 더욱 안쓰럽게 했던 건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성숙했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 보통 애어른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런 아이를 볼 때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의 몸으로 어른의 사고를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머릿속 커다란 종양은 수술을 하기엔 힘든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고, 방사선 치료를 제안하던 의사의 소견도 그다지 희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 모두 다 들어주라는 의사의 말은 아이의 가족에겐 얼마나 가혹한 선고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때 그 아이가 문득문득 생각나는 이유는, 당시 프로그램에 나왔던 브라운관 속 어느 풍경이 참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아빠 차를 타고, 아빠가 꺾어준 벚꽃 나뭇가지를 손에 쥔 채, 차창 밖으로 흐르는 벚꽃들을 보면서, 나중에 벚꽃 피는 계절에 다시 여기에 오자고 했던 아이의 모습. 그러나 아이는 그 계절의 벚꽃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1994년, 나는 이 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싶었다. 어서 빨리 이듬해의 봄이 오기를, 그리고 목련이 피기를 소망했다. 많은 검사를 통해서도 쉬이 밝혀지지 않았던 병명. 그걸 알 수 없으니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리 없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니 몸과 마음은 나날이 쇠해만 가고, 급기야 입을 열면 말보다 기침이 먼저 나오는 상황에 이르러 어머니는 좋아하셨던 노래마저 부르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오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이 짧은 한 소절에도 얼마나 많은 힘겨움이 들어가던지.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의학적 치료로 빨리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해가 지나면, 정말이지 이 해가 지나버리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지금의 상황이 급반전 되어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해가 당도하는 순간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을 회복하시고 눈앞에 활짝 핀 목련을 두고서 "오오~ 내 사랑 목련화야" 흥얼거리실 수 있지 않을까. 해가 바뀌면 바로 봄이 오는 것이고 봄이 오는 것과 동시에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우리 가족의 목련도 다시 활짝 피어나지 않을까. 그러나 빨리 지나가버리길 바랐던 1994년은 끝내 어머니를 붙들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의 목련도 피지 않았다.

      

그토록 간절하게 봄을 기다린 건, 게다가 목련이 피기를 기다린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목련은 내게 있어 기다림의 꽃이 되었다. 1994년에서 길을 잃어버린 기다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냈던 시간보다 그 사람과 헤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도, 내 주변의 세상도 그저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지는 시간. 이런 걸 두고 먹먹하다고 하는 걸까 자문을 한 적이 있다. 근무하는 청사 뒤편으로 큼지막한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며칠 전 퇴근을 하다가 우연히 바라본 그 나무엔 벌써부터 꽃봉오리들이 파릇하게 올라 있었다. 아직 봄날의 햇살이 아닌데도 서둘러 피어날 채비를 하는 목련을 보다가, 그때 그 시절 피고 또 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코 피어나지 못했던 내 안의 목련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시간은 기다림을 숙성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무디게도 하지만 저 먼 과거에서 길을 잃어버린 내 기다림은 시간과는 무관한 채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내 인생에는 기다렸지만 차마 기다렸다고 말할 수 없는, 기다리지만 결코 기다린다고 말할 수 없는 숱한 봄들이 있을 수밖에.    


세상이 온통 어둠뿐이다 싶은 순간,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품을 때가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도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마지막 희망으로 기대게 되는 말이 있다. 근거 없는 확신으로 나를 몰아세워 잠시나마 안심하도록 하게 하는 말이 있다. 괜찮아, 잘될 거야, 봄이 오면, 그 계절의 꽃이 피면. 신호등에 걸려 차를 세우고 저 멀리 짙은 안개를 바라보면서 잠시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보다 내가 가야 할 저기 저 자리가 그저 흐릿하게만 보여, 파란 신호가 떨어져도 출발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순간 고민을 하기도 했다. 때마침 떠오른 노래로 풀꽃이 된 나, 그런 나를 이슬로 적셔주던 너. 비록 안개 낀 이른 새벽 아침에 만날 순 없는 우리라지만, 저기 저 가로등 불빛처럼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 관계로, 그 빛에 마음을 실어 내 가야 할 길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안개 자욱한 거리를 지나면 2024년 봄꽃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던 새벽 아침. 그저 철없는 기대일지언정, 이젠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피어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봄꽃을 그려보았다. 봄이 오면, 이제 그 계절이 오면, 생각지도 못한 싱그러움으로 나를 반길 꽃이 피어난다면 좋겠다.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으나 만날 수 없었던 꽃이 아니라, 격한 절실함으로 다그쳐 피길 바랐던 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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