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쿵

꿈으로부터 #250319-20

사랑하게 놔두자

by 베로

어느 외국인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와서 사는 건지 모르겠다. 소위 전형적인 한국인 모습은 나와 현수 뿐이었다. 나와 현수는 그 지역을 돌아다니며 가끔 마주치고 주로 무전을 통해 상황을 전했다. 어느 익숙한(정탐을 돌기 때문에 자주 오가는 곳이다) 길 코너를 돌 때(좌회전) 오른쪽 코너에 있는 인공 산의 전면 수풀이 층별로 탁탁탁 하나씩 열린다. 산의 전면을 가득 채운 금고 같은 철문이 서서히 드러난다. 난 나와 같이 정찰을 하던 그에게 얼른 출발하자고 말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이내 그는 하늘을 낮게 날기 시작하고 나는 그 위에 얼른 타고 몸을 낮춰 그와 날아간다. 눈에 띄지 않게 저공 비행으로 어느 곳으로 간다. 그는 녹아내린 철들을 이어 붙인 듯 말끔하지 않은 형태이다. 풀 숲에서 위장하느라 녹색과 검은색 금속들을 서로 엉겨붙게 주조한 것 같다. 그는 꽤 크다. 키는 일미터 팔십에서 구십 사이가 될 것 같고 체격도 (물론) 단단하고 장대하다. 그는 말을 하지만 과묵하고 목소리는 저음이다. 묵묵히 일하는 그에게서 나는 그가 오랫동안 살아왔다고 느낀다. 그에게 서둘러 출발하자고 이야기한 이유는 그 대형 금고 같은 철문, 그 산을 갖고 있는 자가 최근 밝힌 계획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그 문이 열리고 금속 인간들을 향하는 저격 미사일이 발사될 것 같았다.

최근 그 자는 어떻게 금속 인간들을 모두 절멸시킬 것인지를 발표했다. 치밀함이 느껴졌다. 그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금속인간 동료와 그 앞을 정찰하다니.. 나의 무례함, 주도 면밀하지 못함, 무책임, 무계획, 즉흥성이 또 부끄러운 순간이다.

어느 곳에 도착해 통유리를 통해 바깥을 보니 미사일에 무언가 격추되는 등의 일은 없는 것 같다. 도시는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어디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은 없었다. 현수에게 무전을 했다. 현수도 미사일이 날라가거나 요격된 상황은 도시 전체에서 보고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곧 현수도 그곳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소식지, 매뉴얼 인쇄물이 30여가지 이상 빼곡히 펼쳐져 있었다. 나와 현수는 이것을 어떻게 나눠줄까 이야기 나눴다. 결론은 사람들이 와서 하나씩 챙기기엔 많고 어수선해질 수 있으니 전단지를 모두 미리 챙겨 사람들에게 30여가지를 한장씩 다 담아 미리 정리해두고 사람들이 오면 빠르게 건네주기로 했다. 생활지침부터 사색하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글까지 필요한 글들이니 다 나눠주는 것도 필요하겠다. 우리에게 이런 것을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을까 우리는 젊은 시절부터 치열하게 이야기하고 정했다. 이제는 뭐가 좋은지 합의가 된 건지, 데이터가 쌓인 것인지 음하고 아하고 뚝딱 금방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뿐이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정해질때까지 최소한의 설명과 정해져 있지 않은 더 그럴듯한 이유를 즉흥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형된 결론이 날 수 있는 것은 늘 여전하다. 어쩜 꿈에서도 우리는 즉흥연극 배우 동료였던 걸까? 도시 정찰은 돈벌이?

팜플렛을 정리하는 데에 실제 걸린 시간과 상관없이 꿈속에서는 정리되고 준비되었다는 듯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 건장한 나의 금속인간 동료는 팜플렛을 어떻게 나눠줄까 현수와 내가 상의할 때만 해도 옆에 역시 묵묵하게 있었는데 언젠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의심하지도 않았다.

이제 한 명씩 찾아오게 될 손님들을 기다리고 환대하게 될 것이다. 조용한 저택의 모습을 나도 오랜만에 천천히 둘러본다. 저택 앞으로는 숲이 이어져 있다. 숲의 끝에 이 집이 있는 거다. 숲의 끝과 이어진 이 집의 입구 반대편은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산 중턱인 것이다.

나는 이 집의 입구에서 숲으로 닿아있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곳에는 차양 밑으로 넓고 다양한 쇼파들이 있다. 나는 그곳 어딘가에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보기도 하고 멀리 숲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도 있고 나와 놀고 싶어하는 여러 아이들도 주변에서 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어느 소파에 누워보기도 한다. 그가 더 넓고 안정된 쇼파를 내 옆으로 밀어주기도 한다. 나는 저쪽 구석에서 전자기기들을 연결하고 무언가를 실행시키려 애쓰는 오라버니를 잠시 들여다보며 다정한 말을 건네기도 한다. 이내 그가 마련해준 소파로 가서 주변의 아이들과 말을 섞으며 논다.

이내 그는 조심스럽게 내 가까이로 온다. 그는 부드럽고 단정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지는 하얀 니트에 색깔있는 바지를 말끔하게 입었다. 역시 건장한 체격이라 다부진 골격의 그는 저만치서 내게 무언가 말을 걸었다. 그와 함께 집의 거실로 들어갔다.

도시로 난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환하고 따뜻하게 거실에 머물고 있었고 창가 옆으로 일곱명 정도 둘러 앉을 수 있는 하얗고 긴 테이블이 있었다. 어느새 찾아온 이들이 둘러 앉아 있다. 나와 그도 서로 맞은 편에 앉았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다. 이 집에 얽힌 추억들을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나와 연결된 이야기 소재를 꺼냈다. 이 집은 그의 집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그의 부가 가늠이 된다. 그는 자신이 경찰이라고 말하고 나는 '그게 낫네'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평범한 직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정말 '낫다'라고 생각했다. 내 옆에 앉은 나이 든 남자가 내 허리와 내 팬티를 만지고 있었다. 나는 좀 두었다가 '뭐 하는 거야'라고 늙은 남자를 보며 말하고 손을 떼게 했다.

맞은 편 그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테이블에 앉은 채로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제안하고 우리는 그 게임을 재밌게 했다. 아마도 자신에게 해당되는 점을 두가지씩 이야기하는 게임이었다. 주제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나는 꿈에서 깨어 이것이 내가 살아갈 방향이라고 느꼈다. 나는 돌봄을 해야 했다. 예민과 짜증,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존재의 성격인듯한 언니, 오빠, 아빠, 언니의 마음과 몸 상황을 신경쓰고 돌봤다. 부모님과 싸우고 아빠에게 맞고 힘들어 하는 대학생 언니에게 초등학교 2학년인지 3학년 때 '내가 가게가서 소주 사다줄까? 안주로 과자도 사다줄까?'라고 묻곤 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술을 사다주고는 했다. 다 큰 후에는 엄마가 안쓰러워 매주 춘천에서 인천집을 가고 결국 엄마는 가슴 속 응어리를 뱉어내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장에 걸쳐 엄마의 비밀 응어리를 일기장에 쓰셨지만 엄마는 더 선명해진 기억을 말로는 하지 못하고 거의 열달이상 곧 죽을 것처럼 정신을 놓고 멍해져갔다. 내게 술술 말하기 쉬워질 때까지. 나는 어느 날은 그냥 옆에서 엄마 방을 정리했고, 어떤 날은 내 이야기를 가벼운 듯 섞어 전하기도 했다. 나는 돌봄 감각이 깨어 있었다.

전 남친들에게도 난 돌봄을 했다.

이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것 같다.

돌봄은 내가 수업과 공연, 워크숍을 통해 참여자들을 만날 때 모든 세포가 깨어있고 그들을 돌보는 데 쓴다. 내가 바라는 사회생활, 사회운동에 보탬이 되고자 나의 돌봄 감각을 쓰자.

그리고 나를 돌보는 데 나의 돌봄 감각을 쓰자.

그리고 그런 나를 사랑하는 그가 나를 사랑하게 놔두자.

나는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제 두 해 째 맡게 된 해밀학교 연극 동아리 수업에서 학생들을 만나 첫 수업을 하고 왔다. 마지막에 학생들과 이 수업에서 기대하는 바를 종이 작품으로 표현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연극수업에서 '행복폭발'을 기대해요!'라고 썼다. 학생들 한명 한명의 행복이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오길. 나 역시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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