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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an 14. 2021

지금 죽음을 구매하시겠어요?

튼튼하지만 허망한 인간의 삶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이 너무 튼튼한 동물이라 열심히 살 맛이 나질 않았다. 오늘 하루 정도야 맘 편히 놀아버려도 나에겐 수십 년의 삶이 더 남아있다는, 그런 안정감이 종종 나를 나태하게 했다. 만일 인간이 잠들 때마다 삼 할 정도의 확률로 다음 날 눈뜰 수 없는 운명의 동물이라면, 날마다 정말 열정적으로 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인간은 꽤 쉽게 죽는 동물이었다. 마음 좀 아프다고 죽고, 허망하게 사고를 당하고, 본인도 모르던 지병에 모가지를 잡혀 죽었다. 뭐 하며 지내는지 찾아 물어보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친구가 꽤 되었다. 또 인간은 수없이 다른 이와 얽혀가며 사는 동물이라, 그들에게 고마움을 다 전하기엔 수십 년의 삶도 짧아 보이곤 했다. 수십 년 중의 하루라도 생각보다 아까운 시간일 때가 많았다.


이젠 죽음이 인생이라는 대서사시의 마지막 장이 아니라, 언제든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라고 느낀다. 십만 원 정도면 누구든 쉽게 죽음을 살 수 있다. 질소탱크에 연결한 김장봉투를 몇 분만 머리에 쓰고 있으면 잠들듯이 삶을 떠날 수 있다. 언젠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질소탱크와 고무호스, 압력조정기와 김장봉투를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몇 번만 클릭하면 죽음이 배달된다. 그렇게 죽음이 쉽고 가깝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되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마치 중학교 수련회 때 관에 누워 눈물 쏙 빼는 가사 체험을 하고 나면,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열심히 살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했다.

죽음이 쉽고 가깝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되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요즘도 쇼핑몰에서 주기적으로 메일이 온다. ‘장바구니에 담은 미구매 품목이 있습니다. 지금 구매하시겠어요?’ 그 메일을 아침에 열어보며 오늘도 힘내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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