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기이택생 Mar 04. 2021

스뎅 팬과 트렌드 워칭

좋아하는 일이 트렌드가 되었을 때 나를 꽃피우면 그만이다

얼마 전 큰돈을 써서 스테인리스 팬을 하나 장만했다. 방에 이미 코팅 팬이 두 개나 있지만, 유튜브에 스테인리스 팬 찬양 영상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오다 보니 버틸 수 없었다. 실제로 새 팬에 요리한 스테이크나 파스타는 코팅 팬 요리보다 훨씬 맛있었다. 크러스트도 더 쉽게 생기고 소스에 불맛도 많이 입혀졌다.


그런데 부모님 세대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코팅 팬을 두고 스뎅 팬을 새로 장만한 내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당시에는 시골 집집마다 큼지막한 무쇠 팬이 있었고, 명절이면 그 쓰기 어려운 팬 탓에 음식을 잔뜩 눌려 붙이다가 시어머니의 꾸중을 듣는 게 명절 증후군의 1순위 원인이었다. 외국제 코팅 팬은 당연히 무쇠 팬이나 스뎅 팬보다 비쌌고, 이는 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달걀조차 비싸 후라이를 해 먹는 게 사치였던 당시에, 기름도 안 두른 팬에 달걀을 톡 깨어 손쉽게 익혀내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학창 시절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코팅 팬에 달걀 후라이를 해주면, 다들 가스렌지 앞에 모여 손뼉을 치며 구경했다고 한다.

코팅 팬으로 계란후라이만 만들어도 박수받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뀜에 따라 세상의 모습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 시기에 높게 평가받는 가치나 문화를 트렌드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트렌드의 형태로 끝없이 출렁인다. 신곡을 가장 처음 접할 방법이 LP 가게나 카세트테이프 판매점의 가판 스피커였던 당시에는, 가수들 누구나 고음을 내지르고 웅장한 악기들을 사용해 멀리서도 귀에 때려 박힐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도구가 이어폰의 형태로 이미 귀에 물리적으로 때려 박혀있는 지금은, 속삭이는 정도를 지나 어딘가 아픈 사람이 부르는 듯한 톤의 음악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트렌드 워칭이라는 말이 있다. 미래 예측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등장한, 트렌드를 전망하고 이목을 끌 가치를 선점하려는 여러 노력을 일컫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게 가당키나 한 얘기일까. 무쇠 팬이 인기몰이하는 건 삶의 질 향상과 스타 셰프의 등장 때문이고, 빌리아일리시가 인기몰이하는 건 이어폰과 통신기술의 발명 때문이고, 혹은 이것들이 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 트렌드의 발생 원인은 결과와 함께 나열해놓고도 인과관계를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계성을 트렌드 발생 이전에 예측하겠다니.


그래서 트렌드 워칭의 학문적인 접근이야 당연히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일상을 계획적으로 살아내며 세상의 변화를 매 순간 예측하고 미래를 정복하듯 살겠다는 생각은 너무 피곤한 가치관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두 가지는 세상의 변화에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과,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것. 삶이 흘러감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세상의 트렌드가 되는 때는 반드시 올 터이니, 그때 나를 마음껏 꽃피우면 그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에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