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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Mar 25. 2021

어른이 사람을 사귀는 방식

우리 회사에서만 만나요

우린 어떤 사이일까? 너와 난 같은 곳에서 일하고, 늘 점심을 함께 먹지. 내가 이 식당은 이제 질린다고 말하면, 너는 곧잘 저 멀리까지 운전해서 새로운 맛집에 데려가 줬잖아? 맛있는 점심 덕에 남은 오후 업무 내내 행복했던 적이 많아서 고마웠어.


우리가 함께 일할 때면 한사람인 것처럼 잘 맞았고, 덕분에 편했어. 너는 눈빛만 보고도 내 생각을 훤히 알더라. 주위 동료들이 종종 우리 관계를 의심한 탓에,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해명하고 다니느라 난처했던 적도 있지. 하지만 우리가 회사 밖에선 한 번도 만난 적 없단 걸 아무도 모를 거야. 일할 때는 능력뿐 아니라 성격도 잘 맞는 영혼의 파트너지만, 사적인 관계의 원 안에는 속하지 않는 사람. 너에게 나는 딱 그 정도인 거지.


어쩌면, 우리 사이에 놓인 저 선 하나만 넘으면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단 걸 너와 나 모두 알고 있지. 하지만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그 선을 절대 넘지 않아. 너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 있고, 나도 애인이 있으니까.


그런 너를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하지? 내 결혼식에 널 초대하면 넌 축의금을 얼마나 낼까? 네 생일날 기프티콘을 보내면 부담스러워하려나? 밤중에 풀리지 않는 고민이 생기면 술 한잔하자며 연락해봐도 괜찮을까? 한밤의 너는 낮의 너와 같은 사람일까? 이런 걸 궁금해하는 게 선을 넘는 건가? 우린 어디까지 친해질 수 있는 거지?


머리가 아파. 익숙지 않아. 어렸을 땐 이렇게 선이 정해진 얄팍한 관계를 맺어본 적 없었어. 서로가 잘 맞으면 걱정 없이 자신을 더 보여주고, 목적 없이도 뜨겁게 가까워지고 싶어. 나를 다 보여주기 전부터 이미 선이 그어져 있는, 매번 잘 맞아도 한 번 마음 안 내키면 금세 차갑게 멀어지는 이 사이가 두려워. 관계에서 사적인 감정과 시간을 다 빼고 나면 뭐가 남지? 이런 미지근한 게 어른이 사람을 사귀는 방식이라면, 나는 어른이 되기 싫어.


외로워. 정 잘 주는 것만큼이나 정 주지 않기도 어렵구나. 너와 얘기하고 싶어. 너를 내 집에 초대해서 내가 이런 사람이란 걸 알려주고 싶어. 아마 너는 회사 밖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를 거야. 네 곁의 나는 회사 속 가면 쓴 나일 뿐이니? 가면을 쓰고 너와 편해지기보다 맨몸으로 너와 아파지고 싶어. 내가 지녀온 친구의 개념을 고치지 않고도, 너도 언젠가 내 온전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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