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때때로 나를 슬프게 한다. 거창한 여행일수록 그 일정 속에서 경험한 일의 대부분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아름다워서 그것을 꺼내 볼 때면 익숙한 매일을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게 한다. 여행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짐을 풀기 시작하면, 벌써 슬픔이 찾아온다. 그 슬픔의 구 할은 어제까지만 해도 일상이었던 자유와 행복이 어느새 애써 꺼내 보아야 하는 추억이 되어버렸기에 느껴지는 상실감일 것이다.
화려한 추억은 익숙한 일상을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게 한다.
여행 중에는 오감이 깨어난다. 많이 걸어 감각이 무뎌진 다리일지라도 돌부리를 밟으면 그 모양까지 신발 너머로 세세하게 느낄 수 있다.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고 한없이 지루해하지만, 정류장에 함께 서 있는 낯선이의 옅은 향수 향기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사소한 것도 더 생생하게 느껴지고, 이는 즐거움이 된다.
일상에서는 감각이 죽는다. 애초에 사람의 뇌는 그렇게- 새로운 것을 더 강하게 느끼고, 익숙한 것은 아예 느끼지 못하게- 설계되었다. 모기 한 마리의 날갯짓 소리에도 잠 못 이루지만, 철로 고가 밑 단칸방에서도 깊이 잠드는 것이 사람이다. 세상에는 오감을 자극하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지만, 본인에게 익숙한 일상의 것을 닦아내고 나면 남는 감각이 거의 없는 셈이다.
모기 한 마리의 날갯짓 소리에도 잠 못 이루지만, 철로 고가 밑 단칸방에서도 깊이 잠드는 것이 사람이다.
외부의 감각에 무뎌져 정신 쏟을 일이 많지 않을 정도로 일상이 익숙해지면, 여유가 생긴 뇌의 나머지 부분에는 내적인 감각들이 채워지게 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대단히 바쁘고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일상은 지루한 반복일 것이고, 머릿속 한 켠에는 ‘자신의 삶이 비루한 것이 아닐까’라는 내적 고민이 들어차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다 보면 머릿속에 원인 모를 패배감이나 우울감이 똬리를 트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뇌의 생리일 것이다.
그래서 여행의 본질은 머릿속에 새로운 감각과 정보들을 가득 채워 내적 고민이 찾아올 자리를 남겨두지 않는 일이리라. 익숙하지 않은 감각의 홍수에 본인을 몰아넣고,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보에 뇌를 절여 다른 생각이 들어갈 틈을 두지 않는 것이다. 뇌에 새로운 정보가 가득 들어차는 감각은 자유나 행복이라는 형태로 해석된다. 바람 쐼과 같이 가벼운 일탈에도 늘 마음을 편히 하는 효과가 있는 이유도 새로운 정보가 죽어있던 뇌의 감각을 깨워 주기 때문이다.
집 근처의 천변을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뇌의 감각을 깨울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방 안에 홀로 앉아서도 간단히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새로운 정보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감각이 넘실대는 미지의 세상에 발 디디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겠으나, 익숙해져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일 테다. 일상에서 새로움을 찾는 방법은 결국 마음 먹기에 달렸다.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거나, 익숙하던 것이 사라진다면 어떨지 상상해본다거나. 늘 경험하던 주변의 것에 가치와 고마움의 감각을 덧입히면, 일상의 출근길도 매번 다른 여행길이 될 수 있다.
매일 아침의 하늘 색이 어제와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하루가 어제와 많이 다르고 또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노력하여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매일을 여행하며 즐기는 법을 터득한 것일 테다. 그 방법을 아는 것은 일상의 일이라도 늘 어제와 다른 오늘의 것이라는 생각, 그 작은 마음가짐의 변화에서 출발한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