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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ul 21. 2021

배달 앱 VIP의 아무 말 신세 한탄

이름하여 코로나 비만

자취를 다시 시작한 이래로 점점 살이 찌고 있어요.


물론 식재료를 1인분만 구매하는 게 어려워서, 한 번에 많이 요리하고 많이 먹는 습관이 든 것도 살이 찌는 원인이겠죠. 그러나 1인 가구가 살찌는 주된 원인은 아마 배달앱일 거예요. 터치 몇 번이면 온갖 고칼로리 야식이 방문 앞까지 배달되는데, 코로나라는 좋은 핑곗거리까지 생겼으니 안 먹고 배길 수 있을리가요.


배달앱 역시 주문 많이 해 줘서 고맙다고 히어로니 마스터니… 다양한 호칭으로 치켜세워주며, 더 자주 더 많이 배달음식을 먹게 부추겨요. 차 가격만 고려했다가 보험료와 유지비로 생활비가 거덜 나는 카푸어처럼, 요리해 먹으며 식비를 아낄 계산만 했다가 배달음식 지출 폭탄을 맞은 자취푸어가 되었어요. 남은 건 21일 만에 16번 배달을 시켜 먹으며 받은 VIP 칭호와, 늘어난 살 뿐이죠. 배달원분들의 노고가 좀 더 고액으로 책정되어 배달료가 만 원 정도로 비싸진다면 우리나라의 비혼·저출산·청년비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상상해봤어요.




아무튼 그래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저탄수 다이어트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 이유는, 먹는 즐거움마저 누리지 않을  없기 때문이구요. 그래서 쌀과 혼술을 끊기로 했어요. 그제는 김치찌개, 어제는 낙지볶음을 해 먹었어요. 밥 대신 물을 1.5리터 정도 떠 놓고, 요리 서너 숟가락마다 물을 한 컵씩 마시면 배가 아주 불러요. 찌개용 고기나 낙지는 최소한으로 넣고, 채소는 살 안 찌니까 양파랑 파, 마늘을 도마 한가득 썰어 넣었어요. 고춧가루랑 파를 기름에 달달 볶아서 맛도 내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양파나 파, 마늘 다 식물의 저장기관 아닌가요? 동물로 따지면 삼겹살을 도마 가득 성둥성둥 썰어서 기름에 볶아 먹은 셈이네요. 볶으면 다 달곰해지는 게 혹시 무늬만 채소고 사실 고열량이 아닐까 걱정돼요. 그래도 맛있었으니 살은 안 찔 거라고, 물 많이 마셨으니 건강해질 거라고 믿으려구요.




요리하는 순간은 정말 인생의 황홀경이에요. 재료마다 걸맞는 손질법으로 정갈하게 다듬어서 도마 위에 정렬해놓은 그 광경. 잘 달궈진 팬 위에 재료가 쏟아질 때 나는 가슴 뛰는 소리. 하얗던 양파가 점차 투명해지다가 또 금세 노릇해지는 그 신비함. 양파가 적절히 익을 때를 정확히 잡아내서 다른 재료를 넣고 휘저을 때의 짜릿함. 잘 어우러진 재료를 손목 스냅을 이용해 휙휙 뒤섞을 때의 묵직한 느낌. 새하얀 접시에 완성된 요리를 보기 좋게 담아냈을 때의 그 단아함. 아아 내 연구는 꼭 망했으면 좋겠어요. 후련히 눈물 흘리며 어서 학계를 떠나 요리사로 다시 태어날래요.


오늘은 닭다리 조림을 하고 있어요. 요리는 다 끝났고 약한 불에 뭉근히 조리는 동안 글을 쓰고 있구요. 닭다리는 1킬로 단위로 팔아서, 오늘은 닭다리를 7개나 먹을 것 같아요. 그래도 닭다리는 단백질이니까 살은 안 찌겠죠? 양파 파 마늘도 이젠 못 믿겠어서 조금씩만 넣고, 대신 감자랑 당근을 좀 깎아 넣었어요. 얘들은 동물로 치면 비곗살 정도 되겠지만, 이틀째 쌀은 입도 안 댔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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