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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14. 2019

그 아이들은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로마, 2018

 어린 시절에 대한 따뜻한 기억은 아마 누구나 조금씩 갖고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언니처럼 세네 살 때 일도 곧잘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유치원 입학 이후부터가 유년기의 기억인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내게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가장 사무치는 그리움은, 매 순간 보호받고 있다는 포근한 느낌이다. 전쟁터 같은 유치원(낯가림이 심했다)을 마치고 돌아오면 수제 딸기우유를 내밀며 오늘 하루의 일을 묻는 엄마가 있는 집. 눈뜨면 집 안은 이미 환하게 밝혀져 있고, 엄마의 다독임에 일어나서 시계도 안 보고 식탁에서 시리얼을 느긋하게 먹다가 엄마가 나갈 시간을 알려주면 아빠 차 뒷좌석에 사장님 포스로 척- 걸터앉던 그 안전하고 늘 똑같은 풍경.


 그 유년기를 좋은 줄도 모르고 다 지나와 버린 지금, 진짜 전쟁터 같은 하루 끝에 불을 켜고, 보일러를 켜고 딸기우유는 고사하고 한 끼니조차 차려먹어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아직 어둡고 조용한 아침, 소란스러운 알람이 아니고서는 무거운 눈꺼풀을 뜨게 해 주는 것도 없다. 그래도 다정한 기질의 남편을 만나 그가 간혹 아침에 깨워주기도 하고, 졸린 눈 비비며 토스트에 잼이라도 발라서 싸주거나 때로는 집을 데워놓고 퇴근길의 날 반기기도 하지만, 그와 나는 서로를 보호하는 동거인이지, 어느 한쪽만 전적으로 믿는 기울어진 관계가 아니다. 이제 나 말고는 누구도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어른이다.


 <로마>는 낯선 도시 멕시코시티의 낯선 시대를 배경으로, 누구나 갖고 있는 유년의 시절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그 집 안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어른들, 가정부 클레오는 연인에게 버림받고 미혼모가 되어 세상과 조용한 전쟁을 벌이고 어머니 소피아는 외도로 남편을 잃고 휘청거린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잘 어울리고, 실수나 잘못을 해도 보호받고 품에 숨는다. 바람이 불어도 터지지 않고 그 안을 유유히 떠다니는 비눗방울 속에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따뜻하고 안전하다. 흑백영화임에도 쏟아지는 햇살이 느껴지는 아침의 장면들 안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전쟁을 벌이는 엄마나 가정부와 소란스럽고 밝은 아이들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나는 그 중간쯤 어딘가에서, 유년을 그리워하는 어른의 몸을 한 채 어정쩡하게 지켜보는 관객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 소피아는 아이들과 떠나는 가족 여행을 계획한다. 그리고 모든 풍파를 같이 겪어낸 가정부 클레오도 동행한다. 이 여행은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어른들이 서로를 부축하는 순간이지만, 아이들에겐 그저 신나는 소풍이다. 여행지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엄마 생각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하다. 몇 가지 질문을 던지지만 아이들은 아직 엄마가 있으니까, 그리고 핏줄보다 분명하게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클레오가 있으니까 또 안심한다.


 그 여행의 마지막 날,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클레오는 아이들이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것을 발견하고 걸어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몇 번이고 파도가 얼굴을 때리고 뒤로 밀지만, 물러섬 없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더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기어이 그 아이들을 구해낸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 달려온 엄마 소피아와 구해진 아이들, 해변에서 지켜보던 막내와 물에 흠뻑 젖은 클레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낀다. 그런 그들을 다시 한번 햇살이 감싼다. 클레오는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지켜냈고, 아이들은 그 품에서 또 한 번 안도했을 것이다. 보호받고, 사랑받은 아이들은 조금 더 나은 어른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들도 언젠가는 다 자라서 자신이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해 파도에 뛰어들기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때 이제는 파도가 내 얼굴을 때릴 때, 어릴 적 나를 지켜주었던 이들과 햇살을 생각하면 조금은 버틸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유년은 언젠가 끝난다. 불행했거나, 눈부시게 행복했거나에 관계없이 누구나 어른이 된다. 나는 아침 침대 위로 쏟아지던 햇살과 부엌에서 나던 아침의 소음을 잃어버렸다. 어린이집을 마친 고단한 오후 (그래 봤자 두세 시... 지금의 호흡으로는 업무가 한창때인 시간이다) 엄마와 마주 앉아 마시던 달콤한 딸기우유를 포기하고 어른이 되었다. 지금의 내게 대신 주어진 건 밤늦게까지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신랑과 나누는 대화, 일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딱딱했던 관계가 말랑해지고 두터워지는 순간, 십몇 년 된 친구들과의 편안함 같은 것들이다. 게다가 내가 물을 줘야만 자랄 수 있는 화분이 두 개나 있다. 잃은 것을 떠올리면 한없이 그리움에 잠기지만, 계속 나아가야 할 이유들도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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