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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sh 크래쉬 (1996) : 이상성욕 시리즈 1

정신과를 가야 하는 이들이 가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에 관하여

by 베로니카 Veronica


기이한 성벽을 다루는 영화들은 그 자체로 조금 독특하다. 영화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관객을 앞에 두고 벌어지는 예술이며 끊임없이 관객을 설득하는 기질이 있는데,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설득당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연성이든, 배우의 미모든지 간에. 미美처럼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강력한 수단도 없음으로.


그렇기에 이상성욕을 주제로 하는 영화는 관객 설득을 포기한 상태로 출발함으로써 조금 독특한 출발선을 갖게 된다. 우리는 이런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이해가 간다면 제발 정신과에 가길 바란다. 병 키우지 마라.- 지극히 보편적인 관객의 입장에서 이런 영화는 살면서 굳이 안 해도 되는 경험의 역할을 대리하기도 하며, 관람시간 자체가 고통의 시간이라는 점에서 이상성욕을 다루는 영화는 압도적이다.



이때, 미美가 고개를 드민다.

영화는 예술이고,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방한다. 감독이라는 존재들은 끔찍한 이미지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에 귀재들이다. 썩은 사탕을 예쁜 포장지로 감싸는 꼴에 우리는 가엾게도 포장지에 홀린다. 앞서 말했듯,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수단 중 미美처럼 강력한 것도 없음으로.


이 영화에서 우리는 성벽이 어떻게 사람을 망치는 지를 목격하게 된다.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어 인체를 싣고 다니는 고철 덩어리. 그것이 유혹하는 기질까지 있다면 우스운 일이겠지만. 타인이 타인의 삶을 판단할 수는 없는 법임으로, 우리는 인물들이 사회적 기준에서 몹시 망가졌는지, 아님 그 누구보다도 살아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다.


만족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도 결국 그 무엇 하나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달고 사는 고질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것은 없고, 우리는 각자 조금씩 기이하다.



p.s. 이 영화를 보고 운전면허를 향한 강력한 동기를 얻었다면, 부적절한 농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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