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미바이유어네임, 2018
계절이 달라질 때 종종 오래 전 순간들의 공기가 떠오르면서 기억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처음 대학에 입학해 교정에서 벚꽃을 보던 봄의 공기, 뜨거운 여름 방학, 땡볕에 끝없이 걸어도 좋았던 날이나 첫눈을 맞다가 문득 함께 있지 못함을 아쉬워하던 기억 등. 계절과 기억이 꼭 함께 떠오를 때가 있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엘리오라는 소년의 시점에서, 어느 여름 날 겪은 사랑의 그리움과 떨림을 보여준다. 첫사랑의 대상이 되는 그 해 여름 손님인 올리버의 속내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 엘리오를 대하는 태도나 행동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엘리오의 서툰 마음은 수백번 짐작을 거듭한다. 그도 날 좋아하나봐, 아니야, 나를 무시하나봐. 그도 나만큼 아플거야. 우리는 서로가 곧 자신이니까, 아니야, 나만큼 아프지는 않았나봐.
엘리오는 처음엔 올리버를 미워하거나 무관심한 척 한다. 하지만 관객은 안다. 그가 처음부터 줄곧 올리버에 푹 빠져 어쩔 줄 몰라서 그런다는 걸. 관객은 엘리오의 마음과 하나가 돼 언제 올리버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함께 조마조마하고, 올리버의 알 수 없는 퉁명스러움에 실망하다가 언뜻 비치는 다정함에 함께 안도한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내가 알아야 할 것 같다고?"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해서요."
하릴없이 올리버와 자전거를 몰고 다니던 엘리오는 결국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의 마음을 받아줄 듯 하다가, 이내 '나는 나를 잘 알아. 우리는 이래선 안돼' 라며 멀어진다. 하지만 얼마 뒤 서로는 처음부터 서로를 좋아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엘리오는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며 애교 섞인 원망을 한다. 하기야 여름 휴가동안 잠시 한 집에 머물 뿐, 여름이 끝나면 둘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테니까.
(스포주의!?)
올리버가 떠나고 여름이 끝나갈 무렵, 슬픔에 잠긴 엘리오에게 아버지는 마음껏 슬퍼하며 감정을 외면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마음이 아플 때마다 그 감정을 외면하고 묻어두면 서른 살 쯔음엔 더이상 남는 게 없다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 크리스마스를 맞는 겨울, 이탈리아에 있는 엘리오의 가족에게 미국에 있는 올리버로부터 전화가 온다. 그는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안부를 묻다가, 곧 결혼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다. 전화를 끊은 엘리오는 벽난로 앞에 한참을 앉아 서럽게 운다. 반나절만 그가 보이지 않아도 그리움에 사무치던 지난 뜨거운 여름을 함께 지나온 관객들은 황망한 기분에 잠긴다. 내 사랑이 끝났던 그 때의 기분을 고스란히 느끼며 엘리오가 되어 서럽게 울고 싶어진다.
'나를 잘 알아. 우리는 이러면 안돼' 는 이런 결말을 먼저 예견한 말이었을까. 왜 우리의 첫사랑들은 늘 우리보다 많은 걸 아는 것 처럼 느껴질까? '어른스럽게' 언젠가 끝날 거라며 밀쳐내는 이가 과연 처음 겪는 감정이 서툼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그 마음을 고백하는 이보다 더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뒤로 오랫동안 엘리오는 울었을 것 같다고 상상했다. 어쩌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쩌면 올리버보다 더 오래 알았던 동네 친구 마르지아와 연인이 된다 해도. 몇 년 뒤에도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비슷한 공기를 마실 때면 오래도록 올리버를 생각했을 거라고 상상했다. 사랑을 받는 시간은 끝났는데, 주던 사랑은 미처 다 끝나지 못할 때가 있다. 여름이 지났는데도 한겨울 벽난로의 온기에서 여름의 뜨거움을 찾으며 서럽게 울듯, 미처 열이 다 내리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