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기반 학습
대학원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어제 발표가 나고 '불합격'을 확인했어요.
경쟁률도 높았지만 내가 구술(면접)을 너무 못봤어요.
다른 시험 항목에서도 많이 부족했을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확인은 안되고
주관적 판단으로 구술이 참 부족했던 것 같아요.
살아오면서 겪은 거의 모든 면접에서
예상 질문 외의 질문도 상상하고 답을 생각해보고,
짧은 면접 시간에 어떻게 하면 적절한 텐션과 여유를 버무려
분명하고 간결하게 피력할 것인가까지 준비했었어요.
미리 시뮬레이션을 숱하게 해보았죠.
큰 면접에서도 막연히 이야기하는 동료의 대답에 자연스럽게 부연설명을 할 기회도 잘 틈타
구체적 경험을 가지고 간결하고도 임팩트있게 설명하고
결국엔 동의가 되는 듯 열 명의 면접관분들이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을 봐왔는데,
그렇게 거의 모든 면접을 통과했는데
그럼 뭐해요.
바라던 대학원 시험에서는 정말 잘 못했어요.
왜 못봤을까?
구술을 보고 나서자 마자 저는 탄식이 새어 나왔고
왜 이렇게 못했을까요.
생각보다 구술 준비를 너무 안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에요.
그런데 뭘 믿고 그렇게 준비를 안했을까요?
여러번 생각해봤는데 뭘 믿어서는 아니었어요.
행여 다른 믿을 거리를 만들까 최근 잘해온 일들도 나만 알고 세상에게 전하지 않았어요.
그럼 왜 그렇게 더 못했을까?
생각해볼수록 굉장히 엉뚱한 이유가 저를 지배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첫번째는 구술에 대한 무근본 자신감으로
구술에 바로 앞서 있었던 실기 준비에만 집중했어요.
면접보기 2일 전에 주어진 실기 주제를 받고 실기를 내내 준비했어요.
완성했던 실기를 다시 새롭게 만들기를 세 번 했어요.
게을러지지 않고 세 번을 바꾸면서 더 나은 결정을 한 것이 기뻤어요.
그리고 면접 대기실에서도 준비한 실기가 몸에 익숙했지만
불안이 조금도 엄습하지 않도록 실기를 계속 연습했어요.
구술에 대한 걱정은 하지를 않았다는 것.
바로 무근본 자신감이 큰 문제였어요.
두번째 이유가 우스운데,
매우 우습게도
'내가 나이도 너무 많고 말도 너무 또박또박 잘하면 드세보일 것 같다.'
라는 의식과 무의식이 깊었어요.
연극은 협업으로 하는 것인데
'나이도 많은' 내가 나 잘났다고 말하는 모습이 참 부담스럽겠다 하는
지금 생각하니 참 거만하고 한참 어리석었던 제가 참 서글프네요.
나 스스로 '나이가 많다'라는 장벽 앞에서
세상 모두가 그렇지도 않을텐데
편견을 스스로 뒤집어쓰는 어리석음을 택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있을 방법을 상상하지 못했거나 사실 자신이 없었던 거죠.
어제 발표가 오후 5시 났고 바로 확인했지만,
그리 타격이 크지는 않은 듯
형부의 환갑과, 부모님의 결혼 60주년을 축하하며
어제의 밤을 잘 보냈어요.
구술을 보고 나오자 마자 탄식이 튀어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꽤 실패를 직감하고 있었거든요.
'안될 것 같아'라는 말은 입에 절대 올리지 않고,
'잘 되었으면 좋겠어'라는 말만 마지막 주술처럼 내내 되뇌였지만요.
그리고 오늘 아침. 새벽부터 뒤척이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하루하루 성실히 글을 쓰는 것을 시작하기 좋은 때이다. 하고요.
대학원 입시 실패와 글쓰기가 무슨 관계인지는 지금의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직관으로 해두죠.
늘 글을 성실히 쓰고 싶었고,
미뤄두던 것들이 짐이 되어 무기력했고,
대학원 준비하며 다시 생기를 느꼈어요.
그렇다면 일상의 한 줌 생기를 잘 다듬은 글로 담아내자.
실패 이후 다시 시작하기 딱 좋다 하고요.
앞으로의 시간
여전히 나는 방향을 잃지는 않되, 어떻게 항해해야할지 방법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진짜를 하고 싶어요.
매너리즘 따위는 너무 싫어요.
진짜를 하는 것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길이라는 것만
이전의 시간에서 알아낸 것 같아요.
일단 이렇게 시작해 봅니다.
이런 일기 같은 글일 때가 많을 거 같아요.
그래도 나를 솔직하게 전할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이렇게 써보려고요.
오래된 방법이지만 편지쓰는 것을 좋아하고요.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나에게 다정하게 내 이야기를 남겨주고 싶어요.
살아내고 있으니까.
마음을 담아 응원하며.
2025. 12. 5.
베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