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만나기 위해 대중교통에만 왕복 6시간을 써야 하는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나는 ‘우리의 만남이 투자 대비 효용을 충분히 내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네가 우리 동네에 산다면, 그 시간과 비용을 더 많은 추억을 쌓는 데 쓸 수 있을 텐데’. ‘우리의 막차 시간이 좀 더 늦었다면, 노트에 잔뜩 적어둔 예쁜 주점을 다니며 같이 한잔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이러한 생각의 씨앗은 우리가 따로 있을 때 내 머릿속을 잠식해서, ‘내가 평균적인 연애에 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도 되려 못한 연애 경험을 얻고 있는 게 아닐까?’라며 우리의 관계를 의심케 했다.
사랑의 투자 대비 효용을 고민하던 내게,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 없이 권태감이 찾아왔다. (사진: 영화 '그날의 분위기')
이러한 내 고민은 무엇으로부터 유래했을까? 피상적으로는 우리 사이의 물리적, 시간적거리가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조건에서도 많은 장거리 커플이 사랑을 무럭무럭 키워가고 있으니, 이는 본질적인 이유가 아닐 것. 나는 보다 바탕이 되는 내 고민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최근 든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토닥여봤고, 결과적으로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내가 오랜 시간 세상과 씨름하듯 살다 보니, 너무 차가운 계산기가 되었기 때문”. 이는 개인의 잘못된 연애관을 세상 탓으로 돌리는 소리처럼 들릴 터이니, 이제부터 나는 앞서 내린 내 결론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세인트앤드루스 경영대학의 필립 로스코 교수는 자신의 책 ‘차가운 계산기-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경제학에 대한 허구가 세상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드는지 설명했다. 비용 대비 최대 효용을 계산할 수 있게 하는 경제학은 쇼핑, 투자, 교육, 행정 등 그 외의 분야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세상을 분석적으로 파악하고 최대 효용을 판단할 수 있는 경제학은 우상시 되어, 경쟁 사회에서 이를 추종하는 수많은 ‘경제적 인간’을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점차 매 순간을 수치화하고, 그를 이해하기보다 고효율의 선택만을 추구하는 ‘차가운 계산기’가 되었다.
그러나 경제학의 본질은 가치를 매기기 모호한 요소들마저 근거가 불분명한 계산에 기초해 수치화하고 평가하는 것. 따라서 이를 규칙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관계나 사랑에 대입하는 순간, 그 대상을 고작 몇 가지 수치로 분해하여 격하시키고 만다. 결국 나는 세상을 열심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차가운 계산기이자 경제적 인간이 되었고, 이 태도가 사랑이라는 계산과 효용론이 작동할 수 없는 분야에까지 영향을 주어 지금의 잘못된 고민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은 아틀라스마냥 온 세계의 짐을 스스로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슬프게도 경제학의 어깨는 너무나 좁다"
그렇다면 연애에 있어 계산적인 접근은 어떠한 문제를 일으키는가? 연애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조건을 따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산기를 두드리는 건 여기까지. 상대방과 함께 사랑을 키워간 후에 계산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격적 존엄성을 무시하고 몰개성의 지표로 자신의 애인을 분해하는 행위이다.상대방을 지표화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나 기대, 안정감이나 인정 등 간과되는 점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간과는 하나밖에 없는 그를 세상의 흔한 존재로 착각하게 만든다. 또한 나 자신마저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아닌 합리적 행위자로 전락시켜, 사랑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관계의 피로감만을 남긴다. 사랑에는 즐거움이나 만족감 정도의 단기적 지표로는 채 담아낼 수 없는 요소가 늘 존재한다. 대체 불가한 내 사람의 존재, 그 존재가 내 삶에 주는 의미와 가치, 그로 인한 내 가치관과 삶의 태도 변화. 사랑을 이루는 모든 것은 자로 재어 기록할 수 없는 위대한 값어치이다.
그렇다면 나는 사랑에 투자와 효용의 잣대를 적용해왔던 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가? 우선 오랜 기간 고민하여 문제의 원인을 다각도로 파악하다 보니, 이러한 고민이나 권태감이 잘못된 감정이었다는 걸 이해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계산기로부터 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상을 지표화하지 않는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 늘 우리 곁에 있는, 지표화하기 어렵지만 소중한 것이 바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다. 파란 하늘에 걸린 흰 구름 조각이나 커피 한 잔의 향기에 미소 짓던 시절의 여유를 다시 되새겨보겠다. 내 세상을 되찾고 나면 상대방 역시 요소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하는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분석적 행위가 논리적 사회가 아닌 사랑의 영역에서는 그 본질을 헤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사랑과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찾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