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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 Apr 20. 2024

0. 프롤로그

제2의 MBTI '애착 유형'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과거 혈액형, 현재엔 MBTI가 뜨거운 열풍을 불고 있지만 '애착 유형'이라는 단어는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다른 말로 바꾸어 보자. '불안형 인간', '회피형 인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MBTI가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성향을 파악하는 수단이라면

애착 유형은 환경으로부터 형성되는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필자는 학창 시절 모범생, 워커홀릭 흔히 말하는 '갓생러'의 대명사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청소년 수련시설에 소속되어 평일에는 피아노 학원 하나만 다니며 남들보다 많은 자유시간을 이용해 공모전과 교내 대회 등을 준비했고, 주말이면 청소년 위원회에서 진행하는 회의에 참석하거나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위원회 활동이 없는 날에는 각종 청소년 행사에 참여하거나 대외 활동, 봉사 활동을 하러 다녔다.


딱히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전교권에 있는 친구들조차 나를 대단하게 여겼다.

나는 그들이 모르는 영역에서, 그들보다 사회적으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비교 대상이 없으니

보이는 성과로만 능력을 판단하는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 활동은 나를 포장하기 좋은 수단이었다.

그렇게 는 낮은 성적표를 들고도 남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노력의 분야가 다를 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걸 그들은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들과 똑같은 길을 걸으면 내 부족함이 드러날 거라는 것을.


중학교 수학 시간. 선생님은 늘 그날 배운 공식을 응용한 문제를 칠판에 적고, 문제를 푼 학생들에게는 상점이나 간식을 주셨다.


기본적인 공식을 응용한 쉬운 문제들이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쉽게 문제를 풀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숫자를 보면 현기증이 났고, 사칙연산이 내가 이해하는 수학 공식의 한계였다.


모르면 바보라는 간단한 공식조차도 내겐 시련이었다. 덕분에 수학 시험지에는 늘 비가 내렸다.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그들은 나를 치켜세울 수 있었을까.

남들과 똑같은 길에서 낙오자가 되느니 아무도 모르는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나를 덜 비참하게 만들었으니까.


나는 나의 부족함을 숨기기 위해 남들이 모르는 길을 계속해서 찾아 나서야 했다.

그때 선택했던 것이 바로 청소년 위원회였고, 이를 수단으로 유튜브 출연, 언론 인터뷰, 교외 대회 수상 등

겉으로 보이는 성과를 냈다.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붙은 활동들은 예상외로 많았고, 어려운 이름의 사업들은 중학생 청소년을 과대평가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천천히 영역을 펼쳐나갔고, 중학교 3학년 때는 기관을 벗어난 활동들을 찾아다니다 한국청소년청년신문이라는 신문사에서 청소년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나의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멋있다고 말해주었다.

실제로 나와 비교하다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언제나 전교 5등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육열 높다는 동네 학원에서도 상위권 반 수업을 듣고, 중학생 때 토익 점수가 800점대 후반이던, 내 선망의 대상이었다.


내가 쌓아 온 경험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친구가 100명의 사람들 중 1등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10명도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상위권에 있는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때는 능하고 별 거 없는 나를 들키는 것이 죽을 만큼 무서웠으니까.


뜬금없이 필자의 과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처음에 말했던 '애착 유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필자는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자.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발전하는 내 모습을 보는 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오로지 나를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산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보는 내가 형편없는 모습이 아니길 바라서, 나만의 길을 일찍부터 찾아 남들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하길 원해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타인에게서 받는 칭찬과 인정에서 사랑을 느꼈다.

부족하고 모자란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 생각했고, 그들에게 쓸모가 없어지면 모두가 나를 떠날 것이라고 믿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타인의 부재에 대한 집착은 '불안형'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였다.

이들은 흔히 자기부정, 타인 긍정의 태도를 보이며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갈구한다.


하지만 필자는 조금 달랐다. 나를 망가트리면서도 끊임없는 사랑을 갈구함과 동시에 그들이 주는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했다.


'어차피 쟤도 내 이런 모습만 보고 좋아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가 어느 날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힘든 일이 있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타인에게 의지하기가 힘들어 혼자서 꽁꽁 숨겼다.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 도망치고 싶었다.

마음 문을 굳게 닫고 철저히 고립어야만 비로소 정을 되찾았다.


이건 자기 긍정, 타인 부정의 태도를 보이는 회피형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런 회피 성향 때문에 '회피형과의 연애는 무조건 피해라'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필자는 불안형과 회피형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것을 애착 유형에서는 '혼란형' 또는 '미해결형'이라고 한다. (양가형이라는 이름도 있지만 대부분 회피형이라고 한다.)


혼란형은 자기정, 타인 부정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신도 믿지 못하고 남도 믿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바로 이 부류인데, 이들의 내면에서는 불안형의 애정결핍과 회피형의 타인에 대한 불신이 끊임없이 갈등하며 자기 자신조차도 스스로의 이런 모순적인 태도를 이해하지 못 혼란스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애착 유형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애착은 대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주양육자에 의해 형성되는데, 먼저 불안형 애착기질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아보자.


양육자가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등의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양육자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렇기에 아이는 언제나 불안에 떨며 양육자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순종적이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향으로 자라게 되며 아이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른 상황으로는 양육자가 아이에게 주는 관심의 빈도가 일관적이지 않은 경우 불안형 기질이 형성될 수 있는데, 아이는 양육자의 무관심한 태도를 견딜 수 없어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리거나 소리를 치고 떼를 쓰는 등 양육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혼날 행동을 하기도 한다.

전자의 상황에서는 상대방에게 미움받는 상황 자체에 큰 불안을 느끼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감정보다는 자신에게 주는 관심의 빈도가 적은 것에 불안을 느끼는 등 같은 불안형 기질 안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포인트는 각자 다르다.


다음은 회피형 기질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아보자.


이들은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불안형과 반대로 누구에게도 의존하기를 꺼려하며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들은 어린 시절 주양육자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받지 못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넘어져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주지 않는다거나 양육자에게 도움을 청할 때 해결이나 위로보다는 아이의 무능함을 지적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등 엄격한 태도를 보이면 아이는 양육자를 비롯해 타인을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됨과 동시에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존재라고 인식하며 자라게 된다.

그래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동굴을 만들어 감정을 꽁꽁 숨기고, 그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혼란형 기질의 형성 과정을 알아보자.


모두들 '외로운 고양이 짤'을 본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홀로 창문 앞에 앉아서 외롭다고 슬퍼하던 고양이에게 누군가 다가가자 고양이는 갑자기 돌변하여 그 사람을 내쫓고, 다시 혼자가 되자 외로워하는 장면이 담긴 짤이다.


필자는 그 짤이 혼란형 인간의 모습을 담은 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불안형과 회피형의 성향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에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동시에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적인 기질이 형성되는 이유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이나 가정폭력, 아이 앞에서의 잦은 부부싸움 등 가정 불화에 심하게 노출되었거나, 자신을 사랑해 주던 양육자가 훈육을 목적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한다거나, 학창 시절 친구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마음에 큰 내상을 입은 채로 해결되지 않은 상처 때문에 상황이 발생한 이유를 본인에게서 찾으며 자책함과 동시에 타인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랑받고 싶 욕구는 크지만 자존감이 매우 낮은 유형이기 때문에 '진짜 내 모습'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게 된다.


이런 모습은 불안형과 흡사하지만 불안형은 타인에게 버림받을까 봐 상대방을 옥죄며 매달린다면, 혼란형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타인이 좋아하는 '가상의 나'를 만들어내그 모습을 과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방법으로 얻은 관심과 애정은 오히려 혼란형에겐 독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가상의 나'를 좋아할수록 진짜 내 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할 것이라는 확신에 차 타인을 향한 불신은 커지고, '진짜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허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의심하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돌연 타인과의 관계를 중단하고 자신만의 동굴로 숨어버리기도 한다.


아마 여기까지 읽었다면 필자가 애착 유형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이 글은 앞으로 다룰 필자의 과거 이야기를 위한 빌드업이었다.


과거 필자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과 떨어져 7살 여름 전까지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덕분에 필자의 주양육자가 계속해서 바뀌었고, 그들은 각각 엄격하게, 또는 무심하게, 어떤 분은 기분에 따라 필자를 다르게 대하기도 했다.


그 탓에 필자는 불안형과 회피형의 기질이 모두 형성되었고, 혼란형 인간이었던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겪은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아주 오랜 시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극단의 회피형 인간이 된다.


이후 필자는 4년 간의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 개인적인 노력으로 19살 때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무너졌던 자존감을 회복했으며, 현재에는 그동안 누리지 못한 평온과 안식을 맘껏 누리며 조금씩이나마 안정형 애착으로 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 글을 읽는 대상이 누구일지는 알 수가 없으나 혹시라도 현재 우울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면, 혹은 자존감이 절벽 밑으로 떨어져 있다면,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필자의 철학을 꼭 기억하기를 바란다.


'사랑받고 싶으면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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