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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an 02. 2021

새벽에 덮밥이 요리하고픈 이유는

항정살 덮밥과 하루의 마침표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새벽에 요리하는 일이 잦아졌다. 꼭 뭔가를 먹어야 할 만큼 배가 고픈 것은 아닌데, 새벽마다 방 안을 맴도는 정적 속에서 멍하니 있다 보면 늘 요리가 하고 싶어진다.


새벽에 요리한 음식을 먹는 일이 많아지니 살이 오르는 것 같아, 관리도 할 겸 요리한 밤들을 다이어리에 기록해보았다. 일주일에 나흘, 한 달에 보름 남짓한 날들이 붉게 동그라미 쳐졌다.


자주 하는 요리는 항정살 덮밥. 항정살을 얇게 썰어 밑간하고 덮밥 팬에 노릇하게 굽다가 청주를 넣어 누린내를 날린다. 고기를 옮겨내고 기름을 한차례 닦아낸 뒤, 물, 간장, 맛술, 설탕과 가다랑어포를 비율에 맞춰 팬에 담는다. 양파를 썰어 팬에 넣고 양념에 졸이다 투명해지면 항정살을 얹고 달걀물을 풀어 두른다. 뚜껑을 덮고 불을 끈 채로 30초를 기다렸다가 흰 쌀밥 위에 얹으면 항정살 덮밥 완성.


간단해 보여도 찰나의 실수에 요리를 망쳐버리는 난관들이 많다. 손질한 재료의 크기부터 불의 세기, 양념의 배합이나 달걀을 두르는 손기술, 쌀밥의 양과 고기의 밑간 정도까지. 이 모든 난관을 능숙하게 넘어 완성된 덮밥이 만족스럽게 맛있을 때의 그 기분이란.


항정살 덮밥을 요리하는 십오 분 남짓은 어쩌면 하루의 축소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대되고 기쁜 마음으로 시작해서 일과를 열심히 준비하고 몇 차례 난관을 넘어내면, 그 맛을 음미하고 되짚어보며 마무리할 수 있는. 두 요리의 구조가 똑같지만 덮밥을 요리하는 것이 하루를 요리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이유는, 그저 요리 시간이 짧아진 만큼 더 쉽게 익숙해지고 보다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인지도.


그러니까 새벽녘에 갑자기 항정살 덮밥을 만들고 싶어진 이유는, 그날의 하루가 내 맘처럼 흘러가지 못했다는 뜻이겠으며, 그래서 대신의 무언가라도 마음껏 리해 잘못 찍힌 하루의 마침표를 지워내야 비로소 잠들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벽에 만들던 항정살 덮밥을 망치고, 밤을 멍하니 지새운 채 다음 날 출근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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