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누구에게나 힘들단 걸 경험을 통해 알았다. 행복만 가득해 보이는 그에게도 사는 일은 고된 것이고, 가끔은 그 고됨이 견디기 어려워 사람을 찾아야 한단 걸 여러 차례 겪었다. 나를 찾아와 세상으로부터 꼭꼭 숨겨온 힘듦과 아픔을 한순간 내보이고 엉엉 울며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용기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를 믿고 내 앞에서 무너져내린 모든 이들이 너무나 고마웠고, 그들의 무너짐을 사랑했다.⠀
나 역시도 몇몇 사람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그들은 나를 사랑했을까. 다행히도 나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들 각각이 나와 우리가 되었을 잠깐새, 우리는 서로의 무너지는 모습을 사랑했다. 서로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무너지는 사람이란 점을 사랑했다. 한 번 크게 쏟아내고 나면 다시 금세 쌓아 올리는, 그 마법 같은 모습에 가슴 뛰었다. 그의 쌓아 올림에 내가 도움 될 수 있단 사실이 벅찼고, 혼자서 나를 되찾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곁에 누군가 있다는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하루를 마치고 방에 되돌아와 함께 마무리하는 서로의 시간은, 무너지고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울고, 마시고, 토닥이고, 토해내는 시간이 쌓여서 사랑을 두텁게 했다. 상대방만이 아는 내 약점이, 그 포근한 안정감이 내가 알던 사랑의 본질이었다. 서로의 결핍을 내보이고 그 점을 아름다워하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결핍이 없어 보이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세상에 아파하는 대신 세상을 물들이고 다녔다. 그의 생각과 몸짓에 주변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의 망막과 손끝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투명한 듯했다. 그 맑음에 반사된 빛은 그의 톤으로 물들어서, 그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 것 같았고 그가 찡그리면 세상이 시들해 보였다. 놀라웠다. 내가 알던 아름다움이 아니어서, 나는 그를 경이로운 사람이라 소개하곤 했다.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나는 그 경이로움을 품어내는 방법을 몰랐다. 반짝이는 거라면 일단 손에 꼭 쥐고 보는 어린 아이처럼, 그를 내 단짝으로 만들고 싶어 욕심을 부렸다.⠀
어제인가. 한 친구가 나를 경이로운 사람이라 불러주었다. 내 부족한 점을 미처 보지 못했으면서, 참 못난 호칭이라 느꼈다. 그 친구도 나도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젠 다른 감촉으로 다가오는 ‘경이로움’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돌돌 굴려보았다. 그 이름 뒤에 얼토당토않게 숨겨두었던 사랑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웃음이 났다.
애초에 아름다움도 사랑도 여러 형태라고 누군가 일러줬다면, 우리들은 서로에게 더 나은 사람이었을지도.
이 글은 황예지 작가님의 책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의 문체를 닮도록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