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준식 Jul 02. 2021

관상도 볼 줄 아시나요?

[윤준식 사용설명서-프롤로그(1)]  2021.07.02.

한동안 브런치를 잊고 지냈던 나지만, 최근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에게는 어찌 보일지 모르지만 지인들과 내기에 져서 브런치에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보셔도 무방하겠다.


내기 운이 어찌나 나빴던지 이번에는 브런치 매거진을 개설하게 되었다. 1시간만에 글을 써서 보여주는게 목표인데, 즉석에서 브런치 매거진 제목도 아무 생각없이 정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내기에 졌기 때문에 '남산골 산책일기'다. 이렇게 시작한 김에 자주 산책하고, 산책하며 떠올랐던 생각을 브런치에 남겨볼까 한다.



요즘 이래저래 직관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자주 나누고 있다. 내 자신이 직관력이 강한 편이다보니 남들과는 관점이나 생각이나 반응이 다른 데서 기인한다. 말이야 이렇게 멋지게 썼지만 현실은 이렇다.


"넌 생각이 뭐 그러냐?"

"넌 뭔데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어린 시절부터 이런 말을 워낙 많이 듣고 자라났기에 이제 이골이 났다. 어릴 때는 이런 다름 때문에 대인관계를 갖기가 어려웠다. 한때는 이 다름이 틀림이라 생각하고 혼자 슬퍼하기도 많이 했다. 좋은 대인관계를 갖기 위해 일부러 나의 성정과는 다른 행동을 하곤 했다. 결국 남들이 활발한 모습을 보이던 청춘의 시기를 다소 어둡고 힘들게 보냈다. 시간이 한참 흘러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직관력이 좀 더 강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 모두 나처럼 타인과의 공존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는 사실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직관을 이렇게 설명한다.

직관(直觀)
1. 감관의 작용으로 직접 외계의 사물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을 얻음. 
2.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  


사전이 설명하는 그대로다. 직관력이 강한 사람은 배우지 않고도 배운 지식을 활용해 지식을 새롭게 조직할 수 있다. 즉문즉답으로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내가 그런 편이다.


물론 직관력이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다 옳지 않고,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아니다. 훈련이 필요하고 학습도 뒤따라야 한다. 알지 못하면서도 보이는 것이 있긴 하지만, 아는 만큼 더 보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습득은 계속되어야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도 필요하다.


나와 같이 직관이 강한 사람들의 장점 중 하나가 위기상황에 강하다는 점이다. 대안과 해결책을 금방 찾아내기 때문이다. 굳이 위기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플랜B를 쉽게 떠올리기 때문에 실패를 염두한 다른 방안도 제시해 원안을 더욱 완벽하게 보완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직관이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직관이 강한 만큼 다른 능력이 발달하지 못하기 마련인데, 감각적인 영역에서는 부족함이 많다. 판단은 빠르고 좋은데, 그걸 뒷받침하는 눈치는 없다. 상황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세한 차이는 감지하지 못한다. MBTI의 4가지 선호경향이 이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정보를 수집하는 인식기능에서 감각과 직관을 대비점으로 놓고 있다. 직관이 강한 나의 경우 감각면에서 많이 뒤떨어진다. 이런 결점 때문에 장점을 살리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오늘 참 재미난 질문을 받았다. 공통의 화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스타트업의 피칭 동영상을 함께 보게 되었다. 각각의 창업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창업자의 생각과 아이템에 대해 한참 토론하게 되었다. 내가 안본 것을 본 것처럼 사실감있게 연속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나를 신기하게 바라본 상대방이 내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혹시 관상도 보시나요?"


순간 얼음이 되어 버린 나... 5초 후 그냥 웃어버렸다. 직관력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냥 내 이야기를 좀 더 하는게 낫겠다. 

나는 내가 지닌 직관력의 덕을 많이 보았다.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는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려하는 순간에도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고,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능력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진 못했다.

사람에 대해서도 보이는 것이 있다. 겪어가며 하나씩 풀어놔야 하는 것이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단정하고 들어간다. 맞아도, 틀려도 재미 없다. 맞으면 맞는 대로 얄미운 사람이 되고, 틀리면 직관력을 부정당하고 이후엔 불신을 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밌게 보내야했을 시절을 재밌게 보내지 못했다. 어린 시절엔 똘똘이 스머프 취급당하며 재수없다고 따돌림을 당했고, 청년기부터는 부담스러운 사람 취급을 당하며 혼자 지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가장 웃펐던 건 무슨 사고가 터지거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핀치히터나 구원투수처럼 투입당하곤 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패전처리 투수처럼 이용당하기도 했다. 잘 될리 만무한 일에는 돌격대원처럼 투입되었고, 퇴출이 어려울 때는 후미에 남겨져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했다. 내게 피해가 올 줄 알면서도 처절하게 굴러야 했을 때도 많았다. 나 나름대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보다 오래오래 먼 길을 걸어왔다. 나름대로 단단하고 야무지게 살아온 구석도 있지만, 여전히 나는 빈 구멍 투성이다. 나 자신의 결핍이 나를 계속 움직여왔다. 나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나 자신의 능력을 사줄 사람을 찾아다니는거다. 나의 구멍을 채워줄 사람을 만나러 움직이는 거고...


당분간 남산골을 자주 거닐게 될 것 같다. 오늘 이렇게 시작한 산책이 나를 어디로, 어디까지 가게 할까?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것도 더 반복하다보면 의미있는 시간이 되겠지? 오늘은 마음 아픈 이야기를 쏟아놨지만, 다른 날은 자랑질 하는 날도 있을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