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되는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기: 캠핑을 시작한 이유

by 여름

2021년이 끝나가는 겨울쯤부터 캠핑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 캠핑을 접한 건 유튜브 콘텐츠로, 다음은 책으로. 구독하는 채널들이 늘어가고 점점 더 쉬는 시간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찜 목록에 저장해둔 캠핑 용품도 늘어갔다. 하지만 모기를 제외하면 벌레 한 마리 잡지 못한다는 점과 차가 없다는 점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용기가 나지 않는 지난 6-7개월 간 집에서만 캠핑 랜턴을 켜두거나 버너로 고기를 구워먹는 등 소소한 캠핑 기분을 내며 용감한 유튜버들의 영상으로 대리만족을 삼아왔다. 그러다 여름 휴가로 떠난 글램핑에서 낡은 텐트와 애매하게 끈적한 실내 바닥, 켜지지도 않는 TV와 찝찝한 침구에 아쉬움을 느끼고 돌아와, 캠핑장을 덜컥 예약하고 수십 만원어치 캠핑 용품을 주문했다.


왜 캠핑에 눈길이 갔을까? 사실 돈이 많이 드는 취미는 되도록이면 갖지 않고 싶었다. 이미 지갑으로 키우는 강아지도 한 마리 있고, 은퇴도 빨리 하고 싶고, 하나에 진득이 재미를 붙이기보단 이것저것 기분만 내다가 접어버리는 내 성미를 알아서였다. 그런데 캠핑은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가고, '이거다' 싶었다. 대체 뭐가 '이거'라고 느낀 걸까. 아직 정식으로 1박 2일 캠핑을 떠나보진 않았지만 '뽕'은 확실하게 차오른 지금 몇 가지 떠올려보자면 이런 점들에 끌렸다.


일단 나는 야외 활동을 좋아하고, 탈 것보다는 걸어다니거나 땅을 직접 딛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아무튼 내 몸으로 통제되는 환경에서의 활동을 좋아한다. 로드 트립이나 캠핑카, 해외 여행 모두 조금씩 내 발목을 잡는 것들이 있었다. 차량이나 비행기에서 몇 시간 꼼짝없이 갇혀 있는 기분을 싫어했고, 여행지에서도 렌트나 기차, 버스보다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보고 싶었다. (차로 로드 트립을 가느니 국토 대장정이나 순례자의 길을 직접 걷겠다는 나의 주장은 남편을 기겁하게 했다.) 게다가 스케줄까지 넉넉하게 빼두어야 할 땐 여행을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그렇게 큰 맘 먹고 떠난 여행지에서 조금이라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어떻게 준비해서 온 건데..."하는 실망감이 늘 기쁨을 앞질렀다. 하지만 캠핑은 당일 갔다가 뭔가가 좀 아니다 싶으면 바로 후퇴해도 된다. 박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재밌는 모든 것은 주어진 5x7m 안에서 만들면 되고, 주변을 구경하고 싶을 땐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여행지의 산책길이니 걸어서 다녀오면 된다. 기차가 연착될까봐 전전긍긍하거나, 다리가 뻐근하고 귀가 멍하도록 이동수단에서 버텨야 하는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호텔이나 숙박업소에서 남이 쓰던 물건에 대해 막연한 찝찝함을 느낄 필요도 없이, 내 물건들로만 여행을 채울 수 있다는 점 또한 소소하게 취향에 맞는다.


두 번째 매력은 강아지와 함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취미라는 점이다. 우리 가족은 사람 둘+강아지 하나다 보니, 웬만한 반려견 동반 펜션이 아니고서는 훌쩍 떠나기를 마음 먹기 쉽지 않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아선지, 반려견 동반 여행은 언제나 예약 전쟁이고 1박에 드는 금액 또한 만만치 않다. 여행지에서 외식이라도 하려면 반려견 동반 가능한 식당/카페를 찾아야 하니 동선이 이상해진다. (그리고 멀미가 심한 나와 강아지에게 동선이 비효율적인 여행은 꽤나 괴로운 일이다.) 분리불안이 심한 우리 강아지를 두고 해외여행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물론 반려견 동반이 불가한 캠핑장도 많긴 하지만, 다른 이들과 내 반려견의 안전을 온전히 책임진다면 환영해주는 곳도 꽤 많다. 주어진 장소 대부분이 야외다 보니 반려견이 환영받지 못할 이유도 거의 없다. 강아지도 잠들기 직전까지 바깥의 냄새와 풍경, 소리를 탐험할 수 있고 주인이 의자에서 엉덩이만 뗐다 하면 산책이 몇 번이고 가능하니 낯선 실내환경에서 잘 때보다 훨씬 재밌어한다.


마지막으로, 캠핑은 내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큰 틀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일에 종사하다 보니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다 못해 유튜브를 봐도 조금 피로할 때가 있다. 세상이 제공하는 정보와 오락거리가 모두 일을 연상시키고 피로로 느껴지는 요즘, 캠핑은 그냥 앉아서 삼시세끼나 먹으면 되는 단순한 생활의 유혹이다. 캠핑이라는 취미를 준비하면서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고, 일하는 시간의 의미를 다소나마 회복했다. 낯선 자연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익숙한 내 물건으로 공간을 채우고 가만히 앉아 있다 오면 된다니. 그보다 더 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도피처가 있을까.


이 글의 초고는 캠핑을 처음 시작하던 2022년에 작성해두었는데, 다시 브런치에 기록들을 남겨볼까 하고 들어와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은 2025년이다. 노는 것도 늘 경쟁적인 한국에서 연휴만 생겼다 하면 어김없이 캠핑 예약 어플을 켜는 습관이 생긴 지 어느덧 3년이 훌쩍 넘었다.


사람을 사귈 때도, 취미를 시작할 때도 처음에는 좋아하는 이유들을 찾게 된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유난스럽게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를 꼽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생략되고 그냥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든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런 기록들은 소중하다. 혹시 내가 뭘 또 열렬히 좋아하다가 슬며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어버렸는지를 돌아보고 되새기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