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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Mar 11. 2021

새벽에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

여유롭지만 한가하진 않은 새벽 편돌이 업무

밤 11시. 출근.


이전 시간대 알바생에게 근무를 이어받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걸레를 빨아 매장의 모든 매대를 닦는 것이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날파리들이 유독 냉장 선반에 많이 죽어있다. 형광등 불빛에 이끌려 선반에 날아 앉을 당시에도 그들은 그곳이 자신의 무덤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 3시.


대다수의 취객 손님들 사이에 간간이 귀갓길의 학생들이 가게를 찾는다. 그들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데, 세상의 모든 힘듦을 혼자서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야식거리나 카페인 음료를 구매하기 때문이다. 그를 보며 내 학부생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 나도 힘들었지. 이 친구도 열심히 사는구나.


아침 6시.


이른 아침이면 매번 같은 시간에 한 남자가 가게에 들른다. 이름과 회사명이 적힌 남색 조끼 왼쪽 가슴 주머니에는 면장갑과 볼펜 몇 자루가 꽂혀있다. 그는 늘 멍한 눈으로 커피 두 캔과 담배 한 갑을 구매하는데, 같은 브랜드지만 매번 다른 맛을 사 간다. 어제와 다른 맛으로 오늘을 시작하는 게 그의 삶에 유일한 낙일 터. 이른 아침부터 그는 이집 저집 방문하며 에어컨이나 컴퓨터 따위를 수리해줄 것이다.


아침 7시. 퇴근.


7시가 되면 다음 시간대 알바생이 근무를 이어받으러 온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그녀의 오늘 근무는 또 얼마나 힘들까 대신 속상해하며 서둘러 퇴근한다. 오늘은 잠을 거른 채 방에 들러 샤워만 마치고 연구실로 출근해야 하지만,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내가 늘 불쌍해하던, 꼬여버린 연구와 머리 아픈 논문 작성에 치인 평소의 나는 지난밤에 없었다. 다른 이들을 가엾이 여길 여유는 있지만 스스로를 비관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은 8시간. 나는 그 시간을 감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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