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가 애인으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했다. 상황은 이러했다. 그날 낮부터 일터에서 친구를 예민하게 만든 일이 연달아 있었다. 저녁엔 애인과의 데이트 약속을 조율하다 친구의 기분이 조금 새어나갔다. 마침 친구는 생리 기간이었고, 애인은 그걸 당연히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생리 얘기가 나왔단다. 그 후론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겪거나 들어봤을 추잡한 얘기가 오갔다. 하루를 마치고 친구는 내 방에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엉엉 울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술잔을 비우며 새벽까지 애인의 못된 언행에 대해, 그리고 생리와 생리 전 증후군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애인의 아픈 말 한 마디에 친구는 밤새 소주에 빨대를 꽂아 마셨다.
사실 내 친구는 생리통이 심하지 않다. 스스로가 생리통보다는 오히려 호르몬의 작용으로 기분이 오르내리는 생리 전 증후군이 좀 심하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서 늘 자신을 자책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며 지낸다. 그런 친구와 연애를 4년 넘게 한 사람이, 생리통과 생리 전 증후군도 구분 못 하고 심지어 애인에게 생리를 언급하며 탓을 돌릴 생각을 하다니. 내 친구는 어제 아플 시기였지, 기분이 오르내릴 시기가 절대 아니었다.
오늘 애인의 기분이나 말투가 평소와 다르다면 아마도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상황이나 사건 등 사람의 기분을 흐트리는 일은 많다. 그런 일을 다 제쳐두고, 정말 호르몬의 놀음에 애인의 기분이 출렁이고 있더라도, 그는 벌써 자신이 그렇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굳이 가져도 되지 않는 미안함을 느끼며 고개 숙인 채 지낸다.
본인도 어쩔 수 없는 호르몬에 의한 현상을 문제 삼고 싶을까.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싶다. ‘너 생리하니?’ 따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애인의 이 힘듦을 자신과 철저히 관계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도, 미래를 그리는 일도, 즐겁고 슬픈 경험도 함께하는데 생리 전 증후군만 왜 혼자의 몫인가. 여성이라는 존재가 일생동안 호르몬에 기분을 헤집히는 힘듦까지 참아내며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희생했기에, 당신도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얼마 전에 틱장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그 사람들은, 미안해할 필요가 없고 원해서 한 일이 아니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끝없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고개 숙였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눈물이 많이 났다. 그리고 어제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든 여성이 한 달에 며칠은 그런 기분으로, 이유 없이 세상에 죄지은 심정으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슬펐다.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일로 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는 그들을 보며 눈물이 많이 났다. (사진: KBS 다큐멘터리)
그리고, 이러한 얘기를 친구와 나눌 때마다 내가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친구들과 남자의 성욕이나 남자친구의 언행, 여성 인권이나 가치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가 남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들이 살며 입어온 피해에 나도 모른 채 일조한 기분. 마치 명문대 운동권, 기초생활수급자 태극기 부대, 남자 페미니스트같이 뭔가 모순적인 사람이 된듯한 참담함.
분명 나도 간접적인 경험과 그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을 바탕으로 내가 속하지 못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을 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힘들고 벼랑 끝에 몰려 마음의 문을 어쩔 수 없이 닫을 때면, 내가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거나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내 친구들에게 내가 끝까지 같은 편임을 느낄 수 있는 신뢰 관계를 형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차차 배워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