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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Dec 29. 2020

연말에는 함께 버터라이스를

연말을 소중히 뜸 들여 새해에 고슬고슬 맛보아요

여러분은 ‘버터라이스’라는 음식을 아시나요?


이름 그대로 버터에 밥. 만드는 법도 참 간단해요. 고슬하게 갓 지은 흰 쌀밥을 주걱으로 토닥여 밥그릇에 봉긋하게 옮겨 담아요. 그 가운데를 살살 파서, 버터 한 조각을 톡 넣고 다시 밥알을 덮구요. 눈을 감고 30초, 밥의 온기에 버터가 사르르 녹을 때까지 잠시 뜸을 들이는거죠. 그리곤 간장을 방울방울 떨어뜨리고, 밥알이 다치지 않게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호로록 먹으면 돼요.


저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서 버터라이스가 소개된 에피소드를 보고 이 음식을 처음 알게 됐어요. 드라마에서 버터라이스는 옛 추억이 포근히 담긴 소중한 음식으로 묘사돼요. 값비싸고 맛난 요리를 매일 맛보면서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 유명 요리평론가가, 우연히 만난 고향 선배와 함께 수수한 버터라이스를 맛보며 두런두런 옛날얘기를 나누는 내용이죠.



저도 가끔 별미 삼아 버터라이스를 해 먹어요. 이 단출한 음식을 먹을 때면, 여기에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건 없는데도 가슴이 포근해져요. 고급스러운 기술이나 값비싼 재료 없이도 정갈한 진심과 차분한 기다림이 때론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구나, 버터라이스를 먹으며 종종 생각해요.


우리 모두 올해 참 힘들었지요. 저 역시도 이번 해에 지워버리고픈 기억이 많아요. 더구나 올해를 완전히 집어삼킨 코로나는 우리의 연말 모임마저 앗아가 버렸죠. 그치만 다행인 건, 덕분에 모두가 올해보다 나은 내년을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잖아요? 이번 연말에 화려한 파티는 없을지 몰라요. 그래도 서로를 보고파하는 마음은 더 깊어졌을 테니, 새해에 다시 만난 우리는 소박한 모임일지라도 고슬고슬 뜸 든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돼요. 버터라이스가 맛있는 이유는 버터와 간장 때문이 아니라, 쌀밥의 흰 온기를 천천히 뜸 들여 맛보기 때문인 것처럼요.



올해의 마지막 저무는 해를 보며, 갓 지은 밥으로 여러분과 버터라이스를 해 먹고 싶어요. 버터와 함께 올해의 안좋았던 기억들 모두 뜨거운 밥 저 깊숙이 묻어두었다가, 맛있게 녹아내리면 간장 두어 방울에 웃음 한 스푼 넣고 같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갓 지은 쌀밥 같은 진심으로, 올해보다 나은 새해가 기다릴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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