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게 뭔지 도통 모르겠다.
블랙아웃이라는 말은 숱하게 들어본 것 같은데.
눈 앞이 새하얘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도 스크립트를 달달 외운 덕에 입에선 술술 말이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참 이상했다.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심장이 너무 심하게 뛰고 불안이 멈추질 않아.
누군가 그 공포를 표현하라고 하면, 누가 내 옆구리에 칼을 대고 있는 것만 같은 불안감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게 내 옆에 칼을 댄 채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 감사합니다.”
짝짝짝.
수고했어요, 학생.
네, 저 수고했죠. 덕분에.
조소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건 뭐였을까, 대체.
발표를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발표 중간에 잠깐 앞이 보였던 것 같긴 한데.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보진 않았던 것 같고. 내가 긴장을 많이 했던 탓이겠지.
“야, 너 발표 잘만 하던데 뭘 떨린다고 어버버 거렸냐? 숨 안 쉬어진다고 막~ 헉헉 거리고~ 하하하.”
옆에 앉은 동기 오빠가 날 따라 하며 비웃는다.
기분이 더럽지만 애써 웃으며 그랬네, 내가 왜 그랬지, 하고 웃었다.
나 또한 이게 뭔지 모르고 그냥, 좀 많이 긴장한 탓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다 지나가는 줄 알았다.
‘아, 또 이러네.’
카페에서 과제를 하다가 아메리카노를 먹고 나서의 일이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괜히 나대고 그래. 신경 쓰이게.
무시하고 과제를 이어나가려는데 또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게 뭐야, 대체.
정말 기분 더럽고 불쾌하고, 그런데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아.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서둘러 짐을 쌌다. 집에 갔더니 엄마가 있었다.
“엄마, 나 이상해. 죽나 봐.”
아빠의 건강염려증에 지친 엄마는 날 보더니, 뭐야, 하고 고개를 돌렸다.
방에 누워 울었다.
뭐든 그리 심도 있게 고찰하던 나이는 아니어서, 또 그러려니 했다.
뭔지 모르겠는데 내가 좀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게 뭔지도 모른 채 또 하루가 지났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고 수개월이 흘렀다.
공황장애라는 것이 내 인생을 좀먹게 된 지가.
처음 발작이 시작된 것이 발표의 순간이었기에, 갑자기 내가 발표를 두려워하게 된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래,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두려워하게 된 거겠지.
단순하게 생각하고 병원을 찾아 약을 타 먹으며 발표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교, 내가 좋아하던 카페, 친구와의 약속 장소, 항상 타던 지하철, 버스,
내 집 까지. 공포가 진득하게 따라붙었다.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뛰쳐나가기도 하고,
친구와 순댓국을 먹다가 눈물을 질질 흘렸다.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들리지가 않는다.
당장에 내가 숨이 쉬어지지 않는데 말이 들릴 리 만무하다.
발작에 발작에 발작이 이어졌다.
무서웠다. 발작 자체가 무섭다가, 또 내 생활 반경이 좁아지는 것에 두렵다가.
공포가 날 집어삼켰다, 는 상투적인 표현이 내 생활이 되고
불안이 내게 한계를 지어주었다.
너는 여기까지야.
너는 여기까지만 움직일 수 있고, 이만큼의 일만 할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완벽한 공황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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