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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Mar 18. 2021

빗속에서 춤추듯 사는 삶

마음의 소낙비를 쫓아내는 방법

“춤추는 사람을 동경했어요. 그냥, 춤을 출 수 있다는 게 그저 멋있고 또 부럽고...


“가끔은 내 가슴 속 감정이 너무 버거울 때가 있어요. 어떤 감정들은 내가 원 않아도 나를 찾아와서, 마음을 사납게 헤집고는 홀연히 사라지더라구요. 뭐라 불러야 할까... 소낙비? 그래요, 그 감정의 소나기는 미리 눈치챌 수도 없고, 또 아주 금방 지나가요. 그런데 대비도 못 한 채로 그렇게 소나기에 축축이 젖은 마음은 있잖아요, 몇 날 며칠이나 햇볕을 쬐여도 잘 안 마르더라구요. 너무 불공평하죠? 항상 우산을 쓰고 다닐 수도 없잖아요, 나는 하늘 보는 걸 참 좋아하는데.”


가슴 속에 몇십 분이나 몰아치는 소낙비를 맞다가, 며칠을 물기에 젖어 가라앉은 채로 지내고. 그렇게 빗속에서 사는 반복돼 그 삶에 무뎌지면, 나처럼 습기 찬 사람이 되나봐요. 나는 습기가 너무 싫어요. 집에서 잘 때도 화장실 환풍기는 꼭 켜놔요. 습기 빠지라고. 아, 이건 딴 얘기네. 아무튼, 나를 습하게 만드는 그 원인 모를 감정들 있잖아요, 그것들을 털어내려고 내 열정을 쏟 수 있는  이것저것 했죠. 말 그대로 감정을 토해내려구요. 어릴 때는 노래방에서 매일을 살았고, 성인이 돼서는 술을 좋아했던 것도 그 때문인가... 운전을 배워서 여행도 다니고, 미 삼아 요리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근데 뭘 해도 성에 차지 않더라구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 혼자 대학원에 남는데 친구들은 다 사회로 떠나가고 나니까, 방에 멍하니 누워있다 소낙비를 흠뻑 맞는 일이 잦았죠.”


“그러던 어느 날, 서너 해 전쯤인가. 그때도 방에서 요리하느라 창문을 열어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리더라구요. 한밤중에. 진짜 소나기 말이에요. 하필이면 그때 또 양파를 볶고 있었어가지구. 눈이 매워지고 눈물이 고여서, 미친 척 비를 맞으러 나갔어요. 집 앞이 천변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산책로를 잠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한참이나 달렸죠. 뛰다가 한 짝씩 슬리퍼가 벗겨져서 맨발이 되고 나니, 가슴이 홀가분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천변 어딘가의 잔디밭에 벌러덩 드러누웠어요. 기분 좋은 축축함이 목덜미에 넘실거렸죠. 나를 향해 떨어지는 빗발을 바라보고 있자니, 우주 속에 누워 별똥별 무리를 품에 안는 기분이었어요. 참, 미친놈 같죠? 그렇게 삼사 분 누워있었나, 순식간에 하늘이 개더라구요. 그때 문득, 나도 이 소나기처럼 살고 싶다, 세상에 휘몰아치다가, 또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젖은 땅에 그렇게 누워있으니까, 또 문득 내가 가엽더라구요. 그때 처음 마음먹은 것 같아요. 춤추는 삶을 살고 싶다고. 소낙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거나 비를 맞으며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빗속에서 빙글빙글 돌며 멋진 춤을 추는 사람이 돼야겠다구요. 찰리채플린처럼. 비록 사랑 노래를 부르며 추는 춤은 아닐지라도요.”


그래서 이젠 춤을 추게 됐냐구요? 에이, 생각처럼 쉽게 되나요 그게. 그래도 지금은 빗속에서 드러눕고 그러진 않아요. 그럴 용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 차라리 햇볕을 찾아다니게 됐죠. 하지만 여전히 춤추는 사람을 동경해요. 춤추듯 사는 삶을 동경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소낙비가 가슴에 몰려올 때면, 빙그르르 한 바퀴 춤사위 돌며 비켜낼 수 있는 삶이요.  비가 오면 내달리는 대신 춤춰보겠다며 어설프게 팔다리를 쭉쭉 뻗어대고 있을 내 곁에서, 그 못난 춤사위에 웃으면서도 함께 비를 맞으며 멋진 춤을 춰줄 존재를 꿈꾸는 걸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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