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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Feb 03. 2021

방에 누워서 온종일 틴더를 했다

참을 수 없는 소통과 관계의 가벼움

방에 누워서 온종일 틴더를 했다. 핸드폰 속에 사람이 끝없이 있었다. 고작 사진 몇 장과 간단한 정보를 가지고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서 손가락으로 상대방을 쓱쓱 넘겼다. 마치 모바일 게임을 하듯, 심지어 몇몇 사람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아도 스와이핑 하고 매칭되는 그 행위 자체가 즐거움을 줬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한두 시간 만에 대화할(게다가 외모까지 마음에 드는) 상대를 열댓 명 만들 수 있었다.


매칭 이후에도, 앱에서의 대화는 현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소통의 책임은 전혀 지지 않아도 되면서 그 단물만을 쏙쏙 빼먹었다. 재밌는 사람, 매너 좋은 사람, 야한 얘기를 하는 사람 등등... 이런 식으로 각자 특징을 잡아 놓고, 기분에 따라 내키는 사람을 골라 대화할 수 있었다. 이 사람과 대화가 하고픈지는 순전히 내 기분에 따라서만 판단하고, 상대방의 견해는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실컷 얘기하다가도 상대방의 말이 조금만 지루하거나 재미없으면, 아무 언질도 없이 대화를 씹어버려도 됐다. 심심할 땐 재미를 잔뜩 취하다가, 해야 할 일이나 더 재밌는 게 생기면 저기 집어던져 놓는 게임기 같은. 밥으로 먹긴 영양가 없지만 달고 맛있는 간식 같은 대화였다.

이 조그마한 앱 속에 사람이 끝없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벼운 취미생활을 하듯 서로 대화를 나눴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너무나 쉬웠다. 거리도 가까운데 저녁이나 먹을래요? 그거면 됐다. 별로인 사람이면 이번에 보고 말지 뭐. 두려운 것도 없었다. 그런데 온라인 속의 그 사람이 오프라인으로 걸어 나오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사람은 여러 모습이 모여 구성된 입체적인 존재라는 게 그이를 만나고 나니 느껴졌다. 내가 그들의 보고픈 모습만 보았듯, 그들 역시도 보여주고픈 모습만 보여주는 데에 너무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보여주지 않은 모습에는, 생각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나 행동도 섞여 있었다.


그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소통과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소통은 즐거움과 책임감이라는 두 개의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소통과 만남이라는 단어는 개념 자체로는 완벽히 즐겁게 느껴지나, 그 어떤 소통에도 책임은 따르기 마련이다. 그 책임감이란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와 소통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싶다면, 그 상대방이 동일한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때도 내가 기꺼이 소통의 상대가 되어주려는 마음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작은 대화라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소통만을 했다. 내가 보여준 마음만큼 상대방도 마음을 열길 기다리고, 그에 대한 고마움과 책임감을 느끼며 천천히 관계를 쌓아가는 게 대화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에 대한 알아감이나 관계의 진전 없이 갑작스레 찾아와, 즐거움을 취하다 사라지는 틴더 속 그들의 메시지 수신음은 언제부턴가 모기의 날갯짓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튼튼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삶, 기복 없는 심리상태, 그리고 높은 자존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사람은 보통 삶이 잘 굴러가고 있기에, 굳건하고 진중한 관계에 대한 목마름을 잘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까 틴더에서 온종일 스와이프를 하는 그 사람들은 세 요소 중 어딘가에 큰 구멍이 나 있거나, 아니면 상대방과의 이 관계를 스쳐 가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일 수밖에 없다. 구멍 난 사람도, 가벼운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들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올 때 이를 숨기고 반반한 사람인 척 하는 그들의 태도는 역겨웠다. 원나잇을 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 척 애써 포장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관계를 대하는 그들의 가벼운 태도와 내보이지 않은 이면에 역겨움을 느꼈다.  (Art: Chern Ling)


그럼 나는 틴더를 왜 한 걸까? 그냥 외로워서일 수도 있다. 진중한 소통과 관계 맺음에 최근 회의를 느낀 것일 수도 있고, 관계를 쌓아감에 있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다른 방식에 막연히 기대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코로나로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하게 된 불장난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 유행처럼 하기에 따라 한 호기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나도 틴더 속 그들과 똑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었건, 오늘 나는 사람에 좀 아팠나 보다. 그래서 잠시 모순적인 마음이 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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