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slight 가스등 (1944) : 비정상의 경계

그리고 누가 감히 그 경계를 정하는가?

by 베로니카 Veronica




상징적인 작품들이 종종 있다. 이를테면 일상에서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작품들이 있는데, 어찌보면 "가스라이팅"의 개념이 입에 오를 때마다 가스등(1944)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섬세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가스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환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지만, 연극적이면서도 웅장한 연출에서 그 진가를 찾을 수 있다. 가스등은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퍼포먼스의 결정체보단, 음울하고도 촘촘한 연기선과 한정된 세트에서 오는 몰입의 결정체로 봐야 한다. 우리는 폴라의 내면과 저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목격하기 때문이다.



영화내내, 우리는 "미친 여성"에 대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성을 미쳤다고 여기게 만드는가?


여성의 광기는 사람의 광기로 통합하여 볼 수는 없다. 여성은 언제나 특수성을 가진 존재로 여겨져왔고, 과하게 예민하며, 이해할 수 없는 족속으로 설명되어 왔다. 여성은 남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처럼 활용되었는데, 그렇기에 남성은 이성, 여성은 감성의 이분법은 지금까지도 힘을 쥐고있고, 그레고리(폴라의 남편)는 이를 이용한다.



폴라는 쉽게 동요된다. 폴라가 나약하기 때문이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녀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게 된다면, 그녀가 나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쉽게 동요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그녀가 한계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한계에 몰린 이는 누구나 비슷하게 유약함으로, 이를 타고난 연약함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구원 서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꺼이 "미친 여성"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복수를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구간에서 그레고리의 프레임은 효력을 잃는다. "미친 여성"이라는 오명은, 본인 스스로를 "미친 여성"이라 칭하는 순간 힘을 잃기 때문이다. 폴라는 스스로를 "미쳤다"고 재정립함으로써, 그의 지시를 벗어나 그를 조롱하게 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얼마나 얄팍한지에 대해 비웃는 그녀의 행동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완벽한 연기와 함께 관객을 매료시킨다.


그렇게 현실 세계 속 수많은 폴라들이 기꺼이 복수할 수 있기를, 나는 진정으로 바랄 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