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2023
하루종일 동분서주했는데 다음 날 아침 출근해보니 또다시 제대로 되어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최대한 정리해보겠다고 애쓰고 일단락이 된 것 같아 집에 잠깐(?) 다녀왔는데, 왜 다시 어질러져 있지? 회사 일이 꼭 청소 같다는 생각을 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가 떠올랐다.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인 우리의 주인공은 매일 아침 알람도 없이 늘 비슷한 시간쯤 거리를 쓰는 빗자루 소리를 듣고 눈을 뜬다. 캔커피 한 잔을 뽑고, 올드팝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틀고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일터로 향한다. 규칙적으로 사는 데는 나도 꽤 자신이 있는 편인데, 출근길에 미소까지 띠다니 보통 고수가 아니다. 청소부는 종일 도쿄 공공화장실을 쓸고 닦고 광을 낸다. 말은 거의 하지 않고, 그렇지만 거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꾸준히 은은하고도 밝은 에너지를 뿜어 내며 꼼꼼하게 청소를 한다. 퇴근하면 늘 같은 루틴으로 목욕을 하고, 밥을 사 먹고, 집에 와서 약한 불빛 아래 책을 몇 장 읽다 잠에 든다.
청소부의 하루는 거의 비슷하게 몇 일쯤 반복되다가 이내 작은 균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청소부의 득도한 듯 보였던 질서정연한 세계 뒤에 사실 나름대로 아픈 사연이 있음이 얼핏 암시된다. 출근길에 미소를 지을 만큼 평온해보였던 청소부의 얼굴은 잠시 과거를 불러내는 바람들에 그늘이 지고, 비슷한 시기 일어난 다른 작은 일들이 겹겹이 쌓여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과거로부터, 또는 외부의 나를 흔들 만한 어떠한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 나만의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처럼 보이는 예의 웃음을 지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청소부 아저씨의 아픈 과거가 무엇인지 영화에서 다루지는 않으나, 삶의 균열은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나 아픈 과거의 회상처럼 극적인 이유 없이도 쉽게 생겨난다. 일례로 초과근무가 잦은 기간에 나의 몸과 마음은 어김없이 살짝 삐그덕댄다. 한국인 대부분이 그러하듯 어떻게든 그 시간을 버티고 통과해내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반드시 최대한 빨리 내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리라 이를 갈며 업무에 매달린다. 나에게는 내일 다시 출근하기 위한 최소한의 회복 루틴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이를 침범당하면 당장 하루는 괜찮더라도 피로감이 구르는 눈덩이마냥 불어나기 때문에 이 시기가 너무 길어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일정 시간만 주어지면 반드시 회복하고 일상의 평화로 돌아가는 방법을 어느 정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0여년 회사 생활을 하며 내게 잘 맞는 방식을 나름대로 터득해 온 것이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혹은 미래의 나에게조차도) 계속 먹히는 방법이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 회복 루틴에 크게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회사 일만 청소와 닮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청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매일의 경험에서 조금씩 쌓이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은 당연한 것이고, 내일도 오늘만큼 살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 쌓인 먼지를 털어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매일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목적인 티가 나지 않는 노동이라서 청소가 허무하다고는 해도, 한편으로는 전혀 하지 않고는 오래 버틸 수 없는 게 청소이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 <퍼펙트 데이즈>를 그대로 받아들여 평화롭고 규칙적인 청소부의 삶은 나름대로 완벽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론 캔커피와 책과 올드팝, 일정한 퇴근시간 후의 목욕과 늘 같은 식사와 같이 자잘하지만 많은 요소가 모여야 겨우 지켜내는 일상의 평화란 참 연약한 것이구나 싶은 아슬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삶에서 순간순간 엿보이는 평화가 '억텐'인지, 진짜인지 구분해내는 데 큰 의미가 있을까? 가만두면 생각의 먼지와 피로감이 풀풀 내려앉는 날들에 평화란 어차피 한번 얻어내면 내 곁에 쭉 머무르는 소유물이 아니라, 반복해서 그 상태를 향해 나아가야만 잠시 만끽할 수 있는 일시적 경험이 아닌가 싶다. 어제는 잠시 무너졌더라도 오늘 아침엔 눈물을 닦고 새소리를 들으며 늘 마시던 캔커피로 다시 오늘치의 평화를 찾아가는 청소부의 나날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