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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타스 Dec 09. 2019

[공황장애] 연예인들만 걸리는 병 아니거든요.

그럼 내가 연예인 했게


익숙할수록 자주 쓰이는 말 있지 않은가. ‘죽음’이나 ‘암’과 같은.


‘아, 나 죽을 것 같아.’ ‘나 진짜 암 걸릴 거 같아.’ ‘저 인간 완전 발암이야. 항암제 없냐?ㅋㅋ’


죽음과 암이라는 단어가 참 쓰기 쉽지 않은, 그런 무게감 있는 단어인데도 자주 쓰이는 걸 보면서 든 생각은,  어쩌면 자신에게 아직 닥치지 않은 시련에 있어 사람들은 그다지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가 하는 그런 생각. 가족이 암에 걸린 사람들은 ‘나 암 걸릴 것 같아’라는 말을 잘 쓰지 않더라. 그게 내게 현실로 너무나 다가오니까. 마찬가지로 가족이 죽음을 앞두었다면 죽음이라는 단어에 무게가 실리리라.


많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임을, 혹은 공황장애였음을 밝히면서 전파를 타고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상당히 핫해진 지 오래다. 요새 인스타그램에 #공황장애 를 검색하면, 정말 공황장애로 어려운 환자들이 포스팅을 한 게 아니라 ‘#공황장애 올 것 같다 ㅋㅋㅋㅋㅋ’ 라는 포스팅이 한가득.


나 공황장애이니 그런 말 쓰지 말아 주세요, 라는 억지를 쓰려는 것이 아니다. 암, 죽음과 동일시할 만큼 심각한 병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대체 “연예인병”이라 불리는 공황장애는 대체 무엇이길래 현대 사회에 나타나 기승을 부리고 핫해졌는지, 우리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쓰고자 한다.



공황장애를 공황발작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정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공황발작이란 무엇일까.

 공황발작이라 함은, 내가 죽을 위기에 닥쳤을 때 오는 신체 증상과 정신적 반응이 발작적으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내가 정말 죽을 위기에 닥쳤을 때, 온몸이 내게 “도망쳐!”라고 보내는 신호이기 때문에 살아감에 있어 필수적이긴 하다. 위기 앞에서 불안감이나 아무 긴장이 없이 무던하다면, 내가 그 위기를 극복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현대사회에 정말로 죽을 위기에 닥칠 일이 얼마나 있다고. 매머드를 마주해야 했던 원시인들도 아니고. 그래서 죽을 위기에 봉착했을 때 발동이 걸린다는 사실이 참 고맙기는 하나, 지하철 문 앞에서 발동이 걸리면 어쩌란 건가 싶다. 지하철이 날 잡아 삼켜서 소화시키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 안에 좀비들이 가득 찬 것도 아니고. 참 난감하다.


객관적으로 공황발작이 오면 온 몸에 식은땀이 나고, 세상이 핑핑 도는 것처럼 어지럽고,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고, ‘죽을 듯한’ 공포감에 휩싸이게 된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고 쿵쿵거리는 정도의 불안감으로 ‘나 공황장애야?’라고 묻는 분들에겐 제발 안심하시라고 말씀을 드린다. 새벽에 갑자기 죽을 듯한 공포감을 이기지 못해 집을 뛰쳐나가 동네를 탑돌이 돌 듯 돌다, 근처 아무 교회나 찾아가 십자가에 대고 빌었던 경험이 있는 게 아니라면야. 건강한 거다.



그렇다면 공황장애와 공황발작은 어떻게 다른가.

공황장애는 크게 공황발작을 안고 있는 개념으로, ‘공황발작’이 한 회 일어난 이후 그 발작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불안을 키우게 되어 여러 회 추가적인 발작을 겪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한 회만 겪고도 계속 불안감에 떠는 사람도 있고, 주기적으로 겪는 사람,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발작을 겪는 사람 등 케이스는 다양하다). 죽기 직전의 불안을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겪으니, 신경계가 아픈 건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힘들다. 처음엔 발작만 오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따라오는 신체적, 정신적인 기타 증상들이 사람을 더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든다.


요지는 공황발작 = 공황장애(X)라는 것이다.


 공황발작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70억 인구 모두가 내 안에 공황이라는 시스템을 발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아마도..!). 하지만 발작을 겪고 나서 그냥 내가 좀 힘들었구나, 하고 넘어가면 장애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냥 공황발작을 한 번 겪었던 평범한 사람인 거다. 그런데 계속적으로 공황이 두렵고, 염려가 많고, 불안을 키우게 되면 또 발작이 오게 되고, 그 굴레에 갇히게 되면 결국 공황장애로 발전하게 된다. 장애라는 용어가 이 병에 붙는 이유는 내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증상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이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병은 아니다.



공황발작은 왜 나에게 왔나

사람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황발작은 아무렇게나 갑자기 랜덤처럼 온 것은 아니다. 행복하고 걱정 없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컥, 하고 공황발작이 오는 것이 아니기에 본인의 평소 습관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과민했는지, 작은 일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는지, 건강 염려증이 있는지, 매사 부정적인지 또는 생각의 흐름이 늘 파국으로 치닫는지 말이다. 필자의 경우는 타고나기를 예민했고, 예민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며, 인정받지 못해 늘 성공가도를 달리기 위해 애썼고,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적 성격에다, 사소한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다. 공황의 싹이 자라기에 너무나 완벽한 토양이지 않은가.


정신과 상담을 받기 전 일련의 사진들을 보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어떤 사진을 보여줘도 내가 지어낸 결말은 죄다 치정이거나 파국이거나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기억이 난다(아무래도 내가 아프다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하는 검사이니, 의사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해줘야겠다는 생각도 한 몫하긴 했지만). 무슨 일을 하기만 하면 부정적인 결과부터 생각하다니. 너무 스스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데도 그걸 자각하지 못했다니. 내가 어렸기 때문일까(그때의 나이는 22살에 불과하긴 했다). 생각의 흐름을 간파하고, 관찰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일찍이 생각을 관觀하고 살지는 않지 않나? 조금 가혹했다는 생각이 든다(열 받네). 어쨌든 이런 나에게 공황발작은 왔고, 너무나 당연하게 장애로 발전했고, 그렇게 7년이 지났다.



공황장애 이후의 삶

행복하세요, 자신을 사랑하세요, 긍정적인 생각만 하세요. 이런 말을 나는 정말로 싫어했다. 싫어하는 걸 넘어 극혐 했다. 어쩌면 나에게 “너는 어쩜 그렇게 애가 쇠약하고 부정적이니? 너 같은 애들끼리 다니면 그늘로만 다니겠다.”라고 말한, 내게 뼈에 새길 상처를 많이 준 동기가 긍정 예찬론자여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추후 내가 적을 ‘내가 공황장애 때 들었던 말 모음집’에 자주 등장하게 될 사람이다). 그녀에겐 늘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꽃밭이고, 행복했다. 왜 그게 가능했는지는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나는 그녀가 너무 싫었다. 아! 후련해.


공황발작이 있고 나서 내 삶이 아주 많이 변했다. 사실 이런 아름다운 해피엔딩식 오그라드는 글은 싫지만, 결국 그 해피니스가 날 살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하지만 삶을 늘 긍정으로만 채울 수는 없다. 여전히 그녀에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흥). 나는 살기 위해 매사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마치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머리에 두른 테처럼, 공황발작이 나를 조여 대기 시작했으니까. 참 재밌는 병이었다. 내가 불안해하거나, 염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난 손오공이 되어 발작에 조이게 되었다. 그래, 알겠어. 염려하지 않을게. 긍정적으로 살게. 나 자신을 사랑할게.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힐링 서적들에 나오는 말들을 따라 하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그냥 주문 같은 거였다. 진심으로 말하지 않아서 그런가, 쉽게 내 머리에 테는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만한 놈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주문처럼 읊던 말이 진심이 되고, 그 진심이 내게 당연한 생활이 되었을 때. 테는 빠져나갔다. 그렇게나 가학적으로 날 가르치지 않으면 내가 변하기 어려워서였을까. 무슨 위플래시도 아니고. 아이고 힘들어.


나에게 공황발작의 의미

공황발작의 개념이야 의학적으로 탕탕탕, 정해진 것이지만, 그 의미를 어떻게 갖다 붙이느냐는 내 몫이다. 웃기지만 나는 이 경험을 ‘선물’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길거리를 가다가 토하고, 음식 한 입도 못 먹고 뛰쳐나오고, 지하철에서 수십 번 뛰어내리고, 비행기는 커녕 차도 못 타는. 그런 심신 미약 상태의 나를 두고 사람들이 얼마나 칼 같은 말을 했는지도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기억한다. 이런 경험이 선물이라고? 일단 나는 결핍이 있고 고난이 있어야 사람이 성장한다는 주의가 되어, 이러한 경험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사이코 상사가 나를 쓸데없이 갈굴 때마다 도 삶에 감사해한다(좀 변태스럽다). 실제로 나는 성장했고, 더는 예전과 같지 않다. 지하철을 타게 되었고, 500명 넘는 청중 앞에 서서 발표를 하게 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중심이 아니다. 그건 덤으로 오는 거다. 중심은 내가 염려를 멈출 줄 알게 되었고, 멍을 때릴 줄 알게 되었고(이거 정말 어려운 거다), 남을 이해할 줄 알게 되었고, 화를 참을 줄 알게 되었고, 나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고, 등등. 그런 내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선 뭐 선물이라고 해도 크게 과언이라고 볼 건 아닌 것 같다.


공황발작이 오고 나서, 내가 주문처럼 외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한 것들이다.

- 타인의 내면에도 훌륭한 교사가 있음을, 그 안에 나와 다른 우주가 있음을 존중하는 것.

- 나 자신은 우주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이니 자의식 과잉으로 살지는 않되, 그래도 이 몸 안에 태어났으니 세상 가장 귀하게는 여겨줄 것.

- 어차피 모든 것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쓸데없는 걱정으로 하루를 채우지 않을 것.

- 걱정이 아닌, 발전적인 고민을 할 것.

- 타인의 말이 아닌 내 안의 말을 따를 것. 내 쪼대로 할 것(우왕좌왕 갈팡질팡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 타인의 결핍을 나의 우월의 증거로 삼는 것은, 모순되게도 나의 결핍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것.


그 밖에도 공황은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책에서만 보고 ‘아’ 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로 느껴서 뼈에 새긴 말들.


마치며

브런치에 작가 승인이 나고 나서 처음으로 좀 정보성이 있는(?) 긴 글을 쓰게 되었다. 아직 병아리 작가이지만 많은 분들께 이 글이 닿았으면 한다(브런치 관리자님 도와주세요..!). 증상, 이겨낸 방법, 내가 지인들에게 들었던 말들, 약에 대한 이야기, 공황장애 지인 및 가족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세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적어나가려 한다.


공황장애가 있는 분들께는 그냥, 힘내라, 고 하고 싶다. 지금 죽겠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넘길 일이냐고? 비현실감, 우울증, 어지럼증, 헛구역질, 위장장애, 강박증 등. 이름만 대 보시라. 나는 공황장애에 딸려오는 거의 모든 부차적 증상들을 겪었고, 미치고 돌아가시지 않은 것에, 그리고 삶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스스로 대견하다. 약간 증상 부심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이러다 또 공황 온다). 힘을 내야 한다. 힘이 나지 않아도 기어 다니면서 밥을 한 술 떠야 하고, 기어서 슈퍼라도, 아니 엘리베이터까지라도 나가보아야 하고, 화장실로 기어가서 샤워를 하고 꼼꼼하게 머리를 감아주어야 한다. 내 삶이다. 머리만 감아도 기분이 다르다. 고작 머리 감았다고 칭찬받을 7살이 아니지만, 마구마구 칭찬하자. 나에게 좀 관대하자. 난 아프다는 걸 인정하자. 기분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고, 스스로에 대한 나의 태도도,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공황장애가 아닌 분들도 마찬가지. 거울에 대고 뽀뽀를 해도 좋다. 발바닥을 들고 귀에 대서 ‘여보세요?’ 하고 미친 짓을 하고 깔깔깔 웃어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싶은 거. 여건이 되는 대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부 했으면 좋겠다. 인생은 짧고,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는 것은 클리셰다.


모두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공황장애툰을 연재합니다(깨알 홍보) ——> http://instagram.com/record_of_panic_dis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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